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총선 결과로 더불어민주당과 더불어민주연합이 총 175석을, 국민의힘과 국민의미래가 108석을, 그리고 조국혁신당이 12석을 획득하며 범민주진영이 무려 187석에 이르게 되었다. 이번 총선의 역사적 의의는 윤석열 정부가 노무현 정부 이래로 이어지던 '단점정부'(unified government)의 형성에 실패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단점정부'란 쉽게 말해 여대야소를 의미한다. 대통령 소속의 여당이 과반에 가깝거나 과반의석을 차지해 의회 제1당인 경우를 '단점정부'로, 반대로 여소야대 형국을 '분점정부'(divided government)라 칭한다. 노무현 정부 이래 한국 정치사는 5년 안에 '단점정부'를 형성하려는 대통령과 정부여당, 그를 저지하려는 범야권 간 대립이 낳은 역동성에 기반해 전개됐다. 윤석열 정부는 노무현 정부 이래 '단점정부' 형성에 실패한 첫 사례다.
이를 2016년 박근혜 정부 탄핵까지 연장해서 파악하면 한국 정치의 불안정성과 변동성은 그때 이후 점점 더 커지는 추세다. 다시 말해서 2016년 박근혜 정부의 탄핵 이래로 문재인 정부의 정권 재창출 실패, 그리고 올해 윤석열 정부의 단점정부 형성 실패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은 분명 대중동원에 따른 정치적 역동성과 불안정성의 동시 심화를 보여준다. 대통령 임기 보장이 어렵게 되고, ‘10년 주기’ 정권교체설이 파훼됐으며, 이제는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한 권력창출에도 실패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전처럼 입법부를 우회한 시행령 통치를 이어가려 하겠지만 안정적인 국정운영은 어려울 것이다.
여기에 소수정당의 유입을 배제하면서 동시에 정치적 안정성을 담보하던 양당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매개로 다당제적인 형태로 변모하며 정치적 불안정성이 커지고 있다. 조국혁신당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제 지역구를 중심으로 '진지전'을 수행하는 민주당과 특정 의제를 내세워 '기동전'을 수행하는 조국혁신당으로 분화했다. 지난 10여년 동안 민주당과 진보정당 간의 분업체계는 녹색정의당이 원내 진입에 실패하고 조국혁신당이 진보정당을 '대체'하는 방식으로 마무리됐다.
조국혁신당은 명백하게 '민주적 통제'를 내세우며 관료제적인 안정성을 대중동원과 선거로 부정하고자 한다. 예컨대 검사장 직선제와 같이 관료제의 구성원들을 '선거'로 선출하는 방식을 선호하고 있는데 이것은 또 다른 형태의 정치적 불안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예컨대 임기가 4년 보장돼 있고 연임이 가능한 검사장과 민주당이 대립하게 될 때 검사장을 '탄핵'시키기 위해 또 다른 형태의 대중동원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검사장과, 마찬가지로 민주적 정당성을 부여받은 정당이 충돌하며 어떠한 파국이 발생할지 모른다. ‘조국 사태’ 이래로 범민주진영은 거듭해서 기획재정부, 검찰 등의 관료제와 충돌하며 관료제적 안정성을 위협하고 있는데, 비례정당은 그러한 시도가 정권교체로 이어질 가능성을 차단하면서 동시에 더 빠르고, 더 강력하게 개혁(?)을 수행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양당제의 다당제적인 전환이 가져온 이러한 변화는 한편으로는 정치적 불안정성을 키우면서도 다른 한편에서는 좌파 정당의 소멸에서 알 수 있듯이 체제변혁적인 세력이 비례대표제를 매개로 입법부에 진출할 계기를 축소시키고 있다. 정치적 선풍(旋風)이 만들어낸 ‘소용돌이의 정치’가 모든 의제를 빨아들이는 과정에서 역설적이게도 소수정당들의 원내 진출이 차단되는 것이다. 게다가 양당제가 만들어놓은 기본적인 구도 자체는 유지되고 있어 정치적 선풍이 개헌저지선을 넘기는 어려워 보인다. ‘소용돌이의 정치’는 87년 체제라는 찻잔 안의 태풍이다. 그 태풍에 누구도 몸을 가눌 수 없게 됐지만, 그렇다고 해서 태풍이 찻잔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한국형 전제주의는 대통령제와 다당제의 결합을 매개로 한층 더 강력한 ‘소용돌이의 정치’로 진화하고 있는 걸로 보인다. 진보정당의 역할은 이 태풍이 휩쓸고 간 ‘폐허’에 남아 있는 소수자들을 보호하고, 태풍이 더 이상 소수자의 생활세계를 파괴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 진보정당이 소멸한 지금, 우리는 태풍의 바람을 타고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지록위마의 시대> 작가 (fpdlakstp@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