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 2년 차를 맞는 대한산업안전협회의 발길이 분주하다. 민간재해예방기관인 협회는 공직유관단체로도 지정돼 있다. 산재 분야 민간 컨설팅 기관이면서도 공익성을 추구하는 공공기관의 성격이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50명 미만 사업장 461곳에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무료 컨설팅을 한 협회는 올해 1천여 곳으로 대상을 확대한다. 최근에는 안전관리 구축 전문가를 양성하는 산업안전 인적자원개발위원회(ISC) 대표기관으로도 선정됐다.

협회는 9천여개 사업장의 위탁으로 안전관리체계 구축 등을 지원하고 있다. 위탁 회사에서 발생한 중대재해는 2021년 21건(계약 전 3건 포함)에서 지난해 17건(계약 전 1건 포함)으로 소폭 줄었다.

박종선(66·사진) 대한산업안전협회장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입법 취지에 맞게 작동하려면 노사 모두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기업은 어떻게 하면 처벌을 피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에 관심을 둬야 한다”며 “노동자도 산업안전보건 부문의 의무주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 23일 오후 서울 구로구 협회 회장실에서 이뤄졌다. 중대재해처벌법 관련 협회 차원의 대응 계획과 현장 분위기 등을 물었다.

“노사·내부 갈등 해소 앞만 보고 달릴 일만 남아”

- 취임 2년을 보냈다. 지난 소회와 남은 임기 중 중요한 경영방침은.
“2년간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취임 직후에는 중대재해처벌법을 두고 국회 논의가 막바지에 있었고, 협회는 전임 경영진과 내부 갈등으로 혼란을 겪고 있었다. 기업에서는 중대재해 예방을 어떻게 해야 하냐는 컨설팅 문의가 빗발쳤었다. 녹록지 않았던 시기와 과정은 기존 운영 방식의 한계와 개선점을 명확하게 인지하게 된 귀중한 계기가 됐다. 협회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재해예방기관으로서 반세기 넘게 산업안전을 대표하는 기관이다. 그런데 조직 운영의 합리성과 효율성, 기술·연구개발에 대한 선제적 투자, 전문성 제고를 위한 직원 역량개발 부분 등에서 미흡한 부분이 있다. 부족함을 내부적으로 공유했던 지난 2년이었다. 이제는 앞만 보고 달려야 한다.”

- 협회 내부 갈등이 오랫동안 심각했는데.
“지난 4~5년간 리더십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다. 전임 회장 불신임 상태에서 개정된 단체협약으로 노사가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과 본분을 충실히 수행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자의적인 경영을 견제하고자 노조는 사용자의 경영권을 제약하는 단협을 마련했다. 지난해 하반기 경영권 관련 규정을 이전의 정상적 수준으로 회복하는 단협 개정에 노사가 합의했다. 직원 복지 향상과 역량개발에 집중할 수 있는 제도도 신설하면서 노사가 뜻을 모을 수 있었다. 현 경영진이 상당수 직원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임기를 시작했고, 처음부터 협회 정상화 방안에 공감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제 1년, 평가 일러”
“서류작업만으로 법 피하려 하면 안 돼”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지난해 중대재해로 644명이 목숨을 잃었다. 2021년과 비교하면 39명이 줄었는데, 추락·끼임·부딪힘과 같이 기본적인 안전조치로 예방할 수 있었던 사고사망자는 421명으로 여전히 많다. 법 시행 효과를 두고 획기적 개선이 눈에 띄지 않는다는 등 의견이 분분하다. 법 적용 대상이 되는 (법시행 1년을 기준으로) 중대재해 611건 중 고용노동부가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사건은 34건, 이 중 검찰은 11건을 기소했다. 기소의견 송치나, 기소율이 낮은 것은 그만큼 법에 따른 준비와 의무사항을 나름대로 충실히 준비한 것이라고 해석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고작 1년이 지났고, 더 지켜봐야 한다. 법이 기업에 미친 영향은 상당히 큰 것은 자명하다.”

