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2022년 1월27일 시행된 지 2년을 맞았다. 안전보건 조치의무를 위반해 인명피해를 낸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규정함으로써 중대재해를 예방하고 노동자와 시민의 생명과 신체 보호를 목적으로 정해진 법률이 법원에선 제대로 작동하고 있을까. <매일노동뉴스>는 5차례에 걸쳐 검찰 기소와 법원 판결을 분석해 법 적용의 한계와 개선점을 모색한다. <편집자>

① 법원은 산업안전보건법 ‘솜방망이 처벌’ 답습

② ‘후진국형 재해’ 대부분, 법원은 ‘피해자 과실’

③ 법원도 입법취지 주목, ‘적당주의’ 안 통했다

④ ‘고의성’ 짙은 검찰, 구형량 낮고 회장님 불기소

⑤ 기업은 ‘바지사장’ 로펌은 ‘경영책임자 방어’

“저는 이제 대표가 아닙니다. (사고가 나면) 대표이사가 계속 바뀌어야 해요. 동일 범죄가 되면 아마 다른 건설사들도 대표자들이 임원을 돌아가면서 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것 같습니다.”

대구 지역 중견건설사 ‘홍성건설’ 대표 A(62)씨가 지난해 11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산업재해치사) 혐의로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직후 법정을 나서며 한 말이다. A씨는 <매일노동뉴스>가 소감을 묻자 대뜸 명함부터 내밀었다. 명함의 직함에는 ‘대표’가 아닌 ‘회장’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대표 자리에서 물러나서 (안전보건과 관련해) 이제 결재조차 하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표 내려놓고 ‘회장님’ 영전 “누가 대표 맡겠냐”

홍성건설은 아파트 브랜드 ‘블루핀’을 내세워 2022년 시공능력 순위 200위를 기록한 중견건설사다. A씨는 창업자인데도 ‘재범 가중’을 우려해 대표직을 내려놓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사고가 또 나면 기소될 건데 누가 대표를 맡으려고 하겠느냐”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A씨는 2022년 6월 경북 성주시 상수도 확장 사업의 배수관로 공사 현장에서 청소하던 하청노동자가 후진하는 굴삭기에 깔려 숨진 사고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시공능력 순위가 상위 200위 안에 포함되는데도 안전보건 업무 총괄·관리 전담 조직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판단했고, 법원도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2년 만에 ‘오너 리스크’에 대응하려는 기업이 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른바 ‘바지사장’을 내세우거나 ‘경영권 승계’를 통해 중대재해를 일으킨 경영책임자의 기소를 피하려고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 선고된 사건 중에 홍성건설 외에도 대표가 교체된 사례는 더 있다. 경기 부천시 소재 건설사 ‘건륭건설’ 대표 B씨는 지난해 10월 1심에서 징역 1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직후 인터뷰에서 “대표직을 내려놓았다”고 밝혔다. 그는 “다시 사고가 발생하면 구속될 것으로 생각하니 도저히 회사를 운영할 엄두가 나질 않는다”고 토로했다.

삼표그룹 ‘2세 경영’, 동국제강 ‘지주사 전환’

문제는 기업 규모와 무관하게 중대재해 처벌을 막기 위한 ‘편법 경영’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는 데 있다. 중대재해가 발생한 대기업을 위주로 ‘경영권 승계’를 시도하고 있다. ‘중대재해 1호 사고’로 불린 삼표그룹이 대표적이다. 정도원 삼표그룹 회장은 2022년 1월 경기 양주 채석장 붕괴로 노동자 3명이 사망한 사고로 지난해 3월31일 불구속 기소돼 재판받고 있다. 검찰은 실질적이고 최종적인 권한을 행사한 정 회장이 경영책임자라고 판단했다. 4월9일 첫 정식재판이 열릴 예정이다. 재판 장기화가 예상되면서 경영권 승계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게 업계의 관측이다.

