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많은 직장인들이 야근을 한다. 큰 빌딩들의 사무실은 밤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는다. 그야말로 야근공화국이다. 왜 야근을 하는가. 근무시간 중에 다 할 수 없는 일이 주어지고, 일을 나눌 신규인력은 채용되지 않아서다. 이 와중에 정부가 ‘근로시간 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했다. 교수들 불러서 5개월 연구 끝에 만들었다는데, 사실 지난해 이정식 노동부 장관이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안’과 내용이 같다. 대통령이 후보 시절 한 “120시간은 일을 해야 된다는 거야. 2주 바짝 일하고 그 다음엔 노는 거지”라는 발언을 구체화한 버전이기도 하다.
‘현재의 근로시간 제도는 주 52시간제’가 정부안의 첫 문장이다. 전제부터가 완전히 틀렸다. 대한민국은 주 40시간 노동제다. 법정근로시간은 주 40시간이고 예외적으로 당사자 간 합의 하에 주 12시간 더할 수 있다. 정부는 업무폭증 같은 때 유연한 대처를 할 수 없다며 현 제도를 획일적·경직적이라 규정한다. ‘수천명 사업장에서 1명이 하루 1시간만 넘겨도 사업자는 범법자가 된다’며 개탄한다. 그게 그렇게 안타까운가. 바로 그럴 때 쓰라고 주 12시간 연장근로를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대신 평소에는 제발 주 40시간을 지키라는 것이 우리 근로기준법이다. 주 40시간 법정근로시간과 12시간 연장근로를 통해서도 다 못할 일이라면 그 일은 할 수 없는 일이다. 왜냐면 노동자는 사람이지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해야겠다면 신규채용 하라.
한편 이렇게 묻고 싶다. 정부가 하루 1시간 초과근로한 그 한 명과 관련해 사업주를 실제 범법자로 사법처리한 사례가 있는가. 근로감독 행정이나 제대로 하고서 개탄하고 있는지부터 돌아봐야 한다.
정부안은 스스로도 밝혔듯이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기’다. 6일 기준 주 69시간, 7일 기준 주 80.5시간, 이론상으로는 90.5시간까지도 적법하다. 주 64시간으로 상한을 정하면 매일 9시 출근해 자정에 퇴근하는 ‘주 5일 자정 퇴근법’도 완성된다. 연장근로 관리 단위를 분기로 하면 최대 5주, 반기로 하면 10주, 연으로 하면 18주 동안 연속 주 64시간 근무를 시킬 수도 있다. 그 어렵다는 과로사 인정기준을 넘나드는 초장시간 노동과 집중노동이 가능해지니 과연 정부가 제정신이냐는 소리를 듣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몰아서 일하면 다른 주 근로시간은 줄어든다. 그래서 정부는 비현실적이고 극단적인 가정에 기초한 흠집 내기라며 ‘주 69시간제’라는 호명에 억울해하는 것 같다. 주 52시간제도 1주 최대 가능한 근로시간을 표현한 것이듯, 1주 최대 69시간이 실제 가능하니 잘못된 이름은 아니다. 그보다는 위에서 가정한 비상식적이고 불합리한 근무시간표가 적법하다는 자체가 심각한 문제다. 법적으로 가능한 시뮬레이션인데 실제 발생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반론이 입법 논의과정에서 정부가 할 소리인가.
한편 ‘몰아서 쉬기’가 얼마나 탁상공론인지는 연차휴가 사용률이 50% 수준인 현실만 보더라도 긴말이 필요하지 않다. 장기휴가를 갈 조직문화를 갖췄더라도 돈이 없어 못 간다. 연장수당 대신 휴가 가라는데 이게 좋기만 한 일인가. 임금과 근로시간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아서, 과연 정해진 근로시간만 일해서 적정한 생활이 가능한 임금 수준인가부터 먼저 논해야 한다.
정부안의 가장 큰 문제는 근로시간제도의 원칙을 훼손한다는 점이다. 연장근로라는 ‘예외’를 ‘정상’의 지위로 만드는 접근방식이다. 어떻게 하면 예외를 금지하고 줄여나갈 것인가가 아니라 예외를 보편적인 것으로 인식하게 한다. 만연한 연장근로를 더욱 공고하게 할 수 있다.
지금도 활용할 수 있는 각종 유연근무제가 있고 특별연장근로 인가제가 있다. 이들 제도의 확대 과정에서도 심각한 사회적 논란을 겪었지만 ‘예외적 제도’여서 적용 대상이나 사회적 효과 또한 제한적이었다. 그런데 이번 69시간제는 모두에게 적용되는 일반적인 근로시간제도여서 문제가 심각하다.
정부는 ‘위법 천지’인 노동현장의 실태를 외면하고 있다. 이는 이른바 ‘준법 이슈’와 정부안의 의제를 혼동할 게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에 기초한 제도 설계를 해야 한다. 현재도 주 52시간 초과 사례들이 적지 않듯이 주 69시간이 적법해지면 이를 초과하는 편법과 꼼수들도 반드시 등장한다. 그래서 규범으로서든 사회적 신호로서든 법정 기준이 중요하다.
정부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언급하면서 세계 최단시간 노동국가 독일, 법정근로시간 주 35시간의 프랑스 등을 예로 들고 있다. 이들 국가가 총량관리제를 둔 것은 워낙 실근로시간이 짧아 이들이야말로 유연한 근로시간 운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세계 최장 노동시간 국가로서 그들과 비교하는 자체가 부끄럽다. 노동선진국 프랑스라면 이런 정부안에 대해 벌써 수백만명이 거리로 뛰쳐나왔을 것이다. 이미 물러났어야 할 노동부 장관은 오히려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최근에는 모자(cap)를 씌운다느니, 포괄임금약정 근절 및 근로시간 기록의무와 거래(deal)를 한다느니 하는 소리까지 들린다. 정부의 ‘주 69시간제’는 이미 국민으로부터 심판받았다. 더 늦기 전에 즉각 폐기하라.
출생률 0.78의 인구소멸국가 대한민국을 살아가야 할 오늘, 모든 직장인들의 다짐이 필요하다. 밤에는 제발 야근 말고 사랑을 하자. 부디 칼퇴근해서 밤에는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와 지인들과 사랑하는 시간을 보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