“궁금한 게 있어서 물어보는데요. 노무사님은 같은 나라 사람인 저희 같은 사업주 편은 안들고, 왜 다른 나라 사람인 이주노동자 편만 드세요? 도저히 이해가 안 되네요.”
임금체불 관련 협상을 하던 사업주가 불쑥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이 질문에 순간적으로 말문이 막혀서 아무 답변도 하지 못하고 그냥 듣기만 할 뿐이었다. 협상이 끝난 후에,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라가 같은 사람의 편을 드는 것이 맞는지, 나라가 달라도 노동하는 사람의 편을 드는 것이 맞는 것인지 말이다.
사람마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다르겠지만, 필자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현재 대한민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의 노동이 차지하는 비중은 통계치를 보더라도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언어가 서툴고, 대한민국의 노동법 체계를 잘 모른다는 이유로 만성적인 임금체불과 제대로 된 노동법적 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라가 다르더라도 이주노동자들의 편을 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에는 위와 같은 질문이 나올 때에 명확하게 답변을 한다. “나라요? 나라보다 노동자를 존중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면 필자가 말문이 막혀서 답변을 못 했듯이, 사업주는 말문이 막혀서 더 이상 여기에 대해서 질문을 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노동자들도 1960년대에 독일, 1970년대에 중동지방에 이주노동자로서 노동을 하러 갔다. 알려지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당시에 이주노동자로서 얼마나 많은 차별을 받았을지 충분히 그림이 그려진다.
그런데 과거와 달리 이제 다른 나라의 이주노동자들이 대한민국으로 엄청나게 유입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주노동자들의 노동권이 제대로 존중받고 있는지, 차별받고 있지는 않은지, 우리가 제대로 지원해 주고 보장해야 그들이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엄성을 보장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 가고 있다.
올해 정부에서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 예산을 엄청 삭감했다. 또한 약 10여년간 이주노동자들을 무료로 노동상담해 주고 권리구제 지원활동을 한 활동가를 공인노무사회가 고발해 검사가 기소유예처분을 했다. 이에 활동가가 헌법소원을 제기한 사건이 언론에서 이슈가 되고 있다. 대구지역에서는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외국인출입국사무소 단속과정에서 도움을 준 한 통근버스 운전기사가 교도소에서 실형을 살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2024년 대한민국은 이주노동자의 노동이 없으면 사회가 멈출 수도 있는 상황에 와 있다. 그들의 노동을 존중하고, 편을 들고, 연대하고 있는 활동가와 통근버스 운전기사에게 우리 사회는 연대하지 말고 배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잘못된 신호를 주고 있다.
인간으로서 이주노동자의 존엄성과 노동자로서 존엄성을 포기하라는 말로 들린다. 같은 나라 사람 편들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노동 존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