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오래전의 일이다. 퀴어퍼레이드가 열리던 서울시청광장에서 건설노조 한 지부의 깃발을 봤다. 그 지부 깃발에는 무지개깃발도 달려 있었고 조합원들은 안전화를 신고 안전모를 쓰고 있었다. ‘우리 건설노동자들도 퀴어퍼레이드에 함께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며 즐겁게 행진하던 그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노조로 뭉친 건설노동자들은 임금과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데 머무르지 않았다. 소수자들의 싸움에 함께했고, 사회적 참사 피해자 곁에 있었다. 힘든 비정규직 노조의 싸움에도 늘 건설노조의 깃발이 함께했다.

그런데 정부가 그 건설노조를 불법 범죄집단으로 몰고 있다. 국정현안 관계장관회의에서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방안’을 논의하고, 경찰청이 ‘건설현장 갈취·폭력 등 조직적 불법행위 특별단속’을 발표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건설노조는 조폭과 같은 무법지대의 온상”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말에서 그치지 않고 경찰이 건설노조 여러 곳을 압수수색했다. 이것만으로도 건설노조는 불의한 집단으로 인식되고 있다. 노조라는 이름만 가져다가 자신의 이득만 챙기는 집단이 어딘가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정부의 탄압은 그동안 건설현장을 바꾸기 위해 애써 온 노조에 집중돼 있다.

건설노조에 씌워진 혐의 중 하나가 ‘노동조합이 전문건설업체에 채용을 강요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채용비리는 은행이나 공기업 등에 인맥을 동원해 채용절차를 어기고 취업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건설현장이 취업준비생들이 원하는, 공정한 채용절차가 있는 곳인가.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르면 종합건설사의 하청인 전문건설업체는 재하도급을 하면 안 되며, 노동자를 직접고용해야 한다. 그런데 건설현장에는 불법하도급이 만연해 있고, 도급팀장들이 노동자들을 모아서 일감 따내기 경쟁을 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왜곡된 고용구조를 바꾸고 직접고용 하라고 요구해 온 것을 정부는 “채용 강요”라고 말한다.

건설업은 고용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노조가 나서지 않으면 노동자들은 인력소개소나 인맥에 의존해 취업하게 되고, 일자리 경쟁 때문에 임금 단가는 계속 낮아진다. 그래서 민주노총 건설노조 산하 토목건축분과위원회는 2017년부터 철근콘크리트협의회와 업종별 단체교섭을 통해 단체협약을 체결했고, 그 협약 안에는 임금과 노동시간만이 아니라 고용조항도 포함돼 있다. ‘건설회사는 개설하는 현장에 조합원을 고용한다’는 합의가 2019년 ‘조합원이라는 이유로 채용에 있어 차별을 두지 않는다’로 완화됐지만, 노동조합이 고용에 개입해 노동자들의 저단가 경쟁을 막고 노동조건을 보호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정부는 건설노조 토목건축분과에 대해서는 ‘채용 강요’라고 문제삼고, 건설기계에 대해서는 단체협약의 내용이 공갈과 갈취라고 주장한다. 건설노조 부산건설기계지부 압수수색 내용을 보면,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사업자이므로 이들로 구성된 사업자단체가 사용자와 단체교섭을 요구하고 투쟁한 것은 ‘공동강요’라고 한다. 그리고 그 단체협약에 따른 복지기금을 ‘갈취’라고 말한다. 이 주장의 전제는 ‘건설기계 노동자들은 노동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정부는 너무나 정당한 특수고용 노조의 노조활동을 인정하지 않는 무리수를 두고 있다.

노조가 나서기 이전, 건설현장은 무법지대였다. 노동자들은 새벽부터 밤까지 일했다. 노동자들이 떨어져 죽는데 산재는 은폐됐다. 임금체불도 심각했다. 지금도 노조 없는 현장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진다. 건설현장은 노조의 노력으로 8시간 노동이 정착했다. 안전보호장구도 제대로 지급됐다. 퇴직금도 받게 됐다. 관리자들은 더 이상 노동자들을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여성들과 청년들이 건설현장에 들어가 숙련을 쌓는다. 건설노조는 건설사의 부정비리와 공사기간 단축으로 인한 부실공사를 막고 안전한 건설현장을 만들기 위해 애써 왔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건설노조를 “경제에 기생하는 독”이라고 했다. 누가 독인가. 우리는 오늘도 뉴스를 통해 건설자본과 경제관료들, 정치권의 결탁과 비리를 듣고 있다. 건설노조는 이런 현장을 바꿔 왔다. 건설현장만 바꾼 것이 아니라 건설노동자 스스로도 바뀌었다. 건설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에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이들이 평등하게 권리를 보장받도록 노력했다. 연대를 통해 사회도 변화시키고자 했다. 건설노동자의 인간선언은 노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정부는 노조를 범죄집단으로 낙인찍음으로써, 권리를 가진 주체로 나선 노동자들을 노예 상태로 되돌리려고 한다. 그러나 건설노동자들은 결코 과거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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