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 기자

한국지엠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자동차(PHEV) 도입 계획이 뒤집힌 가운데 한국지엠을 정점으로 한 공급망 사슬의 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27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한국지엠 PHEV 도입이 지엠본사가 위치한 미국의 사정 변화와 내연기관차 규제 완화 같은 외부요인에 따라 철회되면서 한국지엠은 2개 차종만 생산하는 지엠의 하청기지 체제를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신차 배정이 끊긴 한국지엠의 라인업상 부품과 판매·정비 같은 전후방 산업의 위축도 가속화할 전망이다.

실적은 큰 걸음, 내수는 게걸음

한국지엠의 지난해 실적은 2022년과 비교하면 훨씬 나아졌다. 지난해 총 판매대수는 46만8천59대로, 2022년 대비 무려 76.6% 증가했다. 2017년 이후 최대다.

해외 판매가 주력이다. 46만8천59대 중 해외 판매가 42만9천304대로 2022년보다 88.5%나 증가했다. 트레일블레이저 21만3천169대, 트랙스 크로스오버 21만6천135대를 팔았다. 내수는 게걸음 수준이다. 지난해 3만8천755대를 팔았는데 2022년과 비교하면 4.1% 증가한 수치다. 지난해 12월 판매량은 5만1천415대로 2022년 12월 대비 116%나 증가했고, 이 판매량은 지난해 열두 달 중 가장 높은 실적이다.

그러나 전후방 산업은 이런 실적 개선에도 마냥 웃을 순 없다. 최근 수년간 한국지엠이 부진을 면치 못하면서 부품과 판매·정비산업이 황폐화됐기 때문이다.

정비·판매 후방산업 급전직하

후방산업인 정비산업은 한국지엠 국내 판매가 활발해야 성장할 수 있는 산업이다. 그러나 한국지엠은 2018년 군산공장 가동중단 사태 이후 국내 5개 완성차 기업 중 내수 판매가 꼴찌다. 이에 따른 매출 악화가 뚜렷하다. 한국지엠 전국정비사업자연합회(회장 이계훈) 조사에 따르면 2019년 35만1천207대였던 보증수리 입고대수가 지난해 12만4천999대로 절반선마저 무너졌고, 이에 따라 보증수리 공임은 84억6천800만원에서 52억2천만원으로 하락했다. 이계훈 회장은 “2023년 입고대수는 2019년 대비 35.59% 수준으로 줄었고 보증수리 공임도 44.2% 감소했다”며 “보증수리 공임이 매년 3~4% 수준으로 인상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입고대수와 공임매출액 모두 마이너스성장이 가파르다”고 설명했다.

판매대리점도 판매할 차종이 부족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김성룡 한국지엠 대리점협의회 정책의장은 “트레일블레이저와 트랙스 2개 차종만 국내 생산으로 내수 판매를 하다 보니 고객이 선택할 다양한 라인업이 없어 판매도 어렵고 대리점 생존도 어려워 신차 개발생산 차종을 확대해 국내 생산과 판매 활성화 지원이 필요하다”며 “특히 중장기적으로 PHEV를 비롯한 전기차 같은 친환경차 국내 생산과 공급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수조원 들여 연구개발하면 생산은 해외에서
로열티·이자 장사로 지엠 본사만 배불러

당황스러운 것은 결코 한국지엠이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는데도 생산·판매할 차량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에 따르면 한국지엠은 2006년 3천618억원과 이듬해 5천990억원을 비롯해 2018년까지 7조5천739억원을 연구개발비로 썼다(2019년부터 로열티 본사 납부). 박태엽 지부 대의원은 “자동차기업이 신차 한 대를 개발할 때 5천억원 정도 비용을 들이는데 한국지엠은 2007년부터 2018년까지 매년 5천억원 이상 연구개발비를 지출했다”며 “개발은 한국지엠이 하고 생산은 지엠에서 하는 구조 때문에 신차 배정이 없고 생산도 위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한국지엠 연구법인인 GMTCK가 연구 개발하는 차종인 L234 BEV·D2 PHEV·L243 BEV는 모두 국내에서 생산하지 않는 차종이다.

이는 2010년 산업은행과 지엠 간 비용분담합의(CSA) 때문이다. 합의에 따르면 한국지엠과 지엠이 공동개발한 기술은 항구적 무상사용권이 보장되고, 연구개발비 분담에 따라 로열티 배분이 가능하다. 박태엽 지부 대의원은 “당시 산업은행은 미국에서 개발된 차량을 한국에서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지만 결정권이 모두 지엠에 있어 불가능한 구조”라며 “실제 전기차인 볼트는 한국지엠이 개발했지만 미국에서 생산해 수입하는 형태로 판매수익은 모두 지엠본사가 갖는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한국지엠이 국내 생산 자동차 원가비율을 높여 미국에 염가로 넘기고, 미국 본사로부터 국내 금리보다 높은 이율로 자금을 빌려 이자를 내는 등 이전가격 문제도 지엠의 횡포로 지적된다.

폐업 위기에 몰린 부품사

생산 차종이 부족하고 PHEV를 비롯한 친환경차를 생산할 수 없는 문제는 부품사의 위기도 초래한다. 한국지엠에 주로 부품을 납품하는 SH-CP 같은 기업이 대표적이다. 실적 부진과 차종 부족 등으로 2022년 한국지엠 부평2공장이 문을 닫을 때 함께 공장을 폐쇄했다. 오제원 노조 인천지부 SH-CP지회장은 “PHEV 개발 소식을 듣고 희망을 품었지만 이달 7일 개발 중단 소식이 전해지며 희망마저 사라졌다”며 “2022년 9월 공장 폐쇄는 노동자 해고와 고용불안으로 이어졌고 해당 노동자들은 지금도 일을 하지 못하는 사이 SH-CP도 폐업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런 상황이 지속하면서 한국지엠 노동자들은 공급망 내 노동자·사용자단체와 함께 국정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22대 총선 부평을 지역구에 출마한 국민의힘·녹색정의당·더불어민주당·새로운미래 선거캠프는 27일 오전 인천시 부평구 한국지엠 부평공장에서 열린 한국지엠 동반성장 정책토론회에서 이전가격을 비롯한 한국지엠의 경영문제를 국정조사로 다룰 것에 공감대를 이뤘다. 이와함께 △당선 직후 한국지엠 공급사슬 관계 노조·사용자 간담회 개최 △임기 시작 뒤 산업통상자원부·산업은행 관계자 포함 국회 토론회 개최를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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