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제작현장의 불법적 계약 근절 및 근로기준법 전면 적용을 위한 시민·사회단체 공동행동과 함께 2021년 드라마 제작 현장 6곳을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고발했다. 제작사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에 해당하는 스태프들과 근로조건을 명시하지 않은 계약서를 작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말 근로기준법 위반이 확인됐으나 피고발인인 제작사들에게 근로기준법 위반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통지를 고용노동부와 검찰에서 받았다. 현재는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항고하고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노동부가 제시한 구체적인 사유는 아래와 같다.
“법 위반 사항이 있으나, 양 당사자가 업무위탁계약서를 작성할 때, 근로자성 여부에 대해서 다툼이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스태프들의 업무 내용 및 근무형태로 근로자성 여부를 다툴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어 보이며, 사후적으로 근로자성이 인정된 사정을 이유로 제작사들에게 업무위탁계약서에 근로조건을 명시하지 않은 책임을 묻기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피의자들의 고의가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어, 수사검사의 지휘를 받아 불기소(혐의 없음) 송치”
노동부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제작사의 고의를 부정한 근거 중 하나로 “양 당사자가 업무위탁계약서를 작성할 때 근로자성 여부에 대해서 다툼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애초에 근로기준법은 일을 해야만 하는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사용자가 내미는 계약서가 아무리 불리하더라도 이에 대해서 반기를 드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제정됐다. 그런데도 근로기준법 준수를 감독하는 기관인 노동부에서 근로자가 사용자의 부당한 요구에 응했다는 것을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사용자의 고의를 부정하는 근거로 썼다. 사건 조사기관인 노동부와 검찰에게 범죄 성립을 증명할 의지가 존재하는지를 묻게 만든다.
명백한 근로기준법 위반 행위를 노동부에 신고해도 ‘고의성이 없다’는 노동부나 검찰의 판단 결과를 받아들여야만 했던 것은 비단 방송 스태프들만이 아니다. 계약직으로 일하는 학원 강사에 대해서도 비슷한 판단이 있었다. 지난해 12월 김성호 공인노무사(해담 노동법률사무소)도 <매일노동뉴스> 칼럼을 통해 노동자의 근무기간 23년 중 최근 3년을 제외하고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것이 확인된 사건에서 사용자의 근로기준법 위반의 고의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혐의 없음’으로 종결됐다고 개탄했다.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인지 몰라서 고의가 없었다는 판단은 그 내용이 형법 13조의 고의에 관한 판단인지, 형법 16조의 법률의 착오에 관한 판단인지에부터 시작하는 복잡한 법이론적 논의를 포함한다. 다만 어느 쪽이든 노동부와 검찰의 ‘고의성 없음’ 판단은 그 정당성을 인정받기 어렵다.
실제로도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에 관한 다툼이 있었던 사건에서 법원이 피고인의 고의를 부정할 사정이 인정했던 사건이 극히 드문 것에 반해, 일선의 노동청이나 검찰이 근로기준법 위반 사건에서 사용자의 근로기준법 위반의 고의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행정종결하거나 불기소 처분한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나아가 시정지시를 내리거나 과태료를 부과할 때에는 법 위반자의 고의가 애초에 요구되지 않는다.
근로자가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임을 사용자가 부정하는 경우에 근로자는 부당하고 불리한 조건에서 일하게 된다. 근로시간제한, 부당한 해고나 징계로부터의 보호, 적정 임금 보전 등 근로기준법이 근로자의 최소한의 존엄과 건강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한 최소한의 근로조건을 준수하지 않는 환경에서 노동할 위험에 처한다.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성을 부정당한 근로자야말로, 근로기준법상 최소한의 근로조건 보장조차 담보 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모든 근로자 중 특히 취약한 근로자라고 할 것이다.
근로기준법 위반 행위에 대해 피고용자의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성이 명확하지 않음을 이유로 사용자에게 ‘고의 없음’ 면죄부를 남발하는 행태는, 사용자에게는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할 여지를 인식하고도 근로기준법의 적용을 회피할 강력한 유인으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
조사 대상이었던 제작사 중 일부는 과거 근로감독에서 노동부에게 근로계약서 작성 지시를 받았는데도 무시하고 또 한 번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채 사업장을 운영했다. 그럼에도 노동부는 해당 제작사들의 근로기준법 위반 고의를 부정했다. 노동부가 이전에 시정지시를 했는데도 제작사는 여전히 근로기준법 위반을 자행한다. 그리고 노동부와 검찰은 그러한 제작사에 대해 고의가 없다며 면죄부를 준다. 이쯤 되니 근로자들은 어디를 가야 근로기준법상 권리를 보호받을 수 있는지 묻게 된다.
노동부와 검찰이 근로자 보호를 포기한다면 근로자는 어디로 가야 하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