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일, 나의 일터, 내가 살아 온 날을 기록해 보자. 전문작가의 글처럼 수려하고 논리적일 필요는 없다. 나의 삶이 꼭 성공적이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다. 나의 삶을 기록하는 자체로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사회적기업인 협동조합 은빛기획이 노동자들과 퇴직예정자들에게 글쓰기, 자서전 쓰기를 제안한다. <편집자>
지난 글에서 글쓰기에 얽힌 내 삶의 이야기를 한 편의 자전에세이로 정리해 봤다. 자전에세이·자서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왜 하필 지금 ‘자서전 쓰기’인가? 무엇보다 기대 수명이 늘어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자신의 삶을 정리할 충분한 시간을 갖게 됐다. 우리나라의 경제와 민주주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사람들의 주도성이 높아진 것도 주 원인이다. 세상을 만들어 가는 주체로 자신의 삶을 인식하고 자신의 개인사를 기록해 세상에 의미 있는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데 자서전 만한 방법이 없다.
자서전 쓰기 책이 몇 권 나와 있지만 이론 중심의 내용이거나 글쓰기 책의 한 챕터로 끼워져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서전을 쓰는 사람들이 글쓰기에 활용하기 어렵다. 이 글은 연대기적 자서전 쓰기를 지양하고, 삶의 변곡점에서 글의 씨앗을 가져와 쓰는 방법을 소개한다. 삶에 방향을 바꾼 사건부터 글을 풀어 간다. 이를 통해 자서전이 단순한 기록을 넘어 글쓴이가 자신의 삶을 소중히 기념하고 잘 놓아줄 수 있는 치유의 과정이 될 수 있다. 사건이나 업적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면서 자기 삶의 진실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체험을 할 수 있게 된다.
① 내 인생의 씨앗 발견하기
인생의 변곡점은 무엇이었는가? 아무리 평탄한 삶을 살았던 사람이라고 해도 ‘굴곡’이 있기 마련이다. 삶은 그 굴곡을 지나며 방향이 바뀐다. 방향이 바뀐다는 것은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변곡점을 지나기 전과 그 이후의 삶은 무엇이 바뀌었는가? 그것을 찾아 정리해 보는 것이 자서전 전체에서 큰 줄기가 될 것이다.
② 글감 모으기
태어나면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시간을 떠올려 보면 60년을 산 사람도 30분 정도면 더 생각나는 것이 없다. 그 긴 시간을 살았는데 고작 30분이 끝이라니. 모두 놀란다. 살면서 우리는 의외로 자기의 과거를 차분히 되돌아볼 기회를 갖지 못했다. 특별히 명상센터나 템플스테이를 찾아가지 않는 한 한 번도 그때까지의 삶을 최초의 기억부터 차례차례 더듬어 본 적이 없다. 글감을 모으는 것은 숨겨진 과거의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③ 기본 구성 익히기
이야기는 하나의 거대한 사건 그 자체다. 이야기가 만들어지려면 구체적인 장면을 떠올려야 한다. 출발점을 어디로 할 것인지, 끝은 어떻게 끝낼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장면의 시작과 끝은 사건의 목적 즉, 그 이야기의 목적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건은 없고 서술만 남는 글이 되고 만다. 사건은 배경과 이미지·행동·대화 속에 자리 잡는다.
글이 이야기로만 서술되고 있으면 쓰고 싶은 장면의 배경을 직접 구체적으로 그려 보는 것도 좋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살던 동네가 공간적 배경이라면 그 모습을 지도로 만들어 보자. 미처 생각지 못했던 기억들이 떠오를 것이다. 몇 장면만 시도하면 다음부터는 훨씬 더 쉬워질 것이다.
④ 무조건 시작하라
글 쓰는 것과 말하는 것이 다르지만 의사소통의 수단이라는 것은 같다. 글로 표현하는 것이 두렵다면 스마트폰의 녹음 버튼을 누르고 친구에게 자기가 살아온 삶을 들려주듯 이야기를 시작하라. 말은 일상적으로 늘 하기 때문에 글보다 쉬울 것이다. 녹음한 내용을 글로 옮겨 주는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하면 거친 수준의 초고를 만들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당장 시작하는 것이다.
