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 대법원이 2018년 트럼프의 무슬림 입국 금지 행정명령에 손을 들어주는 판결을 내리자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은 소수의견에서 “(이번 판결은) 국가 안보를 가장한 혐오의 산물”이라며 다수의견을 낸 동료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오바마가 대법관에 지명한 소니아 소토마요르는 엄격한 조사와 청문회, 상원 투표 끝에 2009년 건국 233년 만에 첫 히스패닉계 대법관이 됐다.
소니아의 어머니 셀리나는 푸에르토리코에서 태어나 사탕수수밭에서 혹독하게 일했다. 셀리나는 1944년 봄 태평양전쟁 중인 미 육군에 들어가 삶을 바꿨다. 종전 이듬해 자동차정비공을 만나 뉴욕 사우스 브롱크스에 살림을 차렸다. 고교 과정을 마친 셀리나는 병원 전화교환원이 됐다.
소니아는 1954년 집에서 태어났다. 9살 때 아버지가 갑자기 죽었다. 셀리나는 딸 소니아와 아들 후안을 책임졌다.
셀리나는 법률드라마에 푹 빠진 딸과 아들의 장래를 위해 무장한 갱과 마약상이 득실대는 사우스 브롱크스에서 좀 더 안전한 브롱크스 북동쪽으로 옮겼다. 소니아가 고2 때인 1970년 때다. 간호조무사 자격을 가지고 있던 셀리나는 병원을 다니며 대학 간호학과를 마쳤다. 딸과 아들은 엄마가 일하는 병원에서 아르바이트 하면서 생계를 도왔다. 셀리나는 대학 졸업 2년 만에 응급실 책임자가 됐다. 1985년 병원이 폐업하자 고향이나 다름없는 사우스 브롱크스 지역보건소에서 간호사로 일하다 1992년 65살에 은퇴했다.
소니아는 1974년 소수자 배려 전형으로 입학한 프린스턴 대학에서 난생 처음 소외를 경험했다. 당시 입학생 1천127명 가운데 라티노는 22명이었다. 소니아는 자신이 소수집단 우대정책의 산물임을 숨기지 않았다. 스페인어가 모국어인 그에게 영어 작문은 힘들었다. 그는 1976년 예일대 로스쿨에 갔다. 첫 학기엔 기가 죽었다. 그러나 입학 초 숫기 없던 소니아는 금세 적응했다.
소니아는 1979년부터 뉴욕지검 검사로 아동학대와 경찰비리, 아동 포르노물 등을 수사했다. 이후 8년쯤 로펌에 갔다가 1992년 상원 표결 끝에 뉴욕 최연소 연방판사(38살)이자 최초의 히스패닉 연방판사가 됐다. 판사 소니아의 첫 재판은 1994년 월드시리즈를 무산시킨 장장 232일간의 프로야구 파업 소송이었다. 동생 후안은 의사가 됐다. 후안은 한국인 쌍둥이 형제를 입양해 성인으로 키웠다. 소니아가 대법관이 되자 어머니와 입양한 쌍둥이 조카까지 유명해졌다. 소니아 가족은 갖은 역경을 딛고 아메리칸 드림을 이뤘다. 이런 게 이민자 나라, 미국의 가치다.
그러나 최근 미연방 대법원의 잇단 퇴행 판결로 앞으로 소니아 같은 대법관을 보긴 어려워졌다. 미 대법원은 지난달 29일 대학 입시에 ‘소수 인종을 우대하는 정책’(어퍼머티브 액션)을 위헌 결정했다. 62년 전통을 끊었다. 보수가 6대3으로 장악한 대법관 구조에서 어쩌면 당연한 판결이다.
한겨레는 지난 3일 1면에 “미 대법 잇단 ‘퇴행적 판결’ … ‘중대한 진보, 뒤로 돌려’”란 기사에서 “미 대법원이 반세기 넘게 단단히 뿌리 내린 차별을 시정하고 소수자와 약자를 배려하자는 미국 사회의 오랜 노력을 무효화시켰다”고 혹평했다. 한겨레는 같은날 6면에도 “트럼프가 만든 ‘기울어진 운동장’ 내년 대선 쟁점 예고”라는 기사에서 보수 절대 우위의 대법원 구조를 만든 트럼프까지 비판했다.
같은 날 경향신문은 5면에 “‘학자금 탕감’까지 … 미 대법, 진보정책 또 제동”이란 기사에서 미 대법원이 바이든 정부의 학자금 탕감 정책마저 무효라고 판결했다고 비판했다. 덕분에 4천만명의 서민이 피해를 입었다. 이 지경인데도 지금의 미 연방대법원이 공정하다는 신문사가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6월28일 14면에 “‘보수 6, 진보 3’ 美 연방대법 … 그래도 판결은 공정했다”는 머리기사에서 미 대법원이 이민 규제 완화에 찬성하고, 흑인에게 불리한 선거구 획정이 위헌이라고 판결하는 등 진보 판결을 했다고 칭찬했다. 조선일보는 다음날 23면에도 “법은 진영논리 위에 있다 … 또 보여준 로버츠 연방 대법원장”이란 기사에서 같은 논리를 이어 갔다. 소수 인종 우대정책 위헌 판결은 조선일보가 칭찬하는 두 판결과 급 자체가 다르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