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나이지리아 어린 4남매의 화재 사망 소식이 지난 28일자 모든 중앙 일간지에 실렸다. 한겨레는 10면에 ‘화재 뒤 이사온 빌라서 또 불, 나이지리아 어린 4남매 숨져’라는 제목으로, 한국일보는 2면에 ‘나이지리아 4남매를 앗아간 한밤 빌라 화재’란 제목으로, 조선일보는 10면에 ‘두살 막내는 구했는데… 나이지리아 4남매 참변’이란 제목으로, 경향신문은 8면에, 동아일보는 14면에 각각 다뤘다.

지난 27일 새벽 3시 30분께 7식구가 살던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선부동의 12평 남짓 다가구주택에서 불이 났다. 부부는 2살 막내를 데리고 창문을 통해 간신히 나왔지만, 안방에서 자던 11살과 7살, 6살, 4살 아이들은 빠져나오지 못했다. 불이 삽시간에 번지면서 손 쓸 틈도 없었다. 부부는 15년 전쯤 한국에 와서 중고품과 고물을 수집해 나이지리아로 수출했으나 코로나19로 생계에 어려움을 겪었다.

부부는 이주노동자 밀집지역인 안산시 원곡동 반지하에 살다가 2021년 1월 화재 피해를 겪고 이곳으로 옮겼는데 이번에도 화재를 겪었다. 한겨레신문은 집 앞 골목에 불에 그을린 채 덩그렇게 놓인 인형 사진도 함께 실었다. 이웃 주민은 골목 양쪽에 주차된 차량을 이동시키느라 소방차 진입이 늦어진 것 같다고 했다.

경기도 안산과 시흥은 70~80년대 서울 구로공단에서 공장들이 옮겨 오면서 반월시화공단을 형성했다. 일요일 낮에 수도권 지하철 4호선 끝자락에 있는 안산역에 가 본 사람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역 앞부터 시작해 커다란 재래시장 하나가 통째로 외국인 거리다. 토요일까지 일하는 이주노동자들은 일요일 낮에 이 거리에 쏟아져 나온다. 20여 분을 걸어도 한글 간판 하나 찾아보기 힘들다. 이번에 불이 난 빌라도 안산역에서 멀지 않다.

이번 화재 소식은 진보와 보수 가리지 않고 거의 모든 언론이 사회면에 다뤘다. 이번처럼 불이 나 이주노동자가 죽거나 이주노동자가 범죄를 저질렀을 때만 뉴스에 등장할 뿐 평소엔 어떤 언론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바로 옆 시흥시도 이주노동자가 밀집해 살기는 마찬가지다. 2018년쯤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정책위원인 김철식 박사가 ‘시화공단 남성 청년 1인가구 노동자’라는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같은 시흥시라도 새로 아파트가 들어선 정왕 2~4동은 그래도 좀 낫지만, 정왕본동과 정왕1동은 시화공단 노동자와 유흥업소 종사자가 모인 뜨내기 동네다. 아파트단지가 들어서 신도시를 형성한 정왕 2~4동과 유흥가와 원룸, 다세대주택이 몰려 있는 정왕본동과 1동은 같은 시흥시라도 분절돼 있다. 정왕본동과 1동은 쓰레기와 벌레, 소음 때문에 주거환경이 열악하다. 특히 다세대주택을 불법 분할해 원룸으로 운영하는데 무보증 월세가 주를 이룬다. 이곳에 이주노동자들이 밀집해있다. 내국인들은 이들을 위협으로 느껴 결혼하고 가족을 꾸리면 이사 간다.

이들의 노동조건도 열악하긴 마찬가지다. 2015년 민주노총의 ‘전국산업단지노동실태조사’에서 반월시화공단은 저임금에, 불법파견 간접고용에, 긴 노동시간이 주를 이뤘다. 한마디로 일자리는 많지만 좋은 일자리는 없다.

김철식 박사는 “반월시화공단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정주의식은 약하고 잦은 이직에도 이 지역을 떠나지 않고 지역 안에서 맴돈다”며 이들을 ‘부유하는 노동자’라고 표현했다. 김 박사가 만난 이곳의 노동자들은 높은 임금의 안정적 일자리가 생기면 정착하려는 의사도 있다.

정치권과 지방정부가 이번 화재를 계기로 이곳 노동자들의 주거환경을 면밀히 살펴 대안을 찾았으면 한다. 모쪼록 언론도 사건이 터졌을 때만 반짝 관심을 기울일 게 아니라 이주노동자와 공존하기 위한 여러 가능성을 모색했으면 한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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