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돈 돈 돈의 돈돈 악마의 금전, 갑돌이하고 갑순이하고 서로 만나서….”
학창시절 배웠던 노래다. 그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니 당시 선생님께서 물질만능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뜻으로 알려주신 것 같다. 돈은 인간의 편리를 위해 만들어진 가장 혁신적인 창조물 중 하나다. 하지만 오늘날 돈은 희노애락의 대명사다. 많은 돈을 벌면 기쁘고, 돈이 없으면 화나고, 손해 보면 슬프고, 남이 돈을 벌면 왠지 배가 아프다. 돈은 사람들의 최고 관심 사항이 아닐 수 없다.
정부가 노조를 죽이려고 ‘돈’ 이슈를 잡았다. 국민의 관심 주제인 ‘노조’와 ‘돈’을 연계시켰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아이템이다. ‘국민 세금을 불법으로 사용한 노조’로 프레임을 잡아 일단 관심 끄는데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고용노동부는 작년 말부터 한 달간 양대 노총에 회계 관련 자율점검과 증빙자료 제출을 요구했다. 조합원 명부, 규약, 임원 주소록, 회의록, 재정 관련 장부와 서류(예산서, 결산서, 수입 또는 지출결의서 등) 등 증빙서류만 50여종이 된다.
노조법의 회계 규정을 보면 노조는 재정에 관한 장부와 서류 등을 사무소에 비치하고(14조), 회계를 감사하며(25조), 결산 결과와 운영상황 공표와 조합원 요구 시 공개하고(26조), 행정관청 요구시 결산 등을 보고한다(27조). 그런데 노동부는 국고 보조금과 상관없는 조합비 규모와 사용내역까지 요구했다. 행정업무와 관련이 없는 사항을 내걸어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부당결부금지 원칙’의 위반이다. 양대 노총은 노동부의 월권이며 노조의 자주성 침해와 노동탄압이라고 맞섰다. 양대 노총이 반발하자 정부는 회계장부 제출을 거부하는 노조에 대해 국가보조금을 중단하고, 환수하며, 노조 조합비의 세액공제도 없앤다고 협박한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국민 혈세의 사용 내역 공개를 거부하는 행위에 대해 단호한 조치를 지시했다. 그러나 국회입법조사처는 정부가 노조에 과도한 서류를 요구한다고 해석했다.
2022년 정부는 ‘합리적 노사관계 지원’ 명목으로 한국노총에 29억2천만원, 민주노총에 3억3천만원 등 총 35억9천만원을 지원했다. 현재 국고 보조금을 받는 모든 단체는 정부가 만든 국고보조금통합관리시스템인 ‘e나라도움’에 사용내역을 의무적으로 등록해야 한다. 노조도 마찬가지다. 이러니 노조가 공금을 불법사용하거나 횡령할 수 없는 구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마치 노조가 불법으로 세금을 사용한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
그러면 사용자단체는 얼마나 많은 세금을 지원받고 정부는 이를 잘 감시하고 있을까? 지난해 정부가 경총, 무역협회, 대한상의, 중소기업중앙회, 중견기업연합회 등 5개 경제단체에 지원한 금액은 총 689억3천만원이 넘는다. 중소기업중앙회가 325억원으로 가장 많이 받았고 다음으로 대한상의는 176억1천만원, 경총은 116억7천만원, 무역협회는 45억5천만원, 중견기업연합회는 26억원 등이다. 일반적으로 액수가 많은 곳에서 횡령이나 불법의 가능성도 더 클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노조보다 10배 넘는 세금을 사용한 사용자단체에 회계 감사를 먼저 하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을까. ‘공정과 상식’ ‘법과 원칙’을 외치는 윤석열 정부에서 기업은 정부의 혜택만 받고 규제를 받지 않는 성역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정부는 코로나19로 큰 타격을 받은 항공사에 고용유지지원금으로 3년간 5천571억원을 지원했다. 이중 대한항공이 전체금액의 52%인 2천893억원을 받았다. 코로나19가 누그러들면서 항공업이 활기를 되찾았고 지난해 대한항공은 약 1조8천억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대한항공은 배당금으로 역대 최대인 2천770억원 지급을 계획하고 있다. 총수일가가 100억원의 배당금을 받게 된다. 기업은 경기가 어려우면 세금을 지원받고 경기가 좋으면 배당금으로 잔치를 벌인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모르는지 아니면 모른 척 하는 지 가타부타 말이 없다.
노사 모두 국고 지원금을 불법적으로 사용했다면 법적 처벌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기업은 봐주고 노조 때리기에 초점을 맞춘 지금의 정부 행태는 공정과 상식에도 어긋나고, 명분과 정당성도 없다. 노조는 세금을 가지고 시민들을 대상으로 노동인권 교육을 했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을 노조가 대신 수행한 것이다. 이를 두고 정부와 보수언론들은 노조가 세금으로 조합원들을 교육시켰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조합원들도 세금을 내는 국민이다. 조합원들도 국민으로서 노동인권 교육을 받을 권리가 있다. 노조가 시민과 조합원에게 노동인권 교육하는 것이 못마땅하면 정부가 직접 실시하고 노동인권 교육을 초중고 정규과정에 편성하면 된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선진국이고 세계 10위의 경제대국이지만 저평가 됐다고 흔히 말한다. 일명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다. 저평가의 원인이 강성노조 때문이라고 보수언론은 수년 동안 앵무새처럼 되풀이한다. 윤석열 대통령조차 노조가 정상화돼야 기업 가치가 오르고 자본시장이 발전해 수많은 일자리도 생겨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2022년 9월 금융위원회가 개최한 세미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저평가 원인은 첫째 기업지배구조 취약성, 둘째 주주환원 미흡, 셋째 불투명한 기업회계 등으로 나타났다. 특히 불투명한 기업회계와 기업 지배구조는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기업 오너의 한마디에 불법 분식회계가 일어나고 비자금이 조성되는 기업 1인 지배체계가 문제인 것이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의 기업에 대한 신뢰는 상상을 초월한다. 부자감세는 물론이고 최근에는 ‘규제혁신전략회의’를 열어 기업 관련 108개 규제를 폐지했다. 반면 ‘불합리한 노동관행 개선 전문가 자문회의’를 통해 노조 처벌은 강화했다. 정부는 낮은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기승전 노조 죽이기’에 혈안이 돼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한 것은 ‘노동개혁’이 아니라 ‘기업개혁’이다. 정부는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은 것 같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wadrgon@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