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 위반으로 과거 고용노동부의 행정지도를 받은 LG전자가 또 일방적으로 노사협의회를 구성·운영해 노동자 반발을 사고 있다.
26일 <매일노동뉴스> 취재에 따르면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노조(사무직노조)는 사측이 전사 단위 노사협의회를 설치하지 않아 최근 노동부에 진정을 제기한 것으로 확인됐다. 금속노조도 같은 이유를 포함해 LG전자가 근로 결정 권한이 없는 본부·부문별 노사협의회 설치 자체가 위법이라며 노동부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노동부 행정지도 후에도 잡음 계속
LG전자 노사협의회를 둘러싼 논란은 202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사무직 노동자가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노조를 설립하면서, 기능직으로 주로 구성된 교섭대표노조 LG전자노조와의 교섭단위 분리를 신청했다. 하지만 서울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기각했다.
노동위 심문 과정에서 사측은 사무직 노동자의 의견을 JB(Junior Board·주니어보드)라 불리는 노사협의회를 통해 수렴하고 있다고 밝혔다. 당시 LG전자 노사협의회는 기능직과 사무직으로 나눠 운영됐다. 하지만 사무직 노동자 사이에서는 “본인이 근로자위원인 줄도 모르는 근로자위원도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깜깜이로 운영됐다.
사무직노조는 2021년 8월 노동부에 사측의 근로자참여법 위반 진정을 제기했다. 노동부는 LG전자의 노사협의회 운영에 ‘문제 있음’을 확인, 행정지도 했다. 당시 ‘직종(기능직·사무직)’ 단위로 분리 설치·운영 중인 노사협의회를 근로자참여법에 따라 통합 설치 혹은 근로조건 결정권이 있는 사업이나 사업장 단위로 설치하라는 내용이었다. 행정지도에는 “노사협의회에 위원선거인을 근로자참여법에 맞게 선출”하라는 내용도 담겼다.
이에 LG전자는 지난해 초부터 노사협의회 재구성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꾸렸고 같은해 10월 사업부·업무부문별로 9개 노사협의회를 최종 구성했다. 하지만 노사협의회를 둘러싼 잡음은 계속되고 있다.
근로자위원 투표 선출하니 중앙 노사협 폐지
준비위원 선정 기준도 공개 안 해
LG전자 사람중심 사무직노조 관계자는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9개 본부별로 회사가 (노사협의회를) 설치를 하겠다고 하고, 본부별로 3명의 준비위원회 위원을 선정했다”며 “회사쪽과 기능직·사무직 준비위원 한 명씩을 지원받아 뽑았는데 선정 기준은 모른다. 여러 사항을 고려해 뽑았다는 설명만 들었다”고 전했다. 이른바 ‘깜깜이’ 논란이 재연한 것이다.
LG전자는 본부(5)·센터(7)·부문(7)·기타(3) 등 22개 조직으로 구성돼 있는데 이 중 9곳을 선정해 노사협의회를 구성한 것을 두고도 위법성 논란이 인다. 근로자참여법 4조는 “노사협의회는 근로조건에 대한 결정권이 있는 사업이나 사업장 단위로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단 같은 사업이어도 지역이 다른 사업장에도 노사협의회를 설치할 수 있다.
금속노조 관계자는 “각 사업부 등이 지역을 같이 한다면 모르겠지만 9개 노사위원회가 하나의 지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지역에 나눠져 있다”며 “하나의 사업에 지역을 달리하는 사업장이 있을 경우 그 사업장에도 설치할 수 있다는 법률 조항과도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지난 23일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 근로자참여법 위반으로 진정을 제기한 이유다.
