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주말 아침 전화가 울렸다. “노무사님, 회사가 카운터기를 설치하는데 어떡해야 하나요?”
노조가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아 단체협약이 없는 사업장에서 교섭 난항으로 쟁의행위에 돌입하려는 노조 간부의 전화였다. 노조가 조정절차를 거쳐 쟁의행위에 돌입할 준비를 하자, 사용자는 곧장 주말 아침 노동자들의 작업량을 체크하는 이른바 ‘카운터기’를 설치했다. 그리고 쟁의행위 이전의 작업량과 쟁의행위 기간 작업량을 비교·계산해 조합원 임금을 삭감했다. 조악한 카운터기는 고장나기도 하고, 회사의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해 우리 조합원만의 작업량을 나타내는 것도 아니었다. 임금명세서에는 삭감된 급여액만 나올 뿐, 어떠한 작업량을 근거로, 어떠한 방식으로 삭감했는지 알 수 없었다.
7일간 쟁의행위(태업)가 이뤄졌다. 많게는 몇십 만원가량의 급여가 감액됐다. 노조는 주춤주춤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용자는 교섭테이블에 나올 뿐, 단체교섭의 진전은 없었다. 사용자를 압박할 수단은 헌법상 보장된 단체행동뿐이다. 그런데 단 7일간 쟁의행위에도 마구잡이식으로 이뤄진 임금 감액 탓에 노조는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곧바로 임금체불 진정을 넣었지만 당장 노조 상황은 녹록지 않다. 어떻게 돌파해야 할까. 고민이 깊어진다.
2. 또 다른 전화가 울렸다. “노무사님, 지금 회사가 단협 위반하고 국장 임명 강행하려는 데 어떡하나요”.
KBS의 이야기다. 언론노조 KBS본부 단체협약에는 5대 국장 임명시 조합원이 참여한 투표에서 동의를 얻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KBS는 이를 무시하고 지난 1월26일 5대 국장 임명을 강행했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92조2호는 임금·복리후생비, 퇴직금에 관한 사항 등 6개의 항목을 위반한 자에 대하여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위 항목에 해당하지 않는 단협 규정을 위반한 경우 형사처벌할 수 없다. 구 노조법 46조의3은 “단체협약을 위반한 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는 규정을 뒀으나, 헌법재판소가 죄형법정주의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위헌결정을 내려 효력을 잃고, 현행 노조법 92조로 대체해 시행 중이다.
근로감독관 집무규정(훈령 465조) 12조3호는 “단체협약을 위반하는 중대한 행위로 노사분규가 발생했거나 발생 우려가 큰 사업장의 경우” 특별감독을 실시하도록 규정한다. 그렇지만 사용자의 단체협약 위반 행위가 위 6가지 항목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처벌 대상이 아니라며 수리되지 않는 게 통상적이다. 따라서 노조로서는 별도의 단체협약 이행 가처분, 단체협약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등을 할 수밖에 없다.
사용자의 단체협약 위반행위 그 자체가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되는 것도 아니다. 노조법은 사용자가 노동자의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침해하는 행위(부당노동행위)를 법으로 금지하는데, 단체협약 위반행위는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되지 않는다. 적어도 내가 아는 사례 가운데는 없다.
단협 위반을 이유로 노조가 쟁의행위를 할 수도 없다. 쟁의행위를 하기 위해선 조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조정은 “노조와 사용자 또는 사용자단체 간 임금·근로시간·복지·해고 기타 대우 등 근로조건의 결정에 관한 주장의 불일치”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근로조건의 결정’은 바로 노사 간 권리·의무관계가 형성되기 이전, 즉 단체협약 등을 어떤 내용으로 체결할 것인지에 대한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미 단협이 체결되고 그 해석·이행 등의 요구는 노동쟁의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노조는 단협 이행을 위한 쟁의행위를 할 수 없다. 이런 노동쟁의 대상을 ‘근로조건’에 관한 사항으로 개정·확대해서 사용자의 단협 불이행, 부당노동행위도 노동쟁의에 포함한 것이 노란봉투법 내용의 일부였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은 노란봉투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했다.
답답하다. 기껏 힘들게 단체협약을 체결했더니, 일단 위반하는 사용자의 행태에 분노한다. 민사상 구제 절차는 갈 길이 멀고, 근로감독도 안 된다. 약속을 지키라는 단협 이행을 위한 파업도 안 되긴 마찬가지다. 힘이 빠진다.
그럼에도 단협은 중요하다. 노사관계를 규율하는 최상위 자치 규범이자, 조합원을 보호할 수 있는 수단이자,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이기 때문이다. 비록 사용자의 단협 미행에 대한 법적 제재를 취하는 길이 멀게 느껴지겠지만, 그럼에도 제대로 된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외친다. 단체협약을 체결하라, 준수하라, 이행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