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지난 3월11일 유럽연합(EU) 이사회는 EU이사회 의장국과 EU의회가 잠정합의한 플랫폼노동 지침을 가결했다. 2021년 12월 EU집행위원회가 플랫폼노동 지침(안)을 발안한 후 3년 논의 끝에 ‘플랫폼노동의 노동조건 개선에 관한 지침’이 입법을 목전에 두고 있다. 24일 EU의회가 지침을 가결하면, EU회원국들은 2년 이내 지침 내용을 국내법·제도로 이행해야 한다.

지침은 크게 보면, 디지털 노무제공 플랫폼을 통해 노무를 제공하는 사람(플랫폼 노무제공자)의 고용상 지위의 올바른 판단을 위한 법적 추정 제도에 관한 부분(2장), 알고리즘을 통한 관리에 대한 플랫폼 노무제공자 권리에 관한 부분(3장), 플랫폼 투명성 제고와 노무제공자 권리구제를 위한 부분(4·5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EU 내·외부에서 논쟁의 중심은 고용관계 추정 제도에 관한 것이다. EU 기관들은 2021년 현재 EU 전역에서 2천800만명 이상이 플랫폼노동을 하고 있으며, 이들 중 550만명 이상은 노동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영인으로 오분류돼 최소한의 노동권도 누리지 못하는 위험에 처해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불과 3년 만에 플랫폼 노무제공자의 규모는 4천300만명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플랫폼 노무제공자가 자영인으로 오분류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침은 고용관계 존재에 관한 판단은 실제 업무수행과 관련된 사실을 주된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하고 있다. 즉, 계약 당사자간 합의된 계약형식이나 계약에 부여한 명칭이 아니라 노무제공과 관련된 실질을 살펴 근로계약의 존재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는 ‘사실 우선의 원칙’을 재확인하고 있다.

지침은 노동자에 대한 통제나 지시를 나타내는 사실이 확인되는 경우 고용관계를 추정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때 통제·지시를 나타내는 사실이 어떠한 것인지는 회원국의 국내법, 단체협약 또는 관행에 따라 정할 수 있다. 고용관계의 추정 제도가 갖는 실무적 장점은 입증책임의 전환에 있다. 지침은 EU회원국이 법적 추정제도를 국내법에 도입할 때 노동자에게 유리한 절차로서 만들어야 하며, 해당 계약관계가 고용관계가 아니라는 점은 플랫폼이 증명하도록 정하고 있다.

고용관계 추정 제도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지침에서 주목할 부분은 자동화된 모니터링 혹은 의사결정 시스템, 즉 알고리즘을 통한 관리에 대한 노동자와 노동자대표의 권리를 명시한 부분이다. 지침은 개인의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플랫폼이 알고리즘을 통해 수집·처리할 수 없는 개인정보에 관해 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플랫폼 노무제공자 및 그들의 대표들과의 교류를 비롯한 사적 대화와 관련된 개인정보, 플랫폼노동을 수행하지 않는 동안의 개인정보, 인종, 민족, 이주민 지위, 정치적 견해, 종교적·철학적 신념, 장애, 건강상태, 감정적·심리적 상태, 노조 가입 여부 등에 관한 개인정보가 포함된다.

지침은 또한 노무제공자와 그들의 대표가 알고리즘에 대해 갖는 권리를 매우 구체적으로 보장한다. 플랫폼은 알고리즘이 내리거나 지원하는 결정의 종류, 알고리즘이 고려하는 정보와 주요 매개변수(parameters)의 종류, 노무제공자의 계정을 제한, 정지, 해지하는 결정의 이유 및 노무제공자에 대한 보수 지불 거부의 이유 등을 서면으로 제공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노무제공자와 그들의 대표는 내리거나 지원하는 모든 결정에 대해 플랫폼으로부터 설명받을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노무제공자와 그들의 대표는 알고리즘이 내리거나 지원하는 모든 결정에 대해 재검토하도록 요청할 권리를 갖는다. 알고리즘을 통한 결정이 노무제공자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 플랫폼은 바로잡아야 하며 교정이 불가능한 경우 노무제공자가 입은 피해에 대한 충분한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

이 밖에도 지침은 안전과 보건, 폭력과 괴롭힘으로부터 보호, 정보 제공, 노무제공자의 권리구제 등에서 노동자대표, 즉 노동조합 권리를 구체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미조직 근로자의 권익 증진은 정부가 직접 챙겨야 한다”면서도 정작 노조배제 정책은 바꾸지 않고 있다. 노동법과 사회보험 사각지대에 놓인 노동자 보호를 위해 노동자에게 유리한 법적 제도, 노동조합과 노동자대표의 권리를 구체화한 EU의 법제도와 극명한 대조를 보이는 지점이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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