사무직노조는 근로조건을 결정하는 전사 단위 노사협의회도 함께 구성할 것을 요구하고 있지만 사측은 거부하고 있다. 유준환 위원장은 “과거 (근로자위원을) 교섭대표노조나 JB(주니어 보드·과거 운영하던 사무직군 노사협의회)에서 위촉할 때 전사 단위로 노사협의회를 운영해 오다가 근로자위원을 직원 투표로 선출하자 전사 노사협의회 설치를 거부하고 있다”고 진정 취지를 밝혔다.
소수노조라서? “노사협 규정도 안 줘”
특정 노조 패싱도 계속되고 있다. LG전자 A/S 노동자를 조합원으로 둔 금속노조 LG전자지회(지회장 설정석)는 노사협의회 규정도 사측에서 공유받지 못했다.
설정석 지회장은 “(직원이 노사협의회 규정을) 볼 수 있다며 사내전산망에 접속해 볼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줬는데 찾을 수 없었다”며 “노동부에 정보공개 청구를 하고 노사협의회 규정을 달라고 하니 (사측이) 과거 규정을 줬다”고 전했다. LG전자 직원이 자사 노사협의회 규정을 보기 위해 정보공개 청구를 하는 우스운 상황이 벌어진 배경이다.
하지만 정보공개 청구도 순탄치 않았다. 금속노조가 노동부에 신고된 LG전자 노사협의회 관련 제반사항 정보공개를 청구하자 서울노동청 서울남부지청은 “LG전자㈜는 비공개 요청한 점”과 “법인·단체 또는 개인의 경영상·영업상 비밀에 관한 사항”이라는 이유로 거부했다. 정보공개를 청구한 금속노조는 LG전자 직원이 아니라는 이유다.
LG전자 직원인 설정석 지회장이 직접 정보공개 청구를 진행하자, 서울남부지청은 9개 노사협의회 규정 중 A/S부문에 해당하는 LG전자 고객가치혁신부문 노사협의회 규정만 제공했다. 나머지 8개 노사협의회 규정은 지회 조합원이 소속된 곳이 아니라 직접 이해관계 당사자가 아니라는 얘기다.
서범진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는 “금속노조는 각 지회의 단체협약 체결권을 가지고 있고, 하나의 조직으로서 전체 지회를 통솔하고 있다”며 노동부 결정을 비판했다.
“노사협 내용 누설시 징계”
만들어진 노사협의회 규정에도 문제가 곳곳에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고객가치혁신부문 노사협의회 규정에는 “협의회의 위원, 참석자, 관련 실무자 등 모든 사람은 협의회에서 알게 된 내용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라는 비밀유지 조항이 포함됐다. 어기면 인사상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 징계 조항도 포함됐다. 원한다면 참관할 수 있지만 비밀유지서약을 해야 하며, 소속 조직 책임자의 승인까지 받아야 한다.
규정대로면 노사가 자유롭게 근로조건에 관한 의견을 주고받는 노사협의회는 불가능한 셈이다. 서 변호사는 “회의는 공개가 원칙이고 그 내용과 결과도 문서로 남기도록 법이 정하고 있는데 법률보다 공개성(정도를)을 낮춘 것으로 명백히 위법하다”고 비판했다.
금속노조는 노동부의 정보공개 신청 기각·일부 기각 결정에 25일 행정심판을 제기했다.
LG전자 사측 관계자는 <매일노동뉴스>와의 통화에서 “노조에 가입된 우리 회사 직원들은 자신이 속한 부문의 규정뿐만 아니라 다른 부문 다른 사업장 (노사협의회) 규정도 다 열람을 할 수 있다”며 “본사 노경팀을 통해서 누구나 (노사협의회 규정을)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앞서 설정석 LG전자지회장의 정보공개 청구에 고객가치혁신부문 외에 나머지 8개 노사협의회 규정은 이해관계 당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비공개한 서울남부지청쪽의 설명은 사측 주장과 상반된다. 지청 관계자는 “저희쪽에는 (사측이 모든 노사협의회 규정을 공개해도 된다고) 그렇게 의사 표현 안 했다”며 “비공개 요청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