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죽음이 줄지 않고 있다. 지난해 11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재해조사 대상 사망사고 발생 현황’을 보면, 2022년 1~9월까지 산재사고 사망자수는 510명(483건)으로 1년 전보다 502명(492건)보다 증가했다. 지난해 1월27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후 첫 달(2월)에만 51명으로 줄었을 뿐 이후 다시 늘어 지난해 산재사고 사망노동자 수는 827명을 기록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도 불구하고 한 달에 50~70여명, 매일 두 명꼴로 산재사고 사망자가 발생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보건확보 의무를 위반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법의 목적은 처벌이 두려운 경영책임자(대표이사)로 하여금 안전보건확보 의무를 이행케 하려는 데 있다.
그런데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간 단 한 명도 이 법 위반으로 처벌된 자가 없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2022년 9월 기준,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156건(법 적용 대상인 50인 이상 사업장)을 입건했다. 이 중 대표이사가 기소의견으로 송치된 것은 23건(14.7%)에 불과하다. 늑장 수사도 문제다. 156건 중 133건(85%)는 아직도 수사 중이다. 검찰이 기소한 것은 23건 중 단 4건(17.3%)이었다. 법원은 16명 급성중독을 일으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첫 기소된 두성산업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고용노동부는 뒷짐 수사에 대기업을 봐주고, 검찰은 불기소하고,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처벌법’은 있지만 처벌은 없다. 이런 현실 속에서 대표이사가 법을 두려워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 기업의 대표이사는 재해예방을 위한 예산을 확보하거나 돈이 드는 투자를 하지 않는다. 그 대신, 대형 로펌 변호사를 사서 중대재해 책임을 피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윤석열 정권은 중대재해처벌법을 후퇴시키겠다고 작정하고 나섰다. 기업 활동이 위축되고 처벌의 효과가 크지 않다며 처벌 대신 예방 위주의 조치를 하겠다고 한다. 정부가 발표한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에 따르면, 중대재해가 발생했더라도 대표이사가 사업장 위험성평가를 실시하면 처벌을 피해갈 수 있다. 로드맵은 기업에 대한 감독과 책임을 경감하는 대신 노동자의 안전수칙 준수 의무와 범국민 안전문화 캠페인을 강조한다. 정부가 내세우는 자율 예방체계는 노동자가 죽어나가는 현실을 방치하겠다는 말과 같다.
그동안 중대재해를 일으킨 기업은 안전보건확보 의무를 준수한 것처럼 눈속임을 해왔다. 사고가 불가항력이었다거나 노동자 개인의 부주의 때문이라며 책임을 전가했다. 정부의 중대재해 로드맵은 어떡해서든 책임을 피하려는 기업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다.
기업의 책임을 완화하고 노동자에게 사고의 원인을 돌리려는 조치로는 노동자의 죽음을 멈출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처벌 중심이기 때문에 중대재해를 줄이지 못한 것이 아니다. 단 한 건도 처벌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산재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법 적용을 완화해서는 안 된다. 중대재해를 발생시킨 살인기업의 대표이사를 엄히 처벌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중대재해에 대응하는 사회적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