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어린이와 청소년들. <미니>
▲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어린이와 청소년들. <미니>

“그들이 아직도 글을 쓰고 떠벌리는 동안 우리는 야전 병원과 죽어가는 동료들을 보았다. 이들이 국가에 대한 충성이 최고라고 지껄이는 동안 우리는 이미 죽음에 대한 공포가 훨씬 더 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 레마르크 <서부 전선 이상 없다>

10대 시절 제가 자주 하던 게임이 ‘갤러그’와 ‘엑스리온’입니다. 내용은 단순해서 제가 비행기 조종사가 돼 상대를 많이 때려 부술수록 점수가 올라가는 게임입니다. 그 시절 제가 푹 빠져 읽던 책은 <삼국지>로, 관우가 전투를 끝내고 술 한잔 ‘캬~’ 마시는 게 정말 멋져 보였습니다. 언젠가 기회 되면 저도 전쟁에 나가서 그렇게 멋지게 싸우면 좋겠다 상상도 했고요.

20대 어느 날엔 ‘반공웅변대회’에나 있는 줄 알았던 6·25와 인민군에 대한 이야기를 아버지에게서 우연히 들었습니다. 할머니는 경북 포항 시내에서도 한참 떨어진 어느 시골 마을에 살고 있었는데, 전쟁이 벌어지고 인민군이 그 마을까지 왔다고 합니다. 어린 아버지는 인민군 행렬을 구경하고 있었고, 할머니는 깜짝 놀라 얼른 아버지를 끌어당기며 집안으로 숨었다고 합니다.

한번은 외국 어느 나라에 갔다 사람이 총에 맞아 죽는 것을 직접 본 일이 있습니다. 조금 전까지 저와 수다를 떨던 사람이 갑자기 총에 맞아 피를 흘리며 죽는 모습을 보는 것은 게임처럼 단순한 일도, 삼국지처럼 멋진 일도 아니었습니다. 이런 일들을 통해서 전쟁에 대해 막연했던 저의 생각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2024년 3월17일 일요일 새벽입니다. 여러분은 무얼 하고 계시나요? 저는 잠에서 깨자마자 가장 먼저 팔레스타인 관련 뉴스를 확인했습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대규모 군사공격을 시작한 2023년 10월7일 이후 160일 넘게 제 하루의 시작은 언제나 팔레스타인입니다.

전쟁 또 전쟁

1948년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땅의 78%를 차지했고, 1967년 전쟁으로 남아있던 요르단강 서안지구(West Bank)와 가자지구(Gaza Strip)까지 점령합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유와 해방을 얻기 위해 투쟁했고, 이에 대해 이스라엘은 투옥·고문·암살은 기본이고 수시로 폭탄까지 쏟아부었습니다.

“1967년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점령한 이후로 가장 참혹한 상황이 그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겁니다. 한 마디로, 가자지구는 대규모 강제수용소에 불과합니다.”
- 노엄 촘스키·질베르 아슈카르 <촘스키와 아슈카르, 중동을 이야기하다>

특히 가자지구 상황이 심각한데, 이스라엘은 1990년대부터 가자 주위에 콘크리트와 철조망으로 장벽을 쌓는 것은 물론, 2007년부터는 사람이 외부로 이동할 수 없도록 봉쇄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봉쇄된 상태에서 2007~2022년까지 수차례 전쟁을 자행합니다. 그중 심각한 세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는 2008년 12월27일부터 2009년 1월18일까지 22일 동안 벌어집니다. 이스라엘은 전투기와 헬리콥터를 동원한 폭격으로 1천4백여명의 팔레스타인인을 살해했습니다. 카타르 언론 <알 자지라>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사람의 피부를 태울 수 있는 화학무기 백린탄까지 사용했습니다.

