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아름다운 재단)

한양대 86학번 그는 대학 중퇴 후 제조업 공장에 들어갔다. 그 공장에서 공장 프레스 기계에 오른손이 눌려 손가락 4개가 절단됐다. 1992년, 그의 나의 스물다섯 살에 산업재해 장애인이 됐다. 그는 병원에서 손가락을 잃은 고통을 견디며 노동법전을 폈다. 그의 이름은 남현섭이다.

산재의 아픔을 알기 때문일까. 그는 퇴원 후 산재노동자를 위해서는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서울 구로 산재노동자협의회(산재노협)에서 상담부장을 했다. 이어 2014년까지 인천산재노협에서 상담·사무국장으로 근무했다. 복잡한 장해등급 판정 등을 받은 경험을 바탕으로 노동자들의 산재 신청을 도왔고, 산재 상담 활동도 했다. 그는 산재 전문가가 됐다. 2007년 산재노동자 표만협씨 강제 치료종결에 의한 자살사건으로 근로복지공단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에도,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들의 직업병 투쟁현장에도 항상 그가 있었다.

그와 산재노협에서 같이 일했던 김정수 직업환경의학 전문의(공감직업환경의학센터 이사장)는 책 <굴뚝 속으로 들어간 의사들>에서 그가 학생회 연대주점 일로 구로의 산재노협 사무실을 처음 찾았던 기억을 생생하게 회상했다.

프레스기에 손가락 잃은 산재노동자
산재노동자 돕는 활동가 되다

“한 분이 반갑다며 내민 손을 엉겁결에 잡았는데 뭔가 어색했다. 그의 손에는 손가락이 없었다. 부끄러움은 곧장 밀려왔다. 손가락이 없는 손을 당당히 내민 그와 어쩔 줄 몰라 한 내 모습이 대비돼서였다. 그런 그와 형 동생 하는 사이가 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산재노협은 회원들의 회비와 약간의 후원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상근활동가들의 처지는 열악할 수 밖에 없다.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그는 2015년 1월 인천 산재노협을 그만두고 경기도 시흥시의 재활용 수거업체인 신일산업에 취업했다. 함께 일하던 공장장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손이 파쇄기에 빨려 들어갔고 기계는 상반신을 삼켜버렸다. 공장장과 둘이 일하던 영세 사업장이었다. 그는 공장장과 함께 폐스티로폼 작업을 하고 있었다. 공장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순식간에 그의 손이 파쇄기에 빨려 들어갔다. 상반신 압착사고를 당했다. 입사한 지 두 달도 채 안 됐을 때였다. 그의 상반신을 잡아 먹은 파쇄기에는 안전장치가 전혀 없었고, 파쇄기 앞쪽에 몸을 지탱할 안전난간도 없었다.

막을 수 있었던 사고였다는 지적이 많았다. 산업안전보건법 33조2항에서는 동력으로 작동하는 기계·기구로서 작동부분의 돌기부분, 동력전달 부분이나 속도조절부분 또는 회전기계의 물림점을 가진 것에는 덮개 등을 설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김정수 전문의는 “15년 동안 활동한 산재전문가인 그가 작업장의 이런 문제를 몰랐을 리 없다. 하지만 지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렵게 얻은 일자리였고, 일을 계속 해야 했으며, 문제로 삼더라도 홀로 맞서기엔 버겁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산재로 끝내 사망
8주기에 남현섭기금 만들어지다

그가 사망한 지 8년 만에 그를 기리는 ‘남현섭기금’이 만들어졌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가 기획한 일터에서 사고와 질병, 그에 맞서온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 <고통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들>의 저자 10명이 인세 5백만원을 기부해 아름다운재단에 ‘남현섭기금’을 조성한 것. 남현섭기금은 앞으로 산재노동자를 지원하고 노동문제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는 공익활동에 사용될 예정이다. 기금 취지를 공감하는 시민 기부도 받을 계획이다.

아름다운재단은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아름다운재단에서 기금 조성을 축하했다.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 김은복 건강한노동세상 대표, 임상혁 녹색병원장 등 기금 출연자를 비롯해 고인의 동료와 함께 ‘남현섭기금’ 협약식을 열고 남현섭 활동가를 추모하는 시간을 가졌다. 협약식에 참석한 김신범 노동환경건강연구소 부소장은 “나의 동료, 남현섭 활동가 뜻을 이어갈 수 있게 마음을 모아준 많은 이들에게 감사하다”며 “모든 노동자들이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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