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대학로에서 열린 솔라시 여는 포럼에 참석했다. 제목은 ‘연대로 스며들다’였다. 솔라시가 낯선 분들을 위해 간략히 소개한다.
솔라시는 ‘Solidarity of Labor and Civic Society’의 앞 글자를 딴 약자다. 노동과 시민사회의 연대, 솔라시가 연상시키는 음계처럼 아름다운 말이다. 솔라시 홈페이지를 보면, 우리 사회에 연대가 필요한 이유로 ‘플랫폼·비전형·비정규 노동 확대, 기후 위기, 코로나, 혐오와 차별’ 등 복합 위기를 들고 있다. ‘혼자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은 서로의 손을 잡는 연대’가 필요하다면서. 이를 위해 솔라시는 ‘낯선 것, 귀찮은 과정, 이질적인 문화와 마주’할 수 있는 ‘정기적인 연대의 장’을 마련하고자 한다. 올해 하반기에 첫 번째 ‘연대의 장’을 가지는 게 목표다.
연대의 필요성에 십분 공감한다. 불평등, 산업전환과 기후위기, 전염병 등과 같이 한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거대 재난과 변화가 휘몰아치고 있다. 오늘날의 사회 문제는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노력만으로는 풀기 어렵다. 복합적이다. 비정규직 문제만 봐도 그렇다. 돌봄·청소·콜센터 등 여성노동자가 다수를 이루는 서비스 직군은 비정규직 문제뿐만 아니라 여성 문제도 상존한다. 여성노동에 대한 저평가로 여성노동자들은 저임금에 시달리고 경력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 감정노동과 성폭력 위험도 크다. 외국인·장애인·성소수자 등 여타 사회적 약자가 마주한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여러 문제가 뒤섞여 꼬인 상태다. 기후위기와 인공지능 발전에 따른 일자리 변화는 또 어떤가. 노동시장의 말단에 위치한 비정규 노동자는 가장 먼저 일자리를 잃을 위험에 처해 있다.
복합 위기를 해결해야 할 우리 사회는 극심한 분열에 시달리는 중이다. 지역별·계층별·세대별·성별 등으로 산산이 쪼개졌다. 서로 반목하고 비난하고 혐오하기 바쁘다. 갈등을 조정하고 사회를 통합해야 할 정치는 제 기능을 잃은 지 오래다. 오히려 분열의 주체로 우뚝 섰다. 대화와 토론, 생산적인 경쟁, 대승적인 결단 따위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이전투구뿐이다. 정당한 권리를 요구하는 약자를 이기적인 자로 낙인찍는 등 분열을 정치 도구로 활용한다. 이태원 참사 대응과 같이 국민의 아픔을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재단하고 왜곡하는 모습은 치가 떨릴 정도다.
자본의 탐욕과 정부의 무능·무관심·무책임을 견제해야 하는 노동·시민사회는 어떤가? 그간 노동·시민사회는 양적으로 꾸준히 성장했다. 솔라시 여는 포럼 자료(신진욱 중앙대 교수 발표)에 따르면, 비영리 민간단체 등록수는 2000년 2천524개에서 2022년 1만5천577개로 6배 넘게 늘었다고 한다. 노조조직률도 상승 추세다. 2010년 9.8%에서 2020년에 14.2%가 됐다. 45%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이 외에도 집단적 요구 행동 빈도나 정당 당원수가 증가했고, 협동조합·공익법인·사회적기업 등이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시민사회가 제도적으로 다원화했다.
이와 같은 양적 성장에도 노동·시민사회는 여러 과제를 안고 있다. 같은 자료에 따르면, 시민단체와 노동조합의 기관별 신뢰도는 최하위권이다. 노조조직률은 대기업과 정규직에 편중해 있다. 공익활동가의 스트레스 인지율이나 우울감 경험률은 일반 인구집단에 비해 더 높다. 굳이 지표로 하나하나 따질 것도 없다. 시민과 유리된 시민단체, 사회연대에 소홀한 채 임금인상에만 골몰하는 노동조합 등 노동·시민사회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래서일까. ‘정기적인 연대의 장’을 만들겠다는 솔라시의 시도가 반갑다. 노동·시민사회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한 축으로서 더 단단해졌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개인적으로 희망하는 ‘연대의 장’의 모습은 이렇다. 먼저 노동·시민단체 활동가들끼리의 만남만으로 그치진 않으면 좋겠다. 그러한 만남만으로도 나름의 의의가 있겠으나, 이조차도 부족한 게 현실이다, 일반 시민의 시각에서는 ‘또 끼리끼리 모였구나’ 정도로 보이지 않을까 우려된다. 열린 공간에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축제를 목표로 하면 좋겠다. 초장부터 배부를 수는 없겠으나, 해를 거듭하면서 일반 시민, 정당, 이익 단체, 기업 등으로 점차 만남을 확장하는 것이다. 솔라시의 롤모델이라고 할 수 있는 스웨덴의 정치박람회 ‘알메달렌’처럼 말이다.
그러려면 가벼워야 한다. ‘연대의 장’이 내집단의 결속을 다지고 외집단에 대항하는 수단으로 소비돼서는 곤란하다. 한두 번 하고 끝낼 행사가 아니라, ‘정기적인 연대의 장’을 만드는 걸 목표로 하고 있다. 솔라시는 참여자들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즐기는 축제를 만듦과 동시에, 소통과 설득의 문화를 확산하는 데 주력하면 어떨까 한다. 물론 개별 참여자들의 목적이야 단순한 만남부터 인식의 확장, 선전, 조직화 등 다양하겠지만. 그리고 연대나 투쟁, 정치사회 문제를 논한다고 꼭 엄숙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일상을 촘촘히 구성하는 것들이며, 모두가 당연히 가지는 권리에 관한 이야기다. 거대 이념이나 정책, 정의관도 좋다. 그러나 소외되고 연결되지 못한 주변의 목소리, 당장 우리의 삶을 개선할 수 있는 작지만 구체적인 대안도 절실하다.
솔라시는 이제 막 닻을 올렸다. 아직 백지 상태다. 괜히 이런저런 생각이 떠올라 주절거려 보았다. 솔라시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그려질지 기대된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ilecdw@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