2020년 12월31일 기준 ‘삼표 주요 주주 현황’에 따르면 정 회장과 아들 정대현 부회장이 삼표그룹의 지분 97.76%를 보유한 최대주주였다. 지난해 7월께 삼표산업이 지주사인 ㈜삼표를 역흡수 합병하면서 정 부회장의 지배력이 강화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부회장은 2005년 삼표그룹에 입사해 2019년 사장으로 승진했고, 지난해 그룹 부회장에 올랐다. 게다가 지난해 10월 삼표그룹 인천공장에서 60대 일용직 노동자가 화상으로 또다시 사망하는 사고가 일어나며 ‘중대재해 리스크’가 더욱 가중되고 있다. 경영권 승계 작업은 누범 형량 가중에 따른 우려가 아니냐는 시각이 나온다.

하청노동자 중대재해가 발생한 ‘동국제강’도 유사한 방식으로 지배구조를 개편하고 있다. 2022년 3월 동국제강 포항공장에서 크레인 안전벨트에 몸이 감겨 숨진 고 이동우씨 사고와 관련해 장세욱 대표이사 부회장에게 중대재해처벌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당시 김연극 공동대표만 입건됐다. 이후 그룹은 지난해 12월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다. 장 대표이사는 동국홀딩스 부회장을 맡고, 그 아래 동국제강과 냉연 전문 사업체 동국씨엠을 두는 구조다. ‘지주사 설립’을 경영책임자 책임회피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 이유다. 경영은 지주사가 맡지만, 각 계열사에 중대재해 책임을 돌릴 가능성이 있다.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10대 로펌’ 절반 이상 수임, 1년 넘게 재판

‘대형 로펌’이 중대재해 경영책임자 방어 전략에 가세하고 있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현재까지 기소된 사건 40건 중 절반 이상이 국내 10위 법무법인(2023년 기준 김앤장·광장·태평양·율촌·세종·화우·지평·바른·대륙아주·와이케이)에서 수임했다. 중대재해 1호 사건인 삼표그룹의 정 회장은 김앤장이 변호하고 있고, 1호 기소인 두성산업 사건은 법무법인 화우 변호인단이 맡았다. 화우는 위헌법률심판제청을 법원에 신청했고, 김앤장도 위헌 판단을 받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가장 적극적으로 뛰어든 로펌은 총 6건의 사건을 수임한 법무법인 율촌이다. 태성종합건설·평화오일씰공업·현대스틸산업 등의 원청 대표를 변호하고 있다. 법무법인 화우가 4건으로 뒤를 이었고, 김앤장·법무법인 세종이 3건을 수임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형로펌이 맡은 사건은 각종 서증 제출과 증인신문으로 1년 넘게 공판이 진행되는 사건이 다수다. 실제 2022년 11월3일 세 번째로 기소된 경남 고성군 소재 조선소 삼강에스앤씨 사건은 1년4개월이 넘도록 1심 결론도 나오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 “실질 결정권자 책임 물어야 꼼수 막아”

중대재해 전문가들은 기업의 ‘바지사장’과 ‘경영권 승계’ 전략에다가 대형로펌이 합세하면서 ‘경영책임자 처벌’이 희석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중대재해처벌법(2조9호)은 경영책임자를 ‘사업을 대표하고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으로 정하고 있다. 고용노동부와 검찰은 “형식상의 직위나 명칭과 관계없이 실질적으로 사업을 총괄하는 권한과 책임이 있는 사람”을 경영책임자라고 해석한다.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법무법인 두율)는 “월급받는 사장을 처벌하는 것으로만 사건을 종결해 버린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이 ‘핫바지 법’으로 전락할 수 있다”며 “중대재해처벌법 규정 그대로 해석해 실질적이고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자에 책임을 물어야만 대표이사 순환제 등과 같은 꼼수나 회피성 탈법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재민 변호사(법무법인 대륙아주)는 “지금까지 대표이사 39건과 오너 1건이 피고인으로 특정됐으나 기업은 여전히 최고안전보건책임자(CSO)를 선임해 대표이사(CEO)를 방어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중대재해 발생시 사후적으로 로펌을 선임해 방어하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사전에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영책임자 방어에 과도한 법률비를 지출하는 점도 문제 삼았다. 중대재해전문가넷 소속 문은영 변호사(법률사무소 문율)는 “중대재해 예방보다 처벌을 낮추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 대형로펌을 선임하는 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대형로펌은 위헌성이나 실효성 변론보다 법상 의무를 준수했는지를 중점으로 변론하고 의무를 사전에 준수할 수 있는 법률적 자문을 우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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