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기아자동차 라인업 중에서 잘 팔리는 PHEV(플러그인 하이드리드) 라인에서 일하지만 이 공장에서 가장 월급이 적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요. 일한 노동의 대가로 삶을 꾸려야 하는데 그 대가를 (압류로) 약탈당하는 기분도 듭니다. 불법파견 범죄를 자행한 이들은 대법원 판결에도 처벌을 받지 않았어요. 물론 고공농성으로 피해를 줬지만 투쟁한 노동자는…. 끝이 없는 지옥 같은데 탈출구가 보이질 않아요. 손해배상과 가압류 때문에 이래서 극단적인 생각까지 한다고 이해하게 됐습니다. 안 당하면 잘 몰라요.”

기아차 화성공장에서 일하는 최정명씨의 말이다. 2015년 기아차의 불법파견 문제를 고발하기 위해 당시 국가인권위원회가 위치한 서울 중구 금세기빌딩 광고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한 최씨는 현재 광고사가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져 월급을 압류당하고 있다. 당시 그는 금속노조 기아자동차 비정규직분회(현 지회) 대의원으로, 그와 함께 광고탑에 올랐던 이가 한규협 당시 분회 정책부장이다. 현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당시 분회장이다.

2015년 비정규직 정규직화 요구하며 광고탑 점거

24일 <매일노동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이들 3명은 당시 투쟁으로 광고사에 배상해야 할 돈을 마련하지 못해 월급을 압류당하고, 최근 부동산까지 경매에 넘어갈 위기에 처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은 2015년 6월11일 기아차 사내하청 노동자 3천400여명 전원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면서 금세기빌딩 옥상에 광고사 광고탑에 올라 ‘기아차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몽구가 책임져라, 전광판 위 고공농성 중입니다’고 적은 플래카드를 설치했다. 고공농성은 364일 동안 이어져 이듬해인 2016년 6월8일 내려올 때까지 지속됐다. 이 과정에서 ‘불법파견 현행범 정몽구를 구속하라’ ‘기아차 비정규직 정규직화 정몽구가 책임지라’ ‘정규직 전환, 정몽구 구속’이라고 기재된 플래카드가 연이어 걸렸다. 그 결과 이들은 공동건조물침입·공동재물손괴·업무방해·미신고 옥외집회 등으로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형을 받았다.

문제는 민사다. 광고사는 점거 중인 2016년 4월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고 서울중앙지법은 이를 받아들여 5억4천226만5천817원과 이자를 가산해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3명 모두 해고돼 갚을 길이 없었다. 이들은 급여와 유체동산을 압류당하고 기아차 비정규직지회들이 모금한 돈으로 원금 일부를 가까스로 변제했지만 이자가 더 가파르게 늘었다. 이후 이들 3명 모두 2022년 11월30일 대법원 판결로 불법파견이 확인됨에 따라, 기아차가 지급한 불법파견 손해배상금을 받았지만 전부 압류됐다. 최씨는 “기아차가 지급하는 자녀 학자금 지원금까지 모두 압류돼 있다”며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조정 성립에도 갚을 길 요원
“노조법 2·3조 개정, 절실해”

이들 3명이 손배액을 갚을 여지가 보이지 않으면서 광고사는 2022년 1월 양 위원장이 거주 중인 아파트를 경매에 넘기겠다는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지난해 10월 가까스로 조정이 성립돼 손배액을 2억원으로 합의하고 1월31일까지 납부하기로 했지만 기한이 지난 지금도 납부하지 못해 강제경매를 피하기 어렵게 됐다. 한씨는 “투쟁 도중 해고가 돼 8년가량 수입이 일정하지 않았고 지회 등이 지원을 해주고 많은 정성이 모였음에도 손배액을 내기 어려웠다”며 “세간살이에 모두 빨간딱지가 붙어 경매에 넘겨지는 과정이 있었다”고 토로했다.

양 위원장은 “개인적이기도 하고 공적이기도 한 일이라 언급이 어렵다”면서도 “지난해 민주노총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2·3조 개정을 요구한 것도 손배 문제가 주요 쟁점이었고, 현재도 한국옵티칼하이테크지회 동지들이 농성 중인 상황에서 손배·가압류 추심이 들어오고 있고 집에 압류 딱지를 붙이고 경매를 하겠다며 위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법률의 미비로 노동자 개인이 생존이 불가능할 정도로 압박을 가하는 문제를 바로잡아야 하고, 이 때문에 노조법 2·3조 개정과 손배·가압류 문제 등을 총선 이후 추진하는 게 절박한 문제라는 것을 직접 체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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