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호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정부는 최근 구인난이 심각한 조선업 등의 인력난 해소책을 내놨다.(조선일보 2023년 3월9일 8면, ‘조선업 신규 채용 땐 회사에 1인당 1천200만원 지원’)

정부 발표를 보면 조선 하청사가 노동자를 신규채용해 최저임금보다 20% 이상 많이 주면 업체에 노동자 1인당 1천200만 원을 지원한다. 업체만 돈을 줘 청년들의 취업 유인은 별로 없다. 조선업이 산재도 많고 험한 반면 임금은 그다지 높지 않으니 어떤 청년이 가겠나. 하청업체는 그나마 있던 노동자 자르고 신규채용하면 공돈이 생기니 일석이조다. 사람 자르기가 쉽지 않다고 변명하겠지만, 어려운 일도 아니다. 일감 줄이면 하청노동자는 자연히 그만둔다. 하지만 기존 숙련공을 자르고 미숙련 노동자만 득실거리면 사고 위험은 더 높다. 기술 축적은 더 어려워지고.

하청업체 신규 채용에만 돈 주겠다는 발상도 잘못됐다. 조선업 원·하청 구조를 고착시킬 뿐이다. 물론 원청 ‘빅3’ 조선사를 지원하면 도덕적 해이라는 불만이 나온다. 하지만 한국엔 빅3 말고도 원청 조선사가 꽤 있다.

정부 발표를 전하는 언론은 조선업 생산직을 자르라고 아우성쳤던 8년 전 자신들 보도부터 되짚어 봐야 한다. 2000년대 초부터 10년간 지속된 조선업 호황이 끝나고 2012년부터 조선업에 위기가 닥쳤다. 2015년에 이르러 조선일보는 조선업계를 향해 직원을 자르라고 야단쳤다. 특히 간부사원과 사무직은 자르면서도 생산직 노동자는 왜 안 자르냐고 혐오 섞인 보도도 쏟아냈다. 우리와 결이 전혀 다른 중국과 일본의 조선업 구조조정까지 상세히 소개하며 구조조정만이 능사라고 외쳤다.(조선일보 2015년 9월17일 H2면 “‘정부가 나선다’ 中·日 조선업 구조조정 중”)

조선일보가 구조조정을 외칠 때 이미 자본은 자를 사람 다 지른 뒤였다. 영국의 세계적 조선 해운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 보고서 몇 줄만 읽어도 이런 엉터리 기사는 쓰지 않는다.

조선업은 유가와 제조업 경기와 맞물려 불·호황을 반복한다. 유가가 고공행진하던 2000년대엔 원유를 캐 낼 해양플랜트가 각광 받아 국내 조선업은 미친 듯이 호황을 누렸다.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만 하더라도 2만명 정규직(직영)의 2.5배나 되는 5만명이 하청업체 소속으로 해양플랜트 공정에서 일했다. 2012년부터 유가가 떨어져 위험하게 바다에 시추기를 넣지 않자 해양플랜트부터 불황이 왔다. 또 선박 건조 주기도 길어져 신규 선박 수주도 뜸했다.

빅3 조선사는 호황 때 정규직을 거의 늘리지 않고 하청노동자만 늘려 초과 착취해 놓고서 불황이 오자마자 정규직을 잘랐다. 현대중공업은 1971년 창사 이래 처음으로 2012년 희망퇴직을 실시했고 2015년에도 과장급 이상 사무직 1천300여 명과 고졸 여성 사원 200여명을 희망퇴직시켰다. 아무도 ‘희망’하지 않은 희망퇴직이었다. 대우조선도 부장급 이상 사무·연구직을 희망퇴직시켰다. 삼성중공업은 2014년 임원을 줄였다. 조선일보가 생산직은 왜 안 자르냐고 했지만, 하청업체 소속 수많은 숙련공 수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직영 생산직도 돌아가면서 휴직해야 했다. 사람 자르는 데 분노한 몇몇 숙련공은 아예 중국으로 갔다.

당시 전문가들은 이렇게 마구 자르면 몇 년 뒤에 올 호황 때 숙련공에 부족해 큰일이라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지금이 바로 그렇다. 하지만 정부는 미숙련공 채용에 하청업체를 지원한다는 반쪽 대책을 내놨다.

조선업 불황을 틈타 조선일보가 2015년 9월8일 8면 머리기사로 내놓은 ‘수兆 손실에도 … 생산직은 구조조정 無風지대, 사무직만 희망퇴직’이란 혐오 가득 담긴 기사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조선일보는 이 기사에서 “생산직 노조의 기득권 지키기가 우리나라의 일자리를 줄이고 다 같이 공멸의 길로 가게 만들고 있다”며 조선업 생산직 노동자를 자르라고 주문했다. 조선일보는 불과 8년 뒤 조선업에 사람이 없어서 신규채용 1인당 1천200만원의 세금을 주겠다는 정부 발표를 받아 쓸 줄 알았을까. 무식하면 용감하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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