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판지 기계에 윤활유를 주입하던 중 기계에 협착돼 노동자가 숨진 경산시 골판지 제조업체 삼성포장 공장 주변 모습. <네이버지도 갈무리>

과거 사망사고를 포함해 다섯 차례의 협착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재차 사망사고를 일으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업주에게 법원이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형량이 가중될 만한 사유가 있는데도 지나치게 가벼운 형량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골판지 공장 노동자, 회전축에 협착 사망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구지법 형사5단독(정진우 부장판사)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산업재해치사)과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기소된 경산시 골판지 제조업체 삼성포장 대표이사 A(66)씨에게 지난 16일 징역 1년2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회사 법인에는 벌금 8천만원을 선고했다. 업무상과실치사로 기소된 안전관리실장 B(60)씨는 금고 4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사고는 2022년 3월30일 발생했다. 기계 설비 운전원 C(사망 당시 64세)씨는 골판지 가공 기계의 회전축에 윤활유를 주입하는 작업을 하던 도중 작업복이 회전축 사이에 말려들어 가면서 몸이 끼여 즉사했다. 조사 결과 ‘방호덮개’가 없어 회전축이 그대로 외부에 노출돼 있었던 게 사고 원인이었다.

회사는 사고 한 달 전 방호장치를 해체한 후 재설치하지 않아 윤활유 주입 장소 주변은 미끄러운 상태였다. 그런데도 사측은 방호덮개를 마련하지 않았고, 작업계획서도 작성하지 않았다. A씨는 안전보건 확보의무 위반 혐의로 지난해 10월 기소됐다. 삼성포장은 상시근로자가 97명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사업장이다. 검찰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상 △유해·위험요인 확인·개선 절차 마련(4조3호) △안전보건 관리책임자 업무수행 평가 기준 마련(4조5호) △중대산업재해 발생시 작업 중지 등 매뉴얼 마련(4조8호)을 위반했다고 봤다.

‘실형’ 한국제강과 유사, 법원은 “처벌불원” 감형

특히 과거 유사한 사고가 빈발했는데도 또 사망사고가 났다는 점이 눈여겨볼 대목이다. 삼성포장 공장에서는 2004년 6월 운전을 정지하지 않은 골판지 접합기의 내부 설비를 점검하던 중 노동자가 협착해 목숨을 잃었다. 이 사고를 포함해 기계가 가동하던 중 정비하다가 발생한 ‘끼임’ 사고만 이번 판결사건을 제외하고도 다섯 차례나 된다.

하지만 A씨는 실형을 피했다. 선고기일은 한 차례 공판만 진행된 뒤 바로 열렸다. 정 부장판사는 “A씨와 회사는 과거 산업안전보건법 위반과 업무상과실치사로 벌금형을 받은 전력이 있다”면서도 △합의로 유족의 처벌불원 의사 표시 △재발방지 노력 등을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사고 이후 2중 방호장벽을 설치하고 구리스(윤활유) 주입구를 이전했다는 것이다.

이번 선고는 2022년 1월27일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이후 13번째 선고다. 그러나 1건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집행유예에 그친 상태다. 중대재해전문가넷 공동대표인 권영국 변호사(법무법인 두율)는 “사고 발생의 반복 정도와 심각성은 유일하게 실형이 선고된 한국제강 사례와 유사하거나 더 중대한 상황으로 보이는데도 하한형에 근접한 양형은 법원이 의식적으로 ‘봐주기 판결’을 의도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조재민 변호사(법무법인 대륙아주)는 “기본적인 의무인 방호덮개 설치조차 하지 않았는데 기계적으로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 같다”며 “실형 선고도 가능했을 사안으로 보인다. 법원은 기본적인 안전조치와 동종 유사사고 등을 불리한 양형으로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업에서 안전·보건 관계 법령 자문을 담당하는 정인태 사내변호사는 “방호덮개 설치나 작업계획서 작성은 안전에 대한 최소한의 경각심과 주의만 있었다면 영세한 사업자라도 충분히 이행할 수 있는 안전조치사항”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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