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6년 5월1일 수많은 노동자들이 더 이상 못살겠다고 하루 8시간 노동을 외치며 분연히 일어났다. 인간다운 삶을 요구하며 평화롭게 시위했지만 정부는 총으로 노동자를 무참히 짓밟았다. 공권력의 힘은 대단했다. 곧바로 7명의 노동자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했다. 노동자에게 가혹하고 사용자에게 관대했던 법이 존재했던 150년 전 미국 산업화 시대의 모습이다. 그렇게 5월1일 노동절이 생겼다. 노동절은 국가가 노동자들의 노고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날이기에 기쁜 날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노동자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 낸 슬픈 날이기도 하다. 기쁨과 슬픔이 공존한다면 가급적 기쁜 일을 먼저 생각하는 게 좋을 듯하다. 그래서 노동절은 슬픈 날이 아니라 기쁜 날이라 말하고 싶다. 그러나 2023년 5월1일은 슬프디 슬프고 비극적인 날이 되고 말았다. 건설노동자가 정부의 ‘노조탄압’과 ‘노조 죽이기’에 항거해 분신했기 때문이다. 아내와 중학생 쌍둥이 자녀들을 남긴 채 가족과 영원히 이별했다. 1970~80년대 군사 독재시대나 있을법한 강압적이고 무차별적인 수사는 2023년에도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 미국과 21세기 대한민국은 크게 차이가 없어 보인다. 대한민국이 끊임없이 과거로 돌아가고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지난해 말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강경 진압으로 지지율 상승을 맛본 윤석열 정부는 다음 타깃으로 건설노조를 지목하고 대대적인 ‘건설노조 죽이기’에 돌입했다. 올 초 대통령은 ‘조직 폭력배(조폭)’에 빗대서 건설노조를 ‘건폭’(건설현장의 불법)이라 부르며 불법과 부패 조직으로 매도했다. 주요 공권력인 검찰·경찰은 물론 국토교통부·고용노동부·공정거래위원회가 협력해 건설노조를 강력히 단속했다. 정부 부처들이 이렇게 협업이 잘 됐나 놀랄 정도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특히 경찰이 가장 적극적이었다. 경찰은 지난해 말부터 건설노조의 불법행위를 잡는 경찰관에게 1계급 특진을 내걸었다. 510명 전체 특진대상자 중에 50명을 건설노조 수사 담당자로 정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야말로 파격적이다. 결국 경찰은 지난해 12월부터 3개월간 건설업 특별단속을 추진했고, 이 과정에서 건설노조 각 지부 사무실을 빈번하게 압수수색 했다. 심지어 상근자 3명이 근무하는 지부사무실에 경찰차 15대와 기동대 300명을 투입시켜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탁상달력까지 가져갈 정도로 꼼꼼한 압수수색도 놓치지 않았다. 지금까지 민주노총 건설노조를 13번 압수수색 했고 수사대상만 950명에 이르고 15명을 구속시켰다.
신자유주의를 외치며 건설사 친화적인 정책을 펴는 윤석열 정부의 좋은 친구인 족벌신문과 경제지들은 정부의 마우스가 되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이들 언론사는 건설노조가 불법·부패조직이며 건설업계에서 퇴출돼야 한다는 정부 주장을 그대로 보도했다. 건설 관련 모든 노조를 건설노조라 지칭하며 양대 노총 건설노조가 모든 불법행위를 벌인 것처럼 강조했다. 이런 보도를 접한 일반시민들은 건설노조가 부정부패가 만연한 범죄집단이며 고용을 미끼로 돈을 받는 비열한 조직으로 인식할 게 뻔하다.
정부 발표나 언론보도와 달리 그동안 양대 노총 건설노조는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에 시달리던 건설노동자들의 처우개선에 노력했다. 2006년 포항 건설노조가 82일간 파업한 것을 생각해 보자. 일용직인 건설노동자가 3개월 동안 파업했다는 것은 3개월 동안 수입이 하나도 없다는 얘기다. 죽음을 담보로 3개월간 파업할 정도로 당시 건설노동자들은 절실했고 절박했다. 당시 건설노동자의 임금은 낮았고 건설현장의 작업조건은 열악했다. 시중노임단가보다 적게 주던 임금은 고사하고, 휴게실은커녕 화장실이 없어 생리적 현상도 해결하기 어려웠다. 세면대조차 없어 씻지 못하고 퇴근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또한 사고 발생시 노동부에 산재 신고를 하지 않고 돈으로 해결하는 공상처리가 만연했다. 이런 건설현장을 바꾸려고 건설노동자들은 노조를 조직했고 오랜 투쟁 끝에 조금씩 변화시켰다. 지역·현장별로 천차만별이던 임금을 산별중앙교섭으로 표준화시켰다. 또한 주 5일 근무, 하루 8시간 노동도 정착시켰고 휴게실·화장실 등 작업환경 개선도 이끌었다. 이처럼 목숨걸고 건설노조가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에 노력할 때 정부와 건설사는 침묵하고 모른 체했다. 포항 건설노조처럼 목숨 걸고 싸우지 않았다면 20년 전 그때나 지금의 건설현장은 크게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와 건설사는 건설노조가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이것이 건설노조가 계속 집단적 목소리를 내며 싸워야 하는 이유다.
최근 정부는 건설업의 고령화가 심각해 젊은 층 유입과 정착을 위해 노력할 거라고 발표했다. 사실 젊은이들이 건설업에 들어오지 않는 진짜 이유는 힘든 일에 비해 낮은 임금과 열악한 노동조건 때문이다. 한마디로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인생을 걸 만큼 건설업에 미래가 없다고 느끼고 있다. 그러면 정부는 젊은이들을 건설현장에 유입시키는 정책을 내놓았을까? 정답은 노(NO). 정부가 내놓은 해법은 내국 젊은이들을 대체하도록 외국 젊은 노동자를 늘리는 것이었다. 가장 쉬우면서 ‘쇠귀에 경 읽기’ 정책이다. 외국인 노동자 고용 확대는 건설사들이 오랫동안 정부에 요청한 것이다. 이밖에 윤석열 정부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상 규제를 완화해 건설사 책임과 처벌을 줄이고, 미분양 아파트를 매입해 건설사들의 손실을 막고 수익을 보장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건설사들의 소원 수리 기관인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건설노조 활동이 자랑스럽고 행복했다고 유서에 적고 분신한 건설노동자가 걱정 없는 저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면 좋겠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wadrgon@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