- 기업은 중대재해 감소를 위해 무엇을 노력해야 하나.
“중대재해처벌법은 굉장히 추상적이다. 시행령도 산업안전보건법에 비해서는 두루뭉술하다. 그러다 보니 법과 시행령에 있는 사업주의 안전관리 확보 의무를 서류상, 가령 조직의 모양을 갖추고 전담부서설치·인력배치·예산배치·교육실시 등을 근거로 남길 수 있다. 이 법의 취지는 의무사항을 이행하는 과정을 통해 경영책임자와 노동자들이 자연스럽게 안전에 대한 가치를 공유하고, 안전을 최우선시하고, 일할 때도 안전을 우선하는 사업장의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에 있다. 형태만 갖추고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법 제정 취지대로 작동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기업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처벌을 피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만들어 나갈 수 있을까에 관심을 둬야 한다.”

- 중대재해 등 산재를 예방하려면 노조의 역할도 중요한데.
“노동자는 산업안전보건법의 보호대상이면서 의무주체라는 이중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 노사가 함께해야만 실제 산업안전이 정착하고 중대재해 예방이 가능하다. 위험을 가장 가까이에서 접하는 이들은 노동자고, 위험요소와 안전수칙을 가장 잘 숙지해야 하는 이들도 노동자다. 이 과정에서 사업주는 노동자 참여가 활성화할 수 있도록 경영을 개선해야 한다. 위험요인으로 평가한 사항, 개선이 필요하다고 보고한 사항은 가능한 한 신속히 처리해서 노동자 스스로 안전하고 건강한 일터를 조성하는 주체라는 인식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산재기금 3% 정부 지원, 법대로 지켜야”

- 중대재해를 비롯해 질병·사고성 재해를 줄이기 위해 정부가 노력해야 할 부분은.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에 따라 산재기금지출예산 총액의 3%를 정부가 지원해야 한다. 그런데 실제 0.2%에 그친다. 예방사업이 절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없다. 법적 기준은 지원해야 한다. 이 돈을 취약한 현장에 사용해야 한다. 산재를 획기적으로 감소하려면 산재 발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규모 사업장의 재해를 줄여야 한다. 이들 기업이 재정 부담에서 벗어나 안전전문인력을 채용하거나 전문성을 갖춘 재해예방기관의 컨설팅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도록 재원을 대폭 확충하고 지원해야 한다.”

- 협회는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난해 초 회장 직속으로 중대재해예방 지원단을 신설했다. 협회도 법 적용 대상 사업장이라는 생각으로 전담조직을 만들었다. 중대재해처벌법에는 500명 이상 사업장에 전담조직 설치를 의무화하고 있다. 협회는 대상에서는 제외되지만 자체적으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준수하기 위한 조치다. 고객인 9천여개 사업장이 효과적으로 안전관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안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사고성 중대재해 특별 감소대책을 마련해 시행하고 있다. 사고성 중대재해 발생 위험이 큰 사업장을 위험 수준에 따라 분류하고 맞춤형으로 지원하고 있다. 하반기에는 스마트 산업안전관리 플랫폼인 스마플(Smart My Safety Platform)을 서비스한다. 안전관리를 손쉽게 할 수 있도록 서류작업 등을 플랫폼에서 할 수 있게 한다. 중소기업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무료 지원할 예정이다. 협회는 국내 민간재해예방기관 중 유일하게 공직유관단체로 지정돼 있다. 공익기관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이행하려 한다. 노동부는 50명 미만 사업장을 대상으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 컨설팅 사업을 한다. 지난해 2천240곳을 했는데, 협회가 461곳을 맡아 무료로 컨설팅 등을 지원했다. 올해는 1천 곳 정도로 확대할 계획이다.”

- 지난해 산업안전 인적자원개발위원회(ISC) 대표기관으로 선정됐는데.
“산업안전 분야에 맞춤인력을 양성하는 국가사업을 진행하는 조직으로 선정됐다. 현장에 통용되는 직무를 표준화하고, 직무역량체계를 구축해 산업현장의 부족한 인력을 해소하고, 산재예방 역할을 하라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안전선진국으로의 도약이 필요한 시기에 사업장 내 유해·위험요인을 스스로 파악해 개선대책을 수립하고, 빅데이터 등을 활용해 안전관리 체계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역량을 갖춘 인재를 양성해야 한다. 다음달 7일 개소식을 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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