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가 2021년 8월 ‘충북동지회’ 사건을 들고나왔을 때 우스웠다.
1950년대 이후 한국 언론의 간첩 기사엔 ‘포섭’ ‘지령’ ‘침투’ ‘공작’ 같은 말이 끊이질 않았다. 충북동지회는 정치권에 침투하려고 민중당(현 진보당)에 침투했고, 그중 일부는 2017년 문재인 대선 후보 캠프에 노동분과 특보로 임명됐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내가 아는 이도 있었다. 손모로 알려진 그는 2016년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이후 노동자나눔치유 협동조합을 만들고 충북청년신문이란 지역신문을 설립했다. 국정원은 충북동지회라는 간첩단이 이 지역신문 기사로 북한에 보고하는 등 계속 소통했다고 주장했다. 수십만 개에 달하는 협동조합 중 하나를 만들고 2만개 넘는 인터넷 언론사 가운데 하나를 만들었다고 간첩질했다고 우길 순 없다. 내가 아는 손모는 산재피해를 입은 순박한 청년에 불과했다.
특히 충북동지회 사건은 여러모로 재밌는 일화를 많이 만들었다. 이들의 활동은 어리숙한 데가 많았다. 국가정보대학원 교수를 지낸 장석광 국가정보연구회 사무총장은 2021년 8월19일 중앙일보에 쓴 칼럼 ‘진입 장벽 낮아져 생계형 간첩 활개친다’에서 “(과거와 달리) 2000년 이후 주사파는 대부분 주변부에서 활동하는 인물들”로 “지적 수준이 떨어져 상황 판단을 제대로 못하는 부류도 있다. 겉멋만 잔뜩 들어 있어 제대로 된 공작활동을 수행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고 폄하했다. 장 총장이 이렇게 쓸 만큼 충북동지회는 어설프게 활동했다. 오죽했으면 국정원 발표를 토대로 취재한 경향신문이 2021년 8월11일 11면에 ‘혁명과업 수행? … 실상은 초라하고 미미했다’는 제목의 머리기사를 실었겠는가. 국정원이 충북지역 전위투사들의 비밀조직이라고 추켜세웠지만 이들이 운영하던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에 있던 음식점 주변 주민들은 “장사를 거의 안 했어요. 손님도 없고 … 월세가 밀려 도망치듯 떠났다”고 했다.
충북동지회 사건이 터졌을 때 가장 근접 취재했던 김남균 충북인뉴스 기자는 당시 ‘60명 포섭은커녕 민주노총 제명당하고 진보정당선 징계 … 공작금도 유용’(2021년 8월8일)이란 기사에서 이들의 어설픈 행각을 잘 설명했다. 김 기자는 지난해 6월19일 ‘요란했던 청주 간첩단 현재는? … 구속 3인 모두 석방’이란 기사로 국정원의 한바탕 쇼를 갈무리했다.
이번 ‘제주 간첩단’ 사건도 조선일보가 선방을 날렸다. 조선일보는 지난 1월9일 ‘민노총·시민단체 앞세워 투쟁하라’(1면 머리)와 “北 ‘선거 때마다 반보수 투쟁 … 윤석열 규탄하라’ 지령 내려보내”(3면 머리)라는 제목의 기사로 제주 간첩단 사건을 요란하게 보도했다. 국정원이 이들을 5년간 추적했다는 무용담을 잊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1면 기사 제목으로 민주노총과 진보 시민단체가 죄다 간첩이란 고정관념을 국민들 머리에 심고, ‘선거 때마다 반보수 투쟁’ ‘윤석열 규탄하라’는 3면 기사 제목을 통해 모든 보수에 반대하고 윤석열 대통령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모두 북한 지령을 받은 이들이란 고정관념을 심고 있다. 모쪼록 조선일보의 이번 기사는 뜻한 바를 이루길 바라지만 그렇게 될 가능성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2021년 충북동지회 사건이 터졌을 때 나는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한 박지원 국정원장이 왜 그 시점에 간첩 사건을 들고나왔는지가 가장 궁금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보수언론이 매번 국정원발 간첩 뉴스를 대서특필하지만 늘 용두사미가 되고 만다.
내년이면 대공 수사권을 경찰에 이관해야 하는 국정원이 존재감을 과시해 상황을 뒤집어 보려는 얄팍한 수에 언론이 매번 넘어간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