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언제나처럼 나는 그랬다. 새해의 해맞이는 올해도 동네 뒷산이었다. 하나도 새롭지 않았다. 미세먼지 안개를 붉게 뒤집어쓴 채 힘겹게 떠오르는 모습이 새해라고 해 봐야 다를 게 없었다. 붉기로 보더라도 전날 그 자리에서 봤던, 서쪽 하늘 아래로 떨어지던 2022년 마지막 해가 더 붉었다. 도대체 새롭게 나아감은 없고, 뒷걸음질만 하고 있다. 대통령의 신년사는 전혀 새롭지 않은 말만 노동에 대해서 퍼붓고 있었다. 지난해 집권 이후 윤석열 정부가 해 오던 노동에 대한 공격을 계속해서 하는 것을 새해 첫날에 TV뉴스로 봤다. ‘이 나라는 언제까지 이렇게 가는가’ 하는 생각에 답답했다.
2.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기득권 유지와 지대 추구에 매몰된 나라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표를 얻어 권력을 차지한 대통령으로서 국민을 존경한다는 건 당연한 것이겠고, ‘기득권 유지와 지대 추구에 매몰된 나라는 미래가 없다’니. 이 무슨 말인가. 이 대한민국에서 기득권을 유지하고 지대를 추구하는 자들의 미래를 보장하지 않겠다는 것인가. 이 나라, 이 세상에서 기득권 유지와 지대 추구는 경제적 지배자인 ‘자본’과 정치적 지배자 ‘권력’을 빼 놓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런데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근대 이후 우리는 노동에 대해 자본이 기득권을 유지하면서 지대를 추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봉건제 아래서 영주·지주가 농노를 예속해서 차지할 수 있었던 지대는 자본의 세상이 되면서 노동자를 사용하는 자본의 것이 됐다. 봉건의 물적 토대를 무너뜨려 지대를 차지한 자본은 세상에 대한 봉건의 기득권을 빼앗았다. 이것은 부정할래야 부정할 수 없다. 독점에 의한 초과지대만 지대가 아니다. 계급지배를 통한 수탈과 착취는 사실 지대를 위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근대 이후 이 세상에서 벌어졌던 계급을 갈라 전개됐던 혁명과 전쟁은 사실 지대를 차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근로계약을 보라. 이 세상에 태어날 때 사람은 자유다. 어떤 지배자, 권력자도 태어날 때부터 사람을 복종시켜 자신을 위해 사용할 수는 없다. 이 세상에서는 자본은 근로계약을 통해서 자유인인 사람을 노동자로 만든다. 노동자는 사용자 자본이 자신을 위해서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인데, 근로계약을 체결한 사용자의 지휘명령에 복종해서 일해야 한다. 일해서 거두는 수확물은 자본의 차지고, 근로계약에서 정한 시간 동안 그는 자유가 없다. 자본의 세상은 노동자의 자유 박탈을 통해서 확대재생산된다. 이렇게 본다면 “기득권 유지와 지대 추구에 매몰된 나라에는 미래가 없다”는 대통령의 신년사는 겁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이 나라에서 기득권을 유지하고 지대를 추구하는 자들의 미래가 없다고 비난한 것이니 말이다. 이 나라에서 기득권의 왕, 지대 추구의 왕초가 누구라도 그의 미래가 없다고 말한 것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윤 대통령의 신년사는 노동에 대해서 말하고 있었다. 위와 같이 기득권 유지와 지대 추구에 매몰된 나라는 미래가 없다고 말하고서 느닷없이 “대한민국의 미래와 미래세대의 운명이 달린 노동, 교육, 연금 3대 개혁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습니다. 가장 먼저, 노동개혁을 통해 우리 경제의 성장을 견인해 나가야 합니다”라고 노동을 개혁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분명히 이 세상, 이 나라에서 기득권을 누리면서 지대를 추구하고 있는 것은 계급을 나눠 보자면 노동이 아니고 자본이 분명한 것인데 대통령의 신년사는 노동을 향하고 있다. “경제의 성장을 견인해 나가기 위해서는 노동개혁을 해야 한다”고 윤 대통령은 밝혔다. 그런데 경제의 성장은 이 세상에서는 총자본의 확대재생산을 말하는 것이고, 결국 자본을 위해서 노동에 대한 개혁을 천명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노동을 위한 개혁은 경제의 성장을 위한 목적으로 존재하는 것일 수 없다. 경제의 성장을 위한 목적을 떠나서 이 세상에서 노동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서 노동을 위한 개혁을 해야 한다. 노동개혁이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위한 하위 개념으로 보는 것은 자본을 위한 노동시장론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윤 대통령이 “변화하는 수요에 맞춰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바꾸겠다”고 하는 것도 이러한 접근법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면서 신년사에서 “노사 및 노노(勞勞) 관계의 공정성을 확립”하겠다고 밝혔는데,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개선, 노사 법치주의 등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신년사를 통해서 보면 윤석열 대통령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개선, 노사 법치주의 등을 자신의 노동개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니 이에 대해서 살펴보자.
