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대학의 비정규 노동자다. ‘강사’ 혹은 ‘비정규교수’라 불리며 강의를 하고 학생 지도를 한다. ‘강사’가 하는 강의와 교수가 하는 강의는 학점 차이가 있는 것도, 강의 평가에 차이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정규직인 ‘교수’는 월급제인 반면 강사는 시급제로 강의 시간당 보수 이외에는 한 푼도 받지 못한다. 그래서 한국의 대학 강의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강사의 임금 수준은 정규직의 10분의 1(사립대)에서 4분의 1(국공립대) 수준이다.
그래도 필자는 운이 좋은 편이다. 고등교육법 개정으로 대학이 강사와 1년 단위로 계약하고 3년까지 재계약하도록 하면서 수많은 강사들이 구조조정을 당했다. 대학이 강의를 통·폐합하고 강사 수를 줄이면서 수년간 일해 온 강사들이 실직자가 됐다.
지난 1월 서울고법은 국립대 소속 강사들이 강사료 차별에 따른 차액과 주휴수당 등을 청구한 소송에서 강사의 소정근로시간은 강의 시간이므로 이들은 초단시간 근로자에 해당한다며 청구를 기각했다. 쉽게 말해 강의시수가 주당 9시간인 강사의 1주 소정근로시간은 9시간이므로 1주 소정근로시간이 15시간 미만인 단시간근로자에 해당해 주휴수당, 퇴직금 등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법원은 “근로계약을 체결함에 있어 사용자의 우월적 지위로 인해 소정근로시간이 실제와는 달리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정해질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인정하면서도 이는 근로자가 사후에 ‘소정근로시간이 아님에도 사용자의 상당한 지휘·명령 아래 사용자를 위해 약정한 근로를 제공했음을 주장·증명함’으로써 해결할 문제라고 일축했다. 또한 “전임교원의 경우 학기 중은 물론 방학 기간까지 학문연구, 학사행정업무 및 학생 지도 등을 하는 반면, 원고들은 강좌를 담당한 학기 중에 해당 강좌와 직접 관련된 학사행정 업무만을 담당했을 뿐이고, 강좌를 담당하지 않은 기간에는 별도의 업무를 수행하지 않았다”면서 강사들의 근로시간이 교수의 근로시간과 같다고 평가할 수 없다고 했다.
강사라고 해서 강의를 준비할 때 교수보다 적은 시간과 노력을 들였을 것이라고 함부로 추단할 수는 없다. 실제 강의를 맡지 않은 학기나 방학 중이라고 연구나 강의 준비를 소홀히 할 수도 없다. 대부분 대학이 강사 위촉시 교수와 같은 수준의 연구업적이 있을 것을 요건으로 내세우기도 한다. 교수는 행정업무, 학생 지도 등을 하는 경우 관련 수당을 지급하지만 강사는 애초부터 학생 지도 수당이 책정돼 있지도 않다.
그래도 고등교육법에 의해 ‘근로자’로 인정되는 강사의 처지는 나은 편이다. 대학의 부설어학원에서 일하는 강사들은 고등교육법에 따른 강사로 인정받지 못 한다. 대학별로 이들의 고용형태는 특수고용직이나 시간강사, 연구원, 직원 등으로 천차만별이다. 즉, 대학에서 같은 외국어를 강의한다 해도 정규직 교수 - 고등교육법에 따른 강사 - 그 밖의 노동자로 계층이 나뉘는 것이다.
대학에서 강의·연구하는 계층별 노동자에게 요구되는 자격, 노력의 차이는 거의 없다. 다만 채용 경로가 다르고 채용 후 사용자가 부여하는 직무가 다르며 (혹은 직무가 다르다고 주장되며) 노동조건을 규정하는 계약의 형식이 다른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직무의 내용을 결정하는 자도 고용형태와 계약 형식을 결정하는 자도 사용자라는 사실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월 “똑같은 일을 하면서 월급이 크게 차이 나고 차별을 받는다면 이는 현대 문명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 했다고 한다. 지난달 31일 국민의힘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담은 근로기준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들이 간과하는 것이 있다. 일단 근로기준법의 ‘근로자’로 인정받아야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또한 ‘파견근로자’로 인정돼야 원청의 노동자에 비해 차별임금을 받았다고 주장이라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를 특수고용직으로 쓸지 하청노동자로 쓸지 결정하는 주체는 원청 사용자다. 게다가 ‘같은 일’인지 평가하는 기준 자체를 사용자가 정한다. 요컨대 직무와 고용에 대한 노동자의 집단적 발언권이 보장되지 않는 한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실현 불가능하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