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유경 변호사(민변 노동위원회)

“공짜 점심 같은 것은 없다(There ain’t no such things as a free lunch)”는 경제학 격언은 유명하다. ‘공짜 점심’에 대한 항간의 속설에는 미국 서부 어느 식당이 나오기도 한다. 식당에서 손님이 없어 고민하던 당시 ‘공짜 점심’을 제공하는 기책을 낸다. 대신 음료는 한 잔 이상을 주문해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공짜 점심 소문에 고객들이 몰렸다. 가게 주인은 음식을 짜게 만들어서 음료 소비량을 늘리고 음료 가격도 올렸기 때문에 손해는커녕 큰 수익을 올렸다. 결국 식당 고객들은 공짜 점심으로 이익을 얻은 듯이 보였지만 사실은 점심식사에 상응하는, 혹은 그 이상의 비용을 가게 주인에게 낸 것이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 음료 가격까지 남에게 떠넘길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식당 주인은 공짜 점심의 비용을 술값으로 전환해 눈속임을 했지만, 그 음료 가격까지 동행이 지불해 자기 주머니에서는 한 푼도 내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 있었다면? 이 경우 사회 전체적으로는 공짜 점심이 없다. 동행이 대신 비용을 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한 명은, 개인적 단위에서는 공짜 점심을 먹은 셈이긴 하다. 상응하는 비용을 타인에게 전가함으로써 누군가는 공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순수한’ 공짜 점심을 먹는 사람 입장에서는 가게 음식이 짜건 말건, 맥주값이 비싸건 말건 별로 개의치 않는다. 자신이 비용을 부담하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행정법원에서 지난 12일 대단히 중요한 시금석이 될 판결을 선고했다(2021구합71748 판결). 아주 거칠게 요약하자면, 전국택배노조의 단체교섭 요구를 CJ대한통운이 거부한 행위는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는 취지다. CJ대한통운의 유니폼을 입고, CJ대한통운의 택배를 나르는 기사들이 CJ대한통운과 단체교섭을 할 수 있는 것은 일응 당연해 보이지만 그렇게 쉬운 문제는 아니었다. CJ대한통운 택배 업무에 종사하는 기사는 약 1만8천명이지만 CJ대한통운과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한 택배기사는 850명에 불과하다. 150명은 CJ대한통운과 위수탁계약을 체결한 상황이고, 나머지 1만7천명은 CJ대한통운과 위수탁계약을 체결한 집배점과 위수탁계약을 체결하고 업무를 수행한다. 그러니 기사들은 분명 원청사업주인 CJ대한통운 업무를 수행하지만, CJ대한통운과는 계약을 체결한 적이 없게 된다. 이런 다층적 노동구조의 꼭대기에 있는 원청사업주는 수수료를 비롯한 제반 조건을 결정하는 지위에 있기 마련이므로 원청사업주를 빼고서는 단체교섭이 별 의미가 없게 된다. 그러나 원청사업주들은 여태 자신이 노동자들과 직접 계약을 체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단체교섭 테이블에 나오기를 거부해 왔다.

단체교섭을 외면함으로써 원청사업주인 CJ대한통운은 단체교섭에 투입해야 할 비용은 집배점에 전가하고, 단체교섭의 결과 노동조건을 개선함으로써 지출되어야 할 비용은 택배기사들에게 전가해 왔다. 노동조건을 개선하지 않아 발생하는 여러 부작용은 사회 전체가 감당해 왔다. CJ대한통운은 그야말로 공짜 점심을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법원은 바로 이 점을 지적한다. 복합적 노무관계의 형성이라는 경영상 방침은 원청사업주가 결정하는데, 복합적 노무관계를 선택하는 순간 원청사업주가 사용자책임을 벗어나 단체교섭에 응할 의무가 없어지게 된다면, 그리고 대체근로 금지의 원칙에 구속되지도 않는다면, 하청 근로자의 단체교섭 요구나 파업은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상 헌법상 권리인 노동 3권을 박탈할 수 있는지 여부를 원청사업주에 맡겨두는 꼴이 된다. 다시 말해 “유지·개선을 기대할 수 없는 근로조건 하에서의 노무제공을 합법화하는 것과 같다(판결문 25면).” 법원은 그렇기에 실질적 지배·결정권을 가진 원청사업주의 사용자책임을 면책할 수 있다고 보는 해석은 헌법합치적 해석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원청사업주를 노조법상 사용자에 포섭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고, 실질적 지배력을 논증하여 CJ대한통운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하는 결론까지 이끌어 낸다.

경제학은 합리적 주체를 전제로 하고, 경영자들은 합리적 의사결정을 강조한다. 많은 경우에 이때 합리성은 비용-편익 분석과 동의어나 다름없다. 그렇다면 편익은 있고 비용은 없는 공짜 점심을 누가 마다하겠는가.

그러나 법은 합리성만으로 굴러가는 영역이 아니다. 법은 근본적으로 정당성을 획득하기 위한 투쟁의 장이고, 그 결과물이다. 남에게 비용을 전가한 공짜 점심이 합리적일 수는 있어도 정당하지는 않다. 법의 관점에서는 정당하지 않은 공짜 점심은 없어야 한다. 각자에게는 각자의 몫을 줘야 하고, 각자는 각자의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누가 진짜로 이익을 보고 있는지, 누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지 정확히 짚어낸 판결을 환영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