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랜만에 고향에 왔다. 늘 그렇듯 시골의 공기와 풍경, 가족들과의 시간이 마음을 달래 준다. 이런 와중에 윤석열 정부의 지난 1년을 돌아보면서 글을 쓰는 일은 참으로 곤욕이다. 시골의 정취로 정화된 몸과 마음이 다시 탁해지는 느낌마저 든다.
2. 지난 1일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절을 맞아 페이스북에 메시지를 남겼다. 선진형 노사관계로 가기 위해 노동 약자 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면서 이를 위해 노사법치주의를 확립하겠단다. 윤 대통령이 글을 올린 시간은 오전 11시44분. 그 시각 강릉에서는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이 윤석열 정부의 폭력적 노동탄압을 고발하면서 분신하고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알았을 윤 대통령은 반성은커녕 노동자들의 생일날 노사법치주의라는 이름으로 노조탄압의 칼날을 휘두르겠다는 다짐의 글을 버젓이 올린 것이다. 참으로 잔인하다.
3.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6월 화물연대와 일몰 예정이었던 안전운임제 연장에 합의했다. 그러나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정부·여당은 합의를 손바닥 뒤집듯 위반했고 안전운임제는 폐지된 상태다. “Pacta sunt servanda.” 합의는 준수돼야 한다는 로마법의 정신을 표현한 말이다. 한 나라의 정부가 스스로 한 합의조차 이렇게 쉽게 부정하고 이행하지 않는 마당에 법치를 외치는 모습이 우습다.
4. 윤석열 정부는 지난 1년 건설노조의 조합원 고용·월례비·전임비·복지비 요구를 불법으로 간주하고 건설노조를 제물로 삼았다. 그러나 고용과 실업이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건설현장의 특성상 노동조합은 조합원 고용을 주요 요구로 삼을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의 본령이다. 이를 두고 채용 강요로 둔갑시켜 협박이다 강요다 처벌하겠다는 것이 문제다.
광주고법은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의 월례비는 부당한 금전 요구의 산물이 아니라 임금의 성격을 갖는다고 판결했다. 임금·단체협약 근거로 전임비를 요구하는 것을 두고 공갈이라고 할 수도 없다. 복지비 등도 헌법재판소 등이 확립한 기준에 따를 경우 법이 허용하는 운영비 원조에 해당한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건설노동자들의 요구를 강요죄와 공갈죄로 단정하고 무자비한 수사의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단결금지법을 통한 노동탄압이 횡행하던 수백 년 전 자본주의 초기의 모습이 한국 사회에서 지금 버젓이 재현되고 있다.
5.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윤석열 정부는 공정거래위원회를 앞세운 신종 노동탄압을 자행하고 있다. 지난해 화물연대 파업을 진압하기 위해 공정거래위의 현장조사를 실행에 옮겼다. 건설노조 일부 조직을 공정거래법상 사업자단체로 규정하고 금지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과징금까지 부과했다. 엄연한 노동조합을 사업자단체로 규정하고 공정거래법을 적용하는 부당한 행태까지 자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처럼 헌법상 노동 3권을 철저히 짓밟고 있는 윤석열 정부는 헌법과 법치를 입에 담을 자격이 없다. 윤석열 정부의 노동탄압이 어디까지 전개될지 가늠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이 입에 올리는 노사법치주의는 자본가에겐 무한한 이윤을, 노동자에겐 무한한 탄압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가짜 법치에 다름아니다.
6. 지난 2월21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통과됐다. 이후 국민의힘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법제사법위원회에서는 해당 개정안이 제대로 논의되지 않은 채 공전하고 있다. 해당 법안은 헌법상 노동 3권을 실질화하고, 열악한 지위에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 3권을 보장하는 것을 본질로 한다. 헌법을 얘기하고 취약노동자들의 노동권 보장을 얘기하는 윤석열 정부라면 이번 개정안을 반대할 것이 아니라 쌍수를 들고 환영해야 한다. 그런데 대통령실과 정부·여당은 사력을 다해 이 법안 통과를 막을 태세다. 그들이 외치는 법치가 ‘가짜 법치’임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또 하나의 대목이다.
7. 윤석열 정부 들어 노동개혁과 노사법치주의의 탈을 쓴 노동탄압만이 난무할 뿐 노동정책은 실종됐다. 지난 1년 유일한 노동정책으로 노동시간 유연화 정책이 제시됐을 뿐이다. 그마저도 대통령 얘기 다르고, 장관 얘기 다르고, 사회수석 얘기 다르고, 여당 얘기 다른 상황이다. 한 나라의 노동정책이 정말 우습게 됐고, 사실상 폐기됐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노동 문제를 정치적 행위의 수단으로만 삼는 데 여념이 없다는 것이다. 이후에도 구체적인 노동정책 내용과 실행 계획이 전혀 제시될 가능성이 엿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윤 정부에서는 노동정책이 구사되지 않는 것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8. “그동안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업무방해죄 등으로 강하게 처벌해 온 반면, 사측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는 법정형이 상대적으로 가볍게 규정돼 있고, 사측에 유리하게 해석·운영돼 온 경향이 있어 우리 노사관계는 ‘기울어진 운동장’으로 표현되기도 함.”
이는 2018년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배포한 ‘삼성 노조파괴 사건’에 대한 중간 수사결과 발표 보도자료의 일부다. 한국의 노사관계를 사측에 편향된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했던 중앙지검장 윤석열과 사용자의 이익을 철저하게 대변하기 위해 노동탄압으로 일관하는 대통령 윤석열은 같은 사람일까 다른 사람일까? 이제 겨우 대통령 임기 1년이 지났다는 사실에 암울해진다. 이제 원고 집필을 마치고 밖으로 나가 오염된 몸과 마음을 시골의 공기로 다시 정화시켜야겠다.


민노 한노 타워 건설노조 건폭이 아니고 조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