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불법행위 처벌, 노조의 불공정 채용 단속, 직무·성과중심 임금체계 개편. 윤석열 정부가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명목으로 밀어붙이는 정책들이다. 그런데 노동시장 격차 완화를 위해 오래전부터 제시된 정책이 있다. 국내외적으로 검증됐지만 정부와 자본이 외면해 왔다. 산별교섭 활성화와 단협효력 확장이다. 이런 정책이 왜 필요한지, 어떻게 시행해야 하는지 4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박주영 민주노총 법률원 부원장
▲ 박주영 민주노총 법률원 부원장

노조혐오의 광풍이 불고 있다. 윤석열 정부 들어 노조는 강성·귀족·기득권이라는 꼬리표에서 불법·부패집단이라는 마녀사냥으로 이어지고 있다. ‘노폭’(노조+조직폭력배)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한국 사회에서 노조에 대한 혐오가 작은 균열에도 쉽게 퍼지는 것은 노조에 친숙하지 않은 한국의 법· 제도적 환경과도 무관하지 않다.

우리의 경험을 막상 들여다보면 노조의 긍정적 힘을 기억하고 있지만 그 경험은 기업단위 교섭구조, 기업 수준의 단체협약 제약으로 그 효과는 분절되고 일시적이다.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은 기업의 장벽을 넘어 초기업 수준의 단체협약 효력확장을 사실상 가로막고 있어 비정규 노동자들,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에게는 단협의 효력이 제대로 미치지 못한다.

초기업 교섭을 가로막는 노조법 장벽

한국사를 통틀어 초기업 교섭구조에 적대적인 노동법·정책 환경이 지속되지 않은 적이 없다. 노조법이 제정되기 전부터 산업별노조를 불법화하고 단체협약은 기업단위로만 체결하도록 한 미군정의 명령은 제정 노조법에 그대로 담겼다. 5·16 군사쿠데타 이후 노조를 비롯한 모든 사회단체를 해산한 뒤 노조 통제를 위해 세워진 전국단위 단일 산별노조하에서도 단체교섭은 기업단위 노사협의회에 맡겨졌다. 기업단위 노조설립을 강제한 5공화국 노조법을 거쳐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기업노조 설립 강제조항을 삭제했다. 하지만 복수노조 금지조항이 신설되면서 기업노조 환경은 지속했고, 오늘날 기업단위 교섭구조를 강제하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에 이르고 있다.

기업단위 복수노조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기업단위에 복수노조가 있으면 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쳐 조합원이 한 명이라도 많은 노조가 교섭권을 독식하도록 하는 제도다. 기업 내 복수노조가 없어도 모든 노조는 기업단위에서 창구단일화 절차를 통해 교섭권을 확인받아야 교섭 개시가 가능하며, 초기업교섭을 하려는 경우에도 무조건 기업단위 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쳐야만 한다. 교섭대표노조가 되더라도 다른 노조도 대표해 교섭해야 하므로 기업 수준을 벗어난 교섭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기업단위 교섭구조에서 사용자는 기업 수준을 넘는 교섭사항, 조합원 아닌 전체 노동자를 위한 교섭 요구는 거절하더라도 법적 부담을 지지 않는다. 이 때문에 기업단위 노사관계를 전제로 구축한 한국의 노조법에서는 초기업 수준의 단체교섭 구조를 노사자율로 형성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현행 노조법의 기업단위 교섭 강제 제도는 기업 내 조합원들만의 이익단체 활동으로 노조의 역할과 기능을 좁힌다. 노조를 정규직 이기주의라고 쉽게 비난하지만 사실 이것은 노조법이 예정해 놓은 노조의 교섭권 제약이다. 현행 노조법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노조가 단결·연대·산별운동 강화를 말하는 것은 노조의 고유한 활동을 넘는 정치활동이 된다. 의무적 교섭사항이 아닌 것으로 간주된다. 이를 관철하기 위한 파업은 불법이 되기 일쑤고 근로시간 면제활동을 보장받기 어렵다.

초기업적 노사관계를 위한 노조법 개정

산업·업종에 포괄적으로 적용되는 단협을 위해서는 초기업 단체교섭이 가능할 수 있는 법·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초기업 수준의 단체교섭을 활성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전환은 다음과 같다.

첫째, 초기업 교섭구조의 장벽이자 노조탄압의 효과적 도구인 기업단위 창구단일화 절차를 강제하는 제도를 폐기하고, 노조의 대표성과 공적 위상을 보장하는 교섭 제도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둘째, 노조만이 아니라 초기업 교섭구조에서 상대방인 사용자들의 공적 책임과 역할을 분명히 해야 한다. 사용자들의 공동의 이해 대변을 목적으로 하는 사업자단체의 사용자단체성을 인정하고, 적정한 대표성 있는 하나의 사업자단체가 없다면 사용자들과 사업자단체들이 연합해 초기업 교섭에 임하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

셋째, 단체협약이 기업 내 소속에 갇히고, 조합원 지위에 제한되지 않도록 단체협약 효력의 포괄성과 보편성 원칙을 보장해야 한다. 초기업 수준의 포괄적 단협 보편적 적용과 효력확장은 노동시장의 양극화, 불평등한 노동구조의 꼬인 매듭을 풀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비정규직 차별과 남용을 규제하는 법제의 풍선효과를 잡고, 고용 분야의 포괄적 차별금지법 및 원청 사용자의 교섭책임이 요구되는 문제의 많은 부분도 함께 해소할 수 있다.

단협 효력은 조합원 범위가 아니라 협약체결 사용자의 영향력이 미치는 노동자 전체에 일반적인 효력을 갖도록 하고(만인효), 산업별 단협 효력확장을 통해 모든 노동자에게 기준근로조건이 적용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숙련노동자와 초급노동자 간의 과도한 격차를 개선함으로써 동종산업 내 공정한 산업질서, 노동시장의 투명한 고용관행을 설계해 양극화를 단계적으로 완화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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