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상옥 변호사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하이트진로지부 조합원들은 매일 새벽 5시40분께 하이트진로 이천공장, 청주공장으로 출근한다. 하이트진로 공장에서 생산된 하이트진로 주류제품을 싣고, 하이트진로 광고로 도색된 화물차를 운전해 하이트진로가 지정한 담당 권역(강원권역, 충청권역, 호남권역 등) 내 도매장이나 소매점까지 주류제품을 운반한다. 하이트진로 도매장 등에서 발생한 빈 병이 있다면 이를 회수해 하이트진로 공장으로 돌아온다. 이런 과정을 속칭 ‘1회전’이라고 한다. 하이트진로지부 조합원들은 평균적으로 2~3회전을 마친 후 저녁에 하이트진로 공장에서 퇴근한다. 이들은 길게는 10년 이상 하이트진로 화물노동자로 일했다. 오로지 하이트진로 주류제품 운송의 대가로 받는 운송료만을 토대로 생활해 왔다는 말이다.

그런데 2008년 하이트진로와 화물노동자 간 진행된 운송료 협상을 마지막으로, 운송료는 실질적으로 오르지 않았다. 운송료에서 유류비, 고속도로 통행료, 차량 감가상각비를 공제하면 일할수록 적자가 나는 구조가 발생했다. 더욱이 하이트진로 이천공장, 청주공장 화물노동자 운송료는 특별한 이유도 없이 다른 지역 하이트진로 공장 운송료보다 낮게 책정됐다. 하이트진로지부 조합원들의 삶의 토대가 무너질 상황이 발생하면서 하이트진로를 상대로 현실적인 운송료 책정을 위한 교섭을 요구했다. 하지만 하이트진로는 화물노동자들과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교섭에 응하지 않았다. 2022년 6월부터 하이트진로지부가 교섭을 요구하는 집회를 하자 하이트진로는 손해배상 청구와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에 업무방해를 이유로 한 고소를 쉴 새 없이 진행했다. 하이트진로지부 조합원들은 쫓기듯이 이천공장, 청주공장, 홍천공장을 거쳤고, 지상에는 설 자리가 없어진 지난해 8월 전례 없는 폭우를 맞으며 하이트진로 청담동 본사 옥상으로 내몰렸다.

필자는 지난해 진행된 민사 사건 등의 소송대리인으로서, 또 현재까지도 진행되고 있는 형사 사건의 변호인으로서 하이트진로지부가 여러 주체로부터 마주하는 질문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다. 질문의 취지는 똑같다. 왜 하이트진로지부는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없는 하이트진로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했냐는 것이다. 질문의 모양새는 다양하다. 하이트진로를 상대로 한 집회에 나서기 전 누구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해야 하는지 자문받아야 했다는 조언부터 계약관계도 없으면서 왜 하이트진로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하느냐는 짐짓 준엄한 모습의 훈계도 있다. 소송대리인이나 변호인으로서 위 질문에 하이트진로지부 조합원을 대신해 답하는 과정은 쉽지 않지만, 같은 질문을 반복적으로 듣다 보니 마음속 답변은 갈수록 확고해진다. ‘누가 교섭 상대방인지는 하이트진로지부 조합원이 당신보다 잘 안다.’

조합원들은 수십 년간 하이트진로 주류제품만 운송하는 일을 했다. 그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자신의 운송료를 책정하고 결정하는 주체가 누구인지 모르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하이트진로지부 같은 화물노동자들은 교섭의 상대가 누구인지 모른 상태에서 집회나 파업에 나설 만큼 한가하지 않다. 운송료를 못 받는 것과 동시에 차량 운행과 관계없이 계속해서 지출되는 차량유지비가 존재하기 때문에 화물노동자들에게 집회와 파업은 당분간의 마이너스 인생을 감내하겠다는 결단이다. 현재도 다수의 지부 조합원들이 지난해 6월부터 시작된 손실을 메꾸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고 있다. 하이트진로지부는 운송료 인상 등에 관한 교섭의 상대방이 하이트진로일 수밖에 없다는 판단, 나아가 하이트진로를 상대로 교섭을 요구해야만 자신들의 결단이 의미를 지닐 수 있다는 판단을 토대로 집회와 파업에 나서게 된 것이다. 하이트진로지부는 자신들의 경험을 근거로 벌거벗은 임금님이 벌거벗었다고 이야기했을 뿐이다. 그런데 누군가는 애써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없다는 법형식적인 이유만으로 벌거벗지 않았다고 말하며 자신의 눈을 가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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