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깜깜이’ 기간이다. 이달 4일보다 이르게 결과를 낸 여론조사는 공표가 가능하지만, 오늘을 포함해 이후 조사한 결과는 투표가 끝나기 전까지 공표하면 공직선거법에 의해 제재받는다는 내용이다. 그러니 각 정당은 조사한 결과를 공표하지 못하고 내부 자료로만 활용해야 한다. 언론사도 이달 3일까지 조사한 결과를 반복해서 콘텐츠로 내보낼 수는 있으나, 깜깜이 기간에 조사한 결과는 개표 시작 때까지 참아야 한다.
깜깜이 기간과 우리 정치
이러한 깜깜이 기간을 두는 이유는 조작된 여론조사가 투표에 임박해 공표돼 유권자에게 혼동을 초래하고, 지지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일부 유권자에게 (여론조사를 보고 대세를 따르는) 밴드왜건 효과를 유발해 당락에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다. 과연 그런가. 필자는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본다. 국내 공직선거를 관리하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집중적으로 단속하는 불법행위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해방 전후 시기나 새마을운동으로 동네 청소하던 시기를 지나, 이번 세기 들어서도 우리나라에서 큰 선거가 있을 때마다 선관위는 '금품 향응 제공'을 단속하겠다고 크게 홍보했다. 자발적인 신고를 유도하기도 하고, 때때로 선거운동 기간에도 누군가 금품을 제공해 문제 됐다는 기사가 심심찮게 보였다.
그런데 필자의 기억이 맞다면 2016년 국회의원 총선 때부터, 금품 향응 금지를 알리는 현수막보다는 여론조사를 빙자한 홍보 행위를 금지한다는 식으로 여론조사가 선관위 현수막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깐 이번 세기가 시작된 두에도 금권선거는 여전히 후보자를 유혹하고 있었고, 현금보다 더 효과가 좋은 불법 선거운동의 수단으로 여론조사가 화려하게 등장했다는 게 축약된 국내 불법 선거운동 흑역사다.
이런 맥락을 이해한다면, 선관위가 선거 6일 전부터 조사한 결과를 투표일까지 공개하지 못하게 하는 깜깜이 기간에 이의를 제기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 알 권리야말로 중요하고 또 중요하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여론에 영향을 줄 목적으로 여론조사를 조작한다면 당장 임박한 선거의 유권자 투표 행동에는 영향을 바로 미칠 수 있지만, 조작된 조사라는 증거를 잡는 데는 시간이 조금 걸린다. 그래서 선거 뒤의 처벌을 감수하고 조작된 여론조사를 유포하는 행위를 차단하기 위해 깜깜이 기간을 두는 것이다. 따라서 깜깜이 기간 직전에 여론조사를 조작해서 유포하는 행위는 신속히 단속을 한다면 선거일 전에 잘못된 정보임을 대중적으로 밝힐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
깜깜이 기간에 아무 일도 없을까
그럼 깜깜이 기간에 조사한 결과를 공표할 수 있다고 해서, 깜깜이 기간 전의 여론이 투표에 그대로 반영될까. 전혀 그렇지 않다고 본다. 깜깜이 기간에도 역동적으로 출렁인 여론 때문에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던 선거도 있었다. 가령 지난 대통령선거를 생각해 보자. 깜깜이 기간 시작과 동시에 정국을 강타한 윤석열-안철수 단일화의 효과는 과연 어땠을지.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니 대단한 컨벤션효과는 없었지만, 안철수 후보를 지지하던 표는 분명히 어떤 방향이 됐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물론 대통령선거니 작고 큰 행보와 메시지가 큰 컨벤션으로 이어지고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테지만, 250여개의 지역구로 쪼개져 지역구별로 후보가 출마하는 소선거구제의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사실 큰 컨벤션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메시지나 언행에 의한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 2020년 총선에서도 깜깜이 기간 시작을 전후해 미래통합당 후보 중 한 명이 선관위 주관 토론회에서 세월호 유가족의 농성 텐트 내 사생활을 폭로ㅎ 논란이 됐다. 같은 인물이 과거 세월호 유가족 관련 언급했던 내용도 함께 등장해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다.
