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병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노동·연금·교육 개혁. 윤석열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3대 개혁이다. 이 중 노동개혁이 선두를 달리고 있다. 지난해에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화물연대 파업을 힘으로 짓누르고,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통해 직무급제 도입과 노동시간 유연화를 예고했다. 올해는 노조 압수수색, 회계 투명성 강화 등을 밀어붙이고 있다. 그리고 상생임금위원회를 발족해 임금체계 개편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또 경영계와 발맞춰, 시행한 지 갓 1년 지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개정하려 하고 있다. 노동부뿐만 아니라 검찰·경찰·국정원·공정거래위원회·국토교통부 등을 동원해 전방위적으로 노조를 압박하는 형국이다.

말은 ‘노동개혁’이라고 하나 행동은 ‘노동탄압’에 가깝다. 노조를 배제하려고만 한다. 상대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니 대화와 타협은 불가능하다. 극심한 반발만 불러올 뿐이다. 배제의 정치는 노동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장애인, 여성, 성소수자, 참사 희생자·유족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 이들의 정당한 권리를 생떼, 나아가 폭력으로 둔갑시키고, 노조원과 비노조원, 정규직과 비정규직, 비장애인과 장애인, 남성과 여성, 이성애자와 성소수자, 시민과 참사 희생자·유족 사이에 선을 그어 편을 나눴다. 그 과정에서 약자는 어느새 강자가 됐다. 참다 참다 못해 권리를 주장했단 이유로 말이다.

윤석열 정부는 노조를 악으로 규정하고 심판자를 자청하면서 노동개혁을 위한 명분과 힘을 얻으려 한다. 대규모 공권력을 동원해 보여주기식 압수수색을 하고, 노조에 간첩과 회계 비리 딱지를 붙이는 식이다. 상대가 악이면 이를 심판하는 자는 선이 된다. 누구든 죄를 지었으며 처벌받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일부의 잘못이 마치 전체의 잘못인 듯이 굴고, 일단 잘못이 있다고 가정하고 잘못이 없다는 걸 입증하라고 하는 건 노조를 악마화하려는 의도가 다분한 행태다. 결과는 나쁘지 않은 듯하다. 화물연대 파업을 기점으로 대통령 지지율이 가파르게 상승했고, 현재까지 안정적으로 30%대 중후반을 넘나들고 있다. 과거 보수 정부에서도 그랬듯 노조 때리기는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좋은 전략인 듯하다.

그러나 노동개혁을 위한 진정한 명분과 힘은 노조 때리기에서 나오지 않는다. 노조는 노동개혁의 걸림돌이 아니라 함께해야 할 한 축이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고 취약계층 노동자를 보호하겠다고 하나 공허하게만 들린다. 노동개혁을 하겠다면서 직접적인 당사자인 노동자의 목소리를 듣지 않기 때문이다. 노조를 배제한 채, 대부분 전문가로 구성된 각종 위원회나 자문단을 발족해 개혁안을 쏟아낼 뿐이다. 억지 명분 쌓기용으로밖에 안 보인다.

법제도는 무언가를 하거나 하지 못하게 하는 강제성이 있다. 시민들이 따르는 이유 중 하나다. 그러나 강제성만으론 부족하다. 옴짝달싹도 못 해 숨이 막힐 것이다. 시민들이 기꺼이 법·제도를 지킬 수 있게 정당성도 필요하다. 함께 숙고해 합의를 이뤄 낸 법제도라야 마음에 안 들지라도 최소한 수긍이라도 할 수 있다. 당사자를 배제한 채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일방향 개혁은 성공하기 힘들다. 극심한 혼란을 야기할 것이다. 노동개혁과 같이 다수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이라면 더욱 그렇다.

어찌어찌 빈껍데기 개혁을 이뤄 낸다고 해도 그것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할 리 만무하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소를 위한 핵심 과제인 임금체계 개편만 봐도 그렇다. 정부는 호봉제를 직무급제·성과급제 중심으로 개편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임금체계는 기본적으로 노사 논의를 거쳐 결정된다. 그리고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이라는 직무급제의 원칙을 구현하려면 산별교섭 체계가 필요하다. 노조 없는 사업장까지 확산할 수 있도록 단체협약 적용률을 제고해야 한다. 직무나 성과를 어떤 식으로 공정하게 평가할지도 문제다. 또한 임금체계조차 없는 60%가량의 사업장, 노동법에서 배제된 5명 미만 사업장, 전통적인 근로관계 밖에 있는 특수고용직·프리랜서·1인 자영업자 등은 어떻게 할 것인가?

윤석열 정부 노동개혁에는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 허울뿐인 구호로만 들린다. 개혁이 되는 방향이 아니라 안 되는 방향으로 자꾸만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어쩌면 집권 1년차인, 시퍼런 칼날을 쥔 정부의 자의식 과잉일지도 모른다. 홀로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그런. 그러나 노조를 배제한 채로는,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를 방치한 채로는 결코 노동개혁에 성공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ilecd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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