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여권 인사가 내는 메시지에는 ‘협치’라는 단어가 자주 섞여서 나오는 것 같다. 22대 국회의원 선거 후에 야권이 남은 21대 국회에서 추진한다고 하는 각종 특검법 때문에 그런 듯하다. 이번 총선 결과는 야권 전체 의석수가 192석. 여당인 국민의힘 내 일부가 다른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 개헌선이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인지 협치에 힘을 주는 모양새에서 위기감마저 읽힌다.
지난달 18일 전국지표조사(NBS)에서 대통령 국정 수행 평가 긍정률은 27%였고, 이튿날 오전에 발표된 한국갤럽 국정 수행 긍정률은 23%였다. 총선 직전 조사 대비 두 조사 모두 11%포인트, 두 자릿수 하락한 것이다. 한국갤럽 조사에서는 20% 초반대로 내려앉았다. 이번 정부 들어서 가장 낮은 긍정률이었다. 대통령 긍정률이 이렇게 낮게 나타난다는 것은 지지기반 자체가 흔들린다는 건데, 아니나 다를까 70세 이상에서 오차범위를 넘는 18%포인트 하락, 대구·경북에서 오차범위 내이지만 두 자릿수인 14%포인트 하락, 보수 성향자와 국민의힘 지지자 중에서는 오차범위를 넘어서는 20%포인트 하락을 보였다. 흔히 ‘콘크리트 지지층’이라고 하기 위해서는 대략 30%는 굳건히 버텨 줘야 하는데, 지금 수준을 콘크리트라고 하기에는 타설량이 기준에 못 미치는 느낌이다.
지난달 19일 이른 오후 윤석열 대통령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했다고 한다. 협치를 위한 대승적 결단이 어째 대통령 긍정률 최하치에 등 떠밀려 나온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한 주 동안 양측은 의제 조율로 한 주를 보내고 같은달 26일 금요일 한국갤럽에서 발표한 대통령 긍정률은 1%포인트 오차범위 내에서 상승 횡보한 24%였다. 야당 대표와 전화 통화 한 번으로 긍정률이 바닥을 치고 상승할 거라고 전망할 수는 없는 법. 그렇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20% 초반대에 묶인 박스권 횡보라니. 영수회담식 협치에 대한 국민적인 기대감은 전혀 읽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의제 조율에 실패한 민주당이 일단 만나겠다고 해 이번 주 초에 역사적인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영수회담이 성사됐고, 국민적 관심과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그런데 이달 2일 발표된 전국지표조사(NBS)의 대통령 국정 긍정률은 2주 전 조사와 완전히 같은 27%다. 이번 정부 출범 후 무려 700여일 넘게 끌어 온 영수회담이 성사돼 두 지도자가 만났는데도, 대통령 국정 긍정률은 11%포인트 하락한 후 반등하지 못하고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실질적인 성과가 없더라도 일단 만남 그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다는 자화자찬식 해석에 찬물을 끼얹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이쯤 되면 손에 잡히는 성과 없이 지극히 형식적인 영수회담으로는 차가워진 국민의 마음에 따스한 봄바람을 불어 넣기는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사실만 입증된 셈이다. 한 치의 양보도 없이 마치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애써 알리기 위한 수단이 돼 버린 영수회담에는 의료대란 걱정, 민생 경제와 물가 걱정이 들어갈 틈이 전혀 없었다. 주권자 국민의 삶을 위한 대타협은 이같이 껍데기만 남은 영수회담으로는 처음부터 기대하기 어려웠던 게 아닌가 싶다. 그나마 의제를 가지고 논의하자는 민주당의 요구에 의제 없이 대화하자는 대통령실은 과연 무슨 성과를 내려 했는지 국민 앞에서 소상히 설명 좀 해 주면 좋겠다. 야당 대표에게 뭔가를 요청해야 하니 영수회담을 제안했을 텐데, 도대체 요청하고자 하는 구체적인 논의 거리를 가지고 나오지 않다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최근 똘레랑스를 역설하던 홍세화 장발장은행장이 별세했다. 홍세화 은행장이 말한 똘레랑스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겨 우리 사회에 큰 울림으로 만들어야 하지만, 작금의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혐오 미러링을 ‘워싱’하는 개념으로 쓰는 경우가 있어서 조금 황당할 때가 있다. 국회 다수 의석을 가진 야권이 똘레랑스 정신을 발휘해 대통령과 여당을 상대로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논지의 주장이다. 다수의 폭거를 우려하는 주장치고는 똘레랑스를 애걸하는 주제가 죄다 특검법이었던 것 같다. 사실 특검을 추진하는 야권의 등 뒤에는 국민 여론이 있지 않은가. 민주당도 사실 “180석으로 뭐했냐”라는 국민적 비난에 등 떠밀리는 것처럼 보이는데, 여당이 일부 특검법에 똘레랑스 운운하는 것은 어쩌면 야당에게 야합을 공공연히 요구하는 게 될 수도 있겠다.