⑤ 이야기 씨앗 키우기
글감을 모으고, 구성을 익히는 동안 어쩔 수 없이 삶을 많이 되돌아봤을 것이다. 처음에는 생각나지 않았던 것들도 어느 순간 떠올랐을 것이다. 막연한 공간이 좀 더 구체적으로 변했을 것이다. 아득해서 몇 장면밖에 되지 않았던 어린 시절이 제법 여러 장의 사진이 됐다. 기억은 불완전해서 완전하게 복원할 수는 없지만 더 깊이 들여다볼수록 진실에 더 다가갈 수 있다. 특히, 어린 시절의 기억은 의식의 가장 밑바닥에 처박혀 있기 때문에 건져 올리기 쉽지 않고, 진실을 찾아가기도 힘들다. 하지만 삶의 기록은 완벽한 진실이 목적은 아니다. 오로지 진실만을 말할 수는 없다. 당신이 알고 있는 것을 양심적으로 말하는 방법이 최선이다.
인생 중반부는 할 이야기가 가장 많을 것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키워드 형식으로 서술해 보라. 그리고 중요한 사건 순으로 번호를 붙여 보라. 이제 몇 가지를 이야기할 것인지만 고르면 된다. 사건들의 내용은 제각각일지라도 그것들이 하나의 연결고리로 묶여 있어야만 된다. 예를 들어 사랑을 좇아가던 시간이었다면 그런 사건들만을 골라 쓰는 것이 좋다. 그렇지 않으면 큰 맥락에서 봤을 때 글의 목적을 찾기 어렵다. 원고가 절반쯤 모였다면 다시 한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자서전은 살아온 이야기를 두서없이 하는 것이 아니다. 이쯤에서 자서전을 시작할 때 했던 질문을 다시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나는 왜 자서전을 쓰는가?
⑥ 쓰다가 막혔을 때 돌아가기
쓰다가 막히면 구체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 좋다. 구체적 질문은 구체적 기억을 가져다준다. 큰 범위에서 작은 범위로 좁혀 가면 구체적 질문이 된다. 이것은 공간과 시간 둘 다 해당된다. 사물에 대해서도, 생각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자동차라 하지 말고 소나타라 하고, 나무라 하지 말고 은행나무라 써야 한다. 표현이 구체적일 때 삶이 더 잘 드러난다.
⑦ 연대기 작성하기
이제 써 놓은 원고량이 제법 될 것이다. 이쯤에서 시간대별로 연대기를 작성해 보는 것도 좋다. 옛날 국사책 뒷부분에 있었던 연대기처럼 항목을 나눠도 좋다. 사회, 가족, 개인 등. 이런 과정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에피소드가 떠오를 수도 있다. 보석 같은 기억을 주울지도 모른다. 씨앗 키우기에서 빠진 중요한 사건이 있을지도 모른다. 꼼꼼하게 연대기를 작성해 보자.
⑧ 앨범 꺼내 보기
앨범 속에 끼워진 사진들이야말로 기억의 실체들이다. 앨범을 한 장씩 넘기면서 당신만의 슬라이드 쇼를 만들어 보자. 이야기의 장면이 될 수 있는 것을 찾을 수 있다. 장면은 행동이 필요하고, 시간과 장소가 필요하고, 인물의 움직임이 필요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면 더 잘 찾을 수 있다.
⑨ 퇴고 - 전체 흐름 따라 재구성
아무리 설계도가 완벽했다고 해도 집을 짓다 보면 도면과는 다른 선택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글을 쓰는 것은 집을 짓는 일보다 훨씬 유동적이다. 개요를 짜고 시작하지만 변경·삽입·삭제를 거듭해야만 한다. 오히려 유동적인 부분이 있어야 좋은 글이 되는 경우가 많다. 흐름에서 벗어난 장면이 있다면 재배열하거나 수정하면 된다.
퇴고의 중요성을 말하는 글은 아주 많다. 그만큼 퇴고가 중요하다는 반증이다. 글의 힘은 퇴고에서 나온다. 퇴고는 글 전체 수준 → 문단 수준 → 문장 수준 → 단어 수준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다. 문장 압축하기, 소리 내어 읽어 보기, 모호한 부분 없애기 등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할 수 있다.
가까운 사람이나 전문적인 작가에게 초고를 보여주는 것도 필요하다. 글을 객관적으로 보고 조언해 줄 사람이 필요하다. 쓰는 사람이 놓쳤던 사소한 것을 다른 사람은 금방 찾아낼 수 있다.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어떤 요소를 더하는 것이 글을 깊게 할 수 있을지 조언해 줄 수 있다. 작은 차이가 큰 차이를 만든다는 말은 글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