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여야 영수회담 소식에 온통 관심이 쏠렸던 지난 28일, 나는 <매일노동뉴스>를 펼쳤다. “10명 중 6명만 ‘빨간날 쉴 권리’ … 기업규모·고용형태따라 양극화”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만 읽고도 무슨 내용인지 파악이 되는 기사였다. 첫 줄을 읽기 전부터 내 머리는 제멋대로 본문의 기사 내용을 짐작해 그리고 있었다. ‘빨간날 쉴 권리’라니 주휴일이 아닌 국공휴일에 쉴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 것이겠고, 대기업과 중소·영세 사업장 등 사업장 규모에 따라, 정규직과 비정규직 등 고용형태에 따라 그 권리 행사에서 현저하게 차이가 있다는 것이겠다.

2. 짐작했던 대로였다. 기사 본문에는 28일 직장갑질119가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정규직일수록,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빨간날 쉬지 못하는 노동자가 많았다”고 쓰여 있었다. 구체적으로 설문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비정규직(41.5%)·5명 미만(41.1%)·비사무직(45.8%)·일반사원(45.5%)·월 급여 150만원 미만(31.7%)은 공휴일에 유급으로 쉴 수 있는 비율이 절반도 되지 않”는 반면에 “정규직(81.8%)·300명 이상(81.4%)·사무직(85.6%)·상위 관리자(78.1%)·월 급여 500만원 이상(86%)은 쉴 권리를 비교적 잘 보장받고 있”고, “비조합원(62.8%)이 조합원(84.8%)보다, 여성(60.1%)이 남성(69.9%)보다, 교대제 근무자(68.4%)가 비교대제 근무자(51.3%)보다 빨간날 유급으로 쉬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고 <매일노동뉴스>는 자세하게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해서 밝혔다. 그리고 이처럼 “사업장 규모와 고용형태별로 편차가 큰 까닭은 근로기준법에서 찾을 수 있다”며,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5명 미만 사업장과 특수고용직·플랫폼 노동자는 빨간날 유급휴일이 적용되지 않”고, “특수고용직·플랫폼 노동자가 늘수록 쉴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도 늘어나는 셈”이라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밝혔다. 그런데 이 설문조사 결과에 관한 기사를 읽다가 납득이 되지 않는 게 있었다. 짐작대로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3. 제목을 보고서 내가 짐작했던 것은 ‘빨간날 쉴 권리’를 행사하는 데서 크게 차이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한 기사의 내용은 ‘빨간날 쉴 권리’ 자체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것인지, 빨간날 쉴 권리는 보장되지만 실제로 행사해서 쉬기가 어렵다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았다. 정규직, 300명 이상, 사무직, 상위 관리자, 월 급여 500만원 이상 등의 경우에도 그 정도가 다를 뿐, 일정 비율은 비정규직, 5인 미만, 비사무직, 일반사원, 월 급여 150만원 미만 등과 마찬가지로 빨간날에 쉴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고 설문조사 결과를 가지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시 읽었다. “비정규직일수록, 사업장 규모가 작을수록 빨간날 쉬지 못하는 노동자가 많았다”라고 쓴 첫 줄 부분에서 설문조사 결과와 이를 인용한 기사 내용은 실제로 빨간날에 쉬는지에 관한 것이라고 읽다가, “비정규직, … 은 공휴일에 유급으로 쉴 수 있는 비율이 절반도 되지 않는 반면에 정규직, … 은 쉴 권리를 비교적 잘 보장받고 있”다는 부분에 이르러서는 ‘빨간날 쉴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고 있는지에 관한 것인가 싶기도 했다. ‘빨간날 쉴 권리’를 행사해서 실제로 쉴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이라면 정규직, 300명 이상, 사무직, 상위 관리자, 월 급여 500만원 이상 등의 노동자들이 그렇지 않은 노동자들에 비해 높은 비율일 것이라서 굳이 설문조사를 해보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이와 달리 ‘빨간날 쉴 권리’ 자체가 보장되고 있는지 여부로 보자면, 당연히 그렇게 볼 수가 없다. 권리 보장 여부로 보자면, ‘빨간날 쉴 권리’에 관해서는 오늘은 무엇보다도 법대로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4. 본래 ‘빨간날 쉴 권리’는 없었다. 이 나라 노동자에게는 빨간날에 쉴 권리는 없었다. 근로자의 날, 주휴일이 아닌 날에 이 나라 노동자는 쉴 권리는 법은 보장하지 않았었다.

