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세화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울산사무소)

1. 모든 ‘문화(文化)’에는 이상(理想)을 향한 의지가 자란다. 문화(文化)란 어떤 사람들 사이에 자연 투쟁 상태에서 벗어나 그 이상을 실현하고자 습득·공유·전달되는 행동 양식과 그 결과물을 일컫는다. 노사 간에도 이러한 문화가 시작되는 시점이 있다.

2. 전국택배노동조합은 2018년께부터 원청 사용자인 CJ대한통운에 교섭을 요구했다. CJ대한통운은 “택배기사들은 대리점과 계약을 체결하고 있고 CJ대한통운과는 아무런 계약관계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단체교섭을 거부했다.

CJ대한통운은 택배 대리점(집배점)과 택배 배송에 관한 위수탁계약을 체결하고 대리점들은 택배기사들과 이를 재위탁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고용구조로 보면 CJ대한통운은 원청 사업주, 대리점은 하청업체인 셈이다. 대리점에서 일하는 택배기사는 아래에서 보는 대로 거대한 택배배송 시스템의 ‘일부’로 일하고 있다.

“난 당신들의 사장이 아니에요”라고 말하는 사이, 우리가 코로나로 멀어져 있던 동안 수많은 택배노동자들이 장시간·심야 노동에 시달리다가 과로사로 우리들 곁을 떠났다. 2020년 1월께부터 한 해 29명의 택배노동자가 심야배송을 계속하다가 과로사로 사망했다. CJ대한통운과 노동조합 등이 참가하는 사회적 합의기구가 출범해 과로사 문제를 논의해 2021년 사회적 합의가 성립되기도 했으나, 그사이 단체교섭은 전혀 진행되지 않았다.

과연 이러한 구조적 지배력하에서 노무를 제공하는 택배기사는 하청업체인 대리점주와 교섭만으로 온전한 노동조건(노동시간단축, 터미널 작업환경 개선, 주 5일 근무제도 도입 등)의 개선을 이루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3. 그런데 최근 이러한 CJ대한통운의 교섭 거부가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판결이 선고됐다(서울행정법원 2023. 1. 23. 선고 2021구합71748 판결). 원청사도 하청사 소속 노동자와 관계에서 교섭의무를 부담하는, 진짜 사장이라는 의미다.

CJ대한통운은 이제 교섭할 자격이 있다. 수줍어하지 않아도 된다. 그대는 한때 이런 기업이었다. 결단은 그대들의 몫이다. 항소냐, 새로운 노사문화의 갈림길이냐! 권한 있는 자, 능력 있는 자가 대화에 임하는 것이 상식이고 문화다.

택배노동자들이 진짜 사장인 그대를 부른다. ‘CJ야, CJ야, 이제는, 이제는 정말, 교섭에서 놀자!’

저녁 식탁에 ‘택배 현장의 평화’가 올라와 모처럼 가족들과 둘러앉은 택배노동자가 첫술을 뜨기도 전 그대의 입을 바라본다. ‘계약관계’의 벽을 넘어 ‘교섭’의 다리를 짓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