당시 전국적으로 미래통합당에 대해 비난 여론이 우세했다고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보수 성향 유권자 다수 분포 지역에서는 오히려 미래통합당 후보를 지지하는 유권자의 투표 적극성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분석됐다. 즉, 어떤 정당이 전국적인 악재를 만났을 때 접전을 벌이던 지역구 중 일부에서는 전세가 악화될 수 있지만, 일부 지역구에서는 오히려 승기를 잡는 방향으로 유권자 투표 행동이 자극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었다.
바로 이런 역동적인 여론 변동이 물밑에서 휘몰아치는 시간이 깜깜이 기간이다. 여론조사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여론 지형이 고착돼 있는 건 절대 아니다.
여론조사 맹신, 안 돼
앞서 여론조사가 불법 선거운동의 도구로 악용될 수 있음을 밝혔으나, 사실 불법과 탈법의 수단으로서 역할이 아니더라도 사실 개표 결과와 다른 ‘정상적’ 여론조사도 얼마든지 많았다. 여론조사에서 두 자릿수 격차로 지던 후보가 개표 결과 당선되는 경우가 아주 드문 일도 아니다. 대표적으로 2016년 종로에서 오세훈 후보와 격돌한 정세균 후보의 사례는 유명하다. 여론조사에서는 두 자릿수로 열세인 결과가 나왔지만 개표 결과로는 오히려 두 자릿수 격차로 당선을 거머쥐었다.
이런 사례는 특히 수도권을 중심으로, 흔히 격전지에서 등장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렇지만 텃밭으로 분류되는 영호남에서도 이런 현상이 가끔 나타나기도 한다. 지역구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가 아주 강하게 나타나면, 지지자 중 일부가 여론조사에서 ‘모르겠다’라고 의견을 숨긴다. 보통 ‘샤이화’라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런 경우 개표 결과는 여론조사와는 판이하게 다르게 나타난다. 이런 지역구는 필자처럼 예측을 해야 하는 연구원을 괴롭히는 대표적인 사례다.
사실 여론조사와 개표 결과는 같을 수가 없다. 왜냐면, 언론에 공표하는 여론조사는 추출한 표본의 내부 구성비를 성별·연령대별·소지역별 모집단 인구 구성비에 맞게 가중처리해서 결과를 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표본 대표성 문제, 즉 유권자를 대표할 수 없는 여론조사라 하여 제재를 받는다. 그렇지만, 투표는 성별·연령대별·소지역별 모집단의 인구 구성비와는 전혀 다르다. 어느 연령대가 투표율이 높고 또 다른 연령대는 투표율이 낮다고 해서 이상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정상적인 투표 결과에서도 연령대별 투표율은 달랐다. 그러니 가중처리를 하지 않고 투표자 모두 그대로 반영하는 개표 결과와 여론조사가 같다고 주장한다면 이건 여론조사 생산 과정을 몰라도 전혀 모르는 거다.
이런 사실을 왜 여론조사 업체에서는 말하지 않을까. 여론조사 응답자의 응답 패턴과 유권자 투표 행동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면, 여론조사 무용론이 강화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총선 여론조사에서도 적극 투표 의향자는 대략 80%를 넘고 90%에 육박하는 결과도 많다. 그런데 실제 총선 투표율은 최근 70%를 넘는 경우가 없었다. 투표 의지도 측정이 어려운 여론조사가 어떻게 개표 결과와 완전히 동일할 수 있겠는가. 역으로 잘 관리된 여론조사가 개표 결과와 같다면,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투표보다는 여론조사로 결정하면 될 일이다. 다르게 나타나는 게 정상이니 투표로 결정하는 거다.
여론조사에 흔들리지 말고 소신 투표해야
그래서 필자는 후보들에게도 여론조사에서 우세했다고 방심하지 말고, 열세였다고 자포자기 하지 마라고 말한다. 유권자에게도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가 여론조사에서 우세하건 열세에 있건 소신대로 선관위에서 안내하는 방법으로 차분히 투표하시라고 한다. 그래야 깜깜이 기간에 넘쳐 나는 ‘카더라 통신’이 만드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웩더독(wag the dog)’ 현상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메타보이스㈜ 이사 (bongshinkim@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