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정순신 아들로 시작한 ‘학교폭력’은 그 뿌리가 깊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를 지경이다. 학교생활기록부에 학폭 기록을 남기는 것부터 학폭을 살피지도 않고 수능 점수만으로 뽑는 정시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다양했다.

한국일보가 3월23일자 8면에 ‘학폭으로 퇴교당한 예비 경찰 더 있었다’는 제목의 머리기사를 실었다. 최근 동급생을 집단으로 괴롭혀 교육생 4명이 퇴교당한 중앙경찰학교에서 퇴교 사례가 더 있었다는 거다. 경위 이상 간부를 육성하는 경찰대에도 학폭으로 최근 5년간 10명이 징계를 받았다. 이 기사는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받은 ‘경찰청 산하 교육기관 내 학폭 발생 사건 처리 현황’에 따른 것이다.

한발 더 나아가 한국일보는 “숨은 피해자들이 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했다. 현직 경찰관과 경찰 지망생이 모인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내용을 담았다. 한편 논란에 놀란 경찰은 합동 특별점검단을 꾸려 24일까지 경찰대와 중앙경찰학교를 대상으로 교육 과정, 교육생 관리, 지도관 선발 운영 등을 점검한다.

안 하는 것보단 낫겠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다. 더욱이 이렇게 점검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우리 사회의 문화를 바꾸는 게 몇 번의 점검으로 끝날 일은 아니다.

최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 아파트 경비노동자가 관리소장의 부당한 갑질을 지적하면서 극단적 선택을 하자 지난 20일 동료 경비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관리소장 퇴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여론도 호응했지만 해당 소장은 갑질이 아닌 정당한 업무지시였다고 주장한다.

동아일보와 한국일보는 집회가 열린 다음날인 3월21일 12면과 6면에 ‘경비원 죽음 내몬 관리소장 물러나야’, ‘갑질 사망 경비원 동료 74명 관리소장 해임’ 등의 제목으로 기사를 쓰고 집회사진까지 곁들였다.

하지만 같은 날 경향신문은 한 발 더 나아가 전국 100여 지자체가 운영 중인 아파트 경비원 보호 조례를 분석해 ‘아파트 경비원 보호한다는 지자체, 절반은 말뿐이었다’(3월21일 10면)는 제목으로 보도했다.

전국 100여 지자체가 아파트 노동자 인권 조례를 만들었으나 절반가량은 구체적 사업이 없는 선언적 수준에 그쳤다. 아파트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지자체가 사실상 손 놓고 있었다. 이 기사는 노원노동복지센터가 수행한 ‘노원 아파트 노동자·주민 상생방안 연구 보고서’에 근거했다. 센터는 약 90개 지자체에 관련 사업 진행을 정보공개 청구해 받은 자료를 분석했다. 그 결과 51개 지자체만 관련 사업을 진행했고 나머지는 선언뿐인 조례였다.

그나마 관련 사업을 하는 51개 지자체에서도 아파트 경비원 처우 개선을 위해 ‘고용지원금’ 등 유인책을 시행 중인 곳은 서울과 부산 수영구, 충남 당진, 충남 아산 등 4개 지자체밖에 없었다. 이러다 보니 보호 조례를 제정했는데도 경비원의 열악한 노동환경엔 큰 변화가 없다.

오히려 3개월 미만의 단기 계약을 맺는 ‘쪼개기 계약’은 더 심해졌다. 사람을 3개월 단위로 재고용하면 해당 노동자의 고용은 말도 못할 만큼 불안해진다. 사람 죽었다고 집회하면 그걸 취재해 기사 쓰고 언론의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순 없다. 보다 근본 원인이 뭔지 살펴보는 끈기가 언론에게 요구된다. 그래야만 이 헬조선에 작은 탈출 구멍이라도 낼 수 있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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