민주 사회에서 정치권 내 똘레랑스의 성립 기반이라는 게 주권자인 국민의 의사를 빼놓고 논할 수나 있겠는가. 국민의 선택에 의해 형성된 권력이라는 근본적인 존립 기반에 서 있는 세력이 여야 정당일 테고, 지금 언급되는 현안 모두 국민 여론에 의해 정치권이 다뤄야 할 문제가 되는 건데, 어떻게 똘레랑스를 발휘하는 주체에 국민을 뺄 수 있겠는가 말이다.
지난 2년 동안 현재 특검을 해야 한다는 이슈들 대부분 국민 여론은 한쪽으로 치우친 쏠림현상을 보여줬다. 의료개혁 필요성 이슈를 제외한다면 대부분 정부나 여당의 입장과는 반대 방향으로 여론이 기울어져 있었다. 김건희 여사 관련 이슈도 그랬고, 최근 특검을 하자는 해병대 채 상병, 이태원 참사가 그랬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관련 이슈도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국민 여론은 도외시하고 여야가 국회에서 타협한다면, 그게 똘레랑스나 협치가 될 수 있을까? 야합이라는 비난을 들을 수도 있다.
이 같은 야합도 협치와 똘레랑스로 미화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미 여야는 협치를 달성했다. 그것도 거대한 대타협을 특별한 충돌 없이 암묵적인 의기투합으로 이뤄낸 바 있다. 그건 바로 2020년 총선에 이은 2024년 총선 최신판 위성정당 창당이다. 놀라운 협치와 똘레랑스가 아닌가. 총선을 마치고 정치개혁을 열망하는 국민적 기대를 묵살하고 양당이 위성정당을 만들다는 데 어떤 성찰적 평가도 없다. 위성정당을 통해 얻은 의석을 본 정당으로 되돌리는 절차에 어떤 저항감도 없는 실정이다. 혐오 선동이 만연한 정치권 안팎의 험악한 분위기에 묻혀 정치학자들의 목소리는 들리지도 않는다. 여야의 서로에 대한 놀라운 똘레랑스 발휘가 아닐 수 없다.
이제 곧 22대 국회가 개원한다. 영수회담으로도 실망한 국민의 마음을 위로할 수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면, 이제 서로를 보면서 네거티브와 똘레랑스 사이를 오가는 미러링에 애쓰지 말고, 국민께 나서서 똘레랑스를 구해야 할 것 같다.
메타보이스㈜ 이사 (bongshinkim@naver.com)
인용한 여론조사
○ 한국갤럽 데일리오피니언조사 : 통신사 가상번호 활용 전화면접조사
- 2024년 4월 3주 : 4월16~18일 조사
- 2024년 4월 4주 : 4월23~25일 조사
○ 전국지표조사 : 통신사 가상번호 활용 전화면접조사
- 2024년 4월 3주: 4월15~17일 조사
- 2024년 5월 1주 : 4월29일~5월 1일 조사
※ 더 자세한 사항은 각사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