여기서 빨간날이란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관공서공휴일규정)에서 규정하고 있는 공휴일을 말한다(2조). 1월1일, 설날 전날, 설날, 설날 다음날(음력 12월 말일, 1월1·2일), 3‧1절, 광복절, 개천절 및 한글날, 부처님오신날, 어린이날, 현충일, 추석 전날, 추석, 추석 다음날, 12월25일 등이 관공서에서 공휴일로 정해서 쉬는 날인데, 이것이 일요일과 같이 달력에 빨갛게 표시돼 있어 빨간날이라고 불러 왔다. 이처럼 어디까지나 관공서의 공휴일로 정한 것이라서 관공서에서 근무하지 않는 노동자에게는 해당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대기업 등 일반사업장에서도 이 빨간날을 휴일로 인정해서 노동자들이 쉴 수 있도록 해 왔다. 특히 노조가 조직돼 있는 많은 사업장에서 단체협약에 휴일로 규정해서 보장했다. 이처럼 일부 사업장에서는 빨간날이 휴일로 보장되긴 했지만, 법적으로 노동자 일반에게 ‘빨간날 쉴 권리’는 보장된 것은 아니었다. 이랬던 것이 2018년 3월20일 근로기준법 개정을 통해서 유급휴일로 보장하게 됐다. 즉, 근로기준법 55조2항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휴일을 유급으로 보장”하도록 신설하고, 위와 같은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서 규정한 공휴일을 대통령령인 근로기준법 시행령 30조2항에서 휴일로 규정함으로써 이 나라에서 빨간날은 노동자의 휴일로 보장됐다. 하지만 노동자에게 일제히 시행된 것은 아니었다.

규모가 큰 사업장부터 시행됐고, 5명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았다. 근로기준법 부칙에서 상시 300명 이상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 등은 2020년 1월1일부터, 30명 이상~300명 미만 사업장은 2021년 1월1일부터, 5명 이상~30명 미만 사업장은 2022년 1월1일부터 순차적으로 시행하도록 했던 것인데 5명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이렇게 빨간날은 이 나라 노동자에게 유급휴일로 보장되게 됐지만, 5명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에게는 보장되지 않았다. ‘빨간날 쉴 권리’를 보장받고 있는지 여부로 보자면, 이 나라에서 5명 이상 사업장 노동자는 유급휴일로 보장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이에 반해 5명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는 보장되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법대로 보자면, 5명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지 않은 경우에는 비정규직, 비사무직, 일반사원, 월 급여 150만원 미만의 노동자일지라도 ‘빨간날 쉴 권리’는 보장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이다. 이 세상에서 5명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의 자리는 없다. 여기에 더해 이 나라에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취급받지 못하는 특수고용직·플랫폼 노동자도 ‘빨간날 쉴 권리’는 없다.

5. 끄적거리고 보니 이렇게 정리된다. 본래 이 나라 노동자에게 ‘빨간날 쉴 권리’는 없었는데, 이제는 법으로 노동자의 권리로 규정됐다. 그렇지만, 5명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와 특수고용직·플랫폼 노동자에게는 권리로 보장되고 있지 않다.

대한민국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근로의 권리를 보장하고, “근로조건의 기준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도록 법률로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33조), 이에 따라 근로조건의 최저 기준을 정해서 노동자의 권리 보장하기 위해서 국가가 근로기준법 등 노동입법을 해 왔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빨간날 쉴 권리’를 근로기준법 등 이 나라 법이 노동자의 권리로 보장하지 않았을 때에도 대기업 등 많은 사업장에서 단체협약·취업규칙 등을 통해서 권리로 보장하고 있었다. 이렇게 권리를 보장받고 있는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국가가 입법할 필요는 없다. 권리로 보장받고 있지 못하는 노동자를 위해서 국가는 입법을 통해서 ‘빨간날 쉴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 법은 거꾸로다. 얼마든지 단체협약·취업규칙 등을 통해서 ‘빨간날 쉴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는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입법을 하고, 그 권리를 보장받기 어려운 노동자를 명시적으로 배제하는 입법을 한 것이니 이 나라에서 법은 거꾸로인 것이다. 어디 빨간날만이겠는가. 수많은 근로기준법의 조문이 5명 미만 사업장의 노동자에게 적용되지 않도록 규정돼 있다. 국가가 노동자 보호를 위해서 근로기준의 최저 기준에 관한 입법을 한 것인데, 이 나라는 이 모양이다. 적용 배제를 통해서 정작 법적으로 보호해야 하는 노동자를 외면하고 있으니 무슨 이유를 말해도 변명일 뿐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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