두 번째는 2014년 7월8일부터 8월26일까지 약 50일 동안 계속됩니다. UNRWA(유엔 팔레스타인 난민구호 사업기구)에 따르면 이 공격으로 2천251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사망하는데, 이 가운데는 어린이·청소년 551명과 여성 299명이 포함됩니다. 1만2천 채의 주택이 완전히 파괴되고, 50만명가량이 난민이 됩니다. 피해 규모에는 큰 차이가 있지만, 2024년 가자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과 비슷한 일이 10여년 전에도 있었던 겁니다.

세 번째는 2018년 3월30일 시작됩니다. 그날도 팔레스타인인들은 전쟁으로 쫓겨난 난민의 귀환과 가자를 둘러싼 장벽의 철거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스라엘군이 총을 쏘기 시작했고, 수 개월간 이어진 시위와 공격으로 2백명 이상이 사망합니다.

이후 2021년과 2022년에도 이스라엘은 가자를 폭격해 수백 명을 살해했습니다. 2023년 10월7일 또다시 군사공격을 시작한 이스라엘은 오늘까지 3만2천명이라는, 상상하기 어려운 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지만 공격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살아, 남기

<미니>
<미니>

1948년 팔레스타인 땅에 이스라엘을 건국하면서부터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인에 대한 강제 추방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동안 나치가 ‘유대인 없는 독일’을 내세우며 그들을 죽이거나 내쫓았던 것처럼.

아미하이 엘리야후는 이스라엘의 예루살렘 문제와 유산 담당 장관입니다. 그는 2023년 11월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가자지구에는 현재 비전투 요원이 없다’며 핵무기 사용도 선택지 가운데 하나라고 했습니다. 참고로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가 2022년 발표한 자료를 보면 이스라엘은 90개가량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11일 이스라엘 언론 예루살렘 포스트의 보도에 따르면, 국가안보장관 이타마르 벤그비르는 내각회의에서 이스라엘 지역으로 다가오는 팔레스타인 여성과 어린이들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엘리야후와 벤그비르의 발언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들을 절멸이나 제거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걸 잘 보여줍니다. 처음부터 동등한 인간으로 함께 살겠다는 생각 같은 건 아예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지난 10월 가자 북쪽지역부터 폭격하면서 주민들에게 살고 싶으면 남쪽으로 이동하라고 했습니다. 점점 남쪽으로 폭격 범위를 넓히면서 가자 시티(Gaza City), 칸 유니스(Khan Younis) 등지의 주민들까지 약 140만명을 토끼몰이 하듯 가자의 최남단 라파(Rafah)에 몰아 넣었습니다. 라파는 이집트와 국경을 맞댄 곳입니다. 이스라엘이 이집트에게 팔레스타인 난민 수십만 명의 수용을 요구했으나 이집트는 이를 거부한 상태입니다. 가능한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을 가자 밖으로 몰아내고 싶어하는 겁니다.

1948년 8월에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 마을을 불도저로 싹 밀어버리고 경작지로 전환하거나 새로운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기로 결정한 뒤 마을의 절반이 이미 사라져 버린 상태였다. 새로운 정착촌을 위한 명명(命名)위원회가 구성되어 원래의 아랍식 이름을 히브리식으로 변경했다.
-일란 파페 <팔레스타인 현대사>

여러분이나 저와 같은 한 생명체로써 팔레스타인인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죽지 않고 ‘살아’ 남는 것입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팔레스타인에서 떠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지만, 그들은 오랜 세월 살아온 땅에서 팔레스타인인으로서의 정체성 또한 유지하고 싶어합니다. 그동안 이스라엘 행태에서 알 수 있듯 팔레스타인인이 그 땅에서 한번 떠나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게 할 겁니다. 땅에 대한 소유권을 박탈하는 것은 물론이고, 문화나 종교와 같은 정체성마저 없애버릴 겁니다. 그야말로 팔레스타인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만들고 싶어하기 때문입니다.

팔레스타인에는 ‘살아 남는 것이 저항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살아’ 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팔레스타인인에게는 팔레스타인이라는 존재로 살아 ‘남는’ 것 또한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들은 오늘도 ‘살아’, ‘남기’ 위해 이 비참한 전쟁의 시간을 견디고 또 견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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