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상철(노무법인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회원)

지난달 22일 반갑지만 가슴 저린 업무상 재해 인정 소식을 접했다.

서울남부질병판정위원회가 삼성반도체 오퍼레이터 노동자의 태아 3명에 대해 △근무 중에 다양한 생식독성 및 생식세포 변이원성 물질에 노출된 점 △과거 사업장 환경상 유해물질에 많이 노출됐을 것으로 추정되는 점 △중대한 기형의 경우 출산에 이르지 못하고 유산에 이르는 경우가 많은데 반도체 업종 여성 근로자에게서 유산의 증가가 확인되는 점 △사무직 전환 후 태어난 아이가 건강한 점 등을 이유로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2021년 5월 신청 후 3년 만의 결과이다.

지난 1월15일 임신 중 유해환경에 노출된 간호사의 자녀에게 발생한 선천성 질환도 “근로자 자녀의 상병이 업무 관련성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상당한 것”으로 판단해 업무상 재해로 인정됐다. 2023년 1월부터 시행된 산업재해보상보험법 91조의12(건강손상자녀에 대한 업무상의 재해의 인정기준)은 “임신 중인 근로자가 업무수행 과정에서 37조1항 1호·3호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유해인자의 취급이나 노출로 인해, 출산한 자녀에게 부상·질병 또는 장해가 발생하거나 그 자녀가 사망한 경우 업무상의 재해로 본다. 이 경우 그 출산한 자녀(건강손상자녀)는 5조2호에도 불구하고 이 법을 적용할 때 해당 업무상 재해의 사유가 발생한 당시 임신한 근로자가 속한 사업의 근로자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태아의 산재 적용에 관한 뼈아픈 사건의 시작과 산재법 개정의 과정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제주의료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들은 2009년에 임신해 2010년 아이를 출산했는데 그 아이들은 선천성 심장질환을 갖고 있었다. 제주의료원에서 근무하던 간호사들 중 2009년에 임신한 사람은 총 15명이었는데 그 중 6명만 정상 아이를 출산하였을 뿐이고 4명은 심장질환아를 출산하고, 다른 5명은 유산했다. 간호사들의 노동조건과 작업환경이 노사 간 쟁점이 됐다. 2012년 2월 서울대학교 산학협력단 역학조사 보고서가 제출됐다. 2012년 12월11일 “서울대 역학조사 보고서의 내용을 토대로 간호사들이 임신 초기에 산모와 태아의 건강에 유해한 요소들에 노출돼 태아의 심장 형성에 장애가 발생했으므로 선천성 심장질환아 출산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며 요양급여를 청구했다. 그러나 2012년 12월27일 “간호사들의 자녀는 산재법 적용을 받는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부지급처분(1차 거부처분)을 했다. 심사청구를 제기하였으나 기각된 후 2013년 9월 “태아에 심장 형성의 장애가 발생하였을 당시에 태아는 모체의 일부였으므로, 발병 당시 태아의 질병은 모체의 질병으로 봐야 하며, 산재보험법의 적용 여부는 근로자에게 질병이 발병할 당시를 기준으로 하며, 발병 이후 근로자 지위를 상실했다고 해도 계속 산재보험이 적용되므로, 자녀의 선천성 심장질환을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해야 한다”며 다시 요양급여 청구를 했다. 그러나 근로복지공단은 자료보완 미비 등을 이유로 반려처분(2차 거부처분)을 했다. 2014년 12월 행정법원은 간호사 자녀들의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으나, 2016년 5월11일 고등법원은 원심 판결을 취소했다. 2020년 4월29일 대법원(2016두41071)은 “임신한 여성 근로자에게 그 업무에 기인해 발생한 태아의 건강손상은 여성 근로자의 노동능력에 미치는 영향 정도와 관계없이 산재법에서 정한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포함되고, 여성 근로자는 출산 이후에도 모체에서 분리되어 태어난 출산아의 선천성 질병 등에 관해 요양급여를 수급할 수 있는 권리를 상실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제주의료원 사건 발생과 소송에 11년 걸렸고, 대법원 판결 후 2022년 1월 산재보험법 개정까지 다시 2년이 걸려 2023년 1월부터 ‘태아산재법’이 시행됐다. 그리고 2024년 1월부터 태아의 업무상 재해를 인정하는 사례가 생겼다.

지난 15년 동안 태아의 업무상 재해 인정 여부를 둘러싼 법적 쟁점은 산재보험법 개정으로 어느 정도 해소됐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산재법 시행령(별표11의4) 건강손상자녀 관련 유해인자(화학적 유해인자, 약물적 유해인자, 물리적 유해인자, 생물학적 유해인자, 기타)에 관한 범위의 문제, 장기간에 걸친 역학조사의 문제, 아버지의 유해요인 노출여부 등 건강손상자녀의 업무관련성을 둘러싼 논란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태아의 업무상 재해에 관한 사건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노동자들의 작업환경을 개선하고, 점검하고, 다시 개선하고, 점검해야 한다. 안전상‧보건상 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진 일터의 작업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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