3.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해야 합니다. 직무 중심, 성과급 중심의 전환을 추진하는 기업과 귀족 강성 노조와 타협해 연공 서열 시스템에 매몰되는 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 역시 차별화돼야 합니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어떻게 개선하겠다는 것일까. 그래서 신년사를 다시 꼼꼼히 읽어봤다. 귀족 강성노조가 지배하는 대기업 노동자의 연공형 시스템을 폐지해서 직무·성과급 중심으로 바꿔서 대기업 노동자의 기득권을 박탈함으로써 다른 노동자와 격차를 줄이겠다는 것. 그동안 이 나라에서 권력이 말해 온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개선은 그런 것이었다. 높은 수준으로 보장받는 노동자의 권리를 삭감하겠다는 것, 높은 수준을 보장받도록 한 시스템을 직무·성과주의 시스템으로 전환시키겠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후’할 것인지는 없고, ‘상박’할 궁리만 노동개혁으로 내세웠다. 어째서도 없다. 어째서 연공형 시스템을 직무·성과주의로 개편하면 열악한 중소영세,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의 처우가 향상될 수 있다는 것인지 논리적인 연결도 없다. 그저 높은 권리를 보장받는 노동자의 탓하면서, 낮은 수준의 노동자와 격차가 문제라고 말한다. 연공형에 대한 비난의 근거로 내세웠던 것을 보면 초임 노동자에 대해 최고 2~3배를 받는다는 것인데, 2~3배를 받는다는 장기근속 노동자를 비난할 뿐 그가 초기에 받은 임금 수준은 말하지 않는다. 그래서 가만히 이 나라에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을 들여다보면 경총 등 사용자단체를 중심으로 사용자 자본을 편드는 자들이다. 그리고 노조를 통해서 교섭과 쟁의로 집단적인 임금 등 노동자 권리 향상을 도모하는 걸 직무·성과주의 개편을 통해서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사용자 자본의 기대가 깔려 있다. 그래서 ‘귀족 강성노조’ 운운하는 것이다. 그리고 신년사에서도 “귀족 강성노조와 타협해 연공서열 시스템에 매몰되는 기업에 대한 정부 지원 역시 차별화하겠다”며 정부 지원을 통해서 압박하겠다고 이 나라 권력은 밝힌 것이다.
4. “이러한 노동개혁의 출발점은 ‘노사 법치주의’입니다. ‘노사 법치주의’야말로 불필요한 쟁의와 갈등을 예방하고 진정으로 노동의 가치를 존중할 수 있는 길입니다.”
처음 들었다. ‘노사 법치주의’란 말. 노동법 교과서에서도, 노동사건에 관한 법원판결문에서도 내가 읽어 보지 못한 말이었다. 노사 자치주의는 읽었어도 노사 법치주의는 읽지 못했다. 아마도 검찰 출신의 대통령이라서 틈만 나면 법치주의를 말하더니 노동문제에도 꽂힌 것이리라. 노사관계는 본래 노동자 권리를 만드는 장이다. 이미 확보된 노동자 권리를 확인하는 장이 아니다. 노사관계는 본래 노동자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는 곳이지, 국가권력이 법으로 자유를 억압하는 곳이 아니다. 노동자는 단체를 조직해서 사용자를 상대로 교섭하고 파업 등 단체행동할 수 있어야 하는데, 바로 이것이 노동자의 자유인 것이다. 그래서 노사 법치주의가 아니고 노사 자치주의인 것이다. 국가의 법으로 노사관계를 규제해서 노동자들이 사용자를 상대로 교섭하고 행동할 자유를 억압하는 것은 허용돼서는 안 된다고 노사 자치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노사 자치주의를 무시하는 노사 법치주의는 노동자의 자유를 말살한다. 근대 이후 자본의 세상은 노사관계에서 쟁의와 갈등은 불가피하다고 인정해서 노동자의 자유, 노동기본권을 보장했다. 즉 노동자가 단체를 조직해서 활동하는 자유를 노동기본권으로 보장한 것이고, 대한민국 헌법도 33조에서 이를 규정했다. 그럼에도 이 나라에서 법은 이러한 노동자의 자유를 형사처벌까지 하면서 광범위하게 제한·금지하고 있는데, 바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이다. 갖가지로 노동자의 자유를 규제해 놓았으니 졸지에 이 나라에서는 노사관계에는 지금까지 노사 자치주의가 아닌 노사 법치주의로 권력의 감시 아래에 놓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웬만해서는 노동자의 자유가 불법·범죄로 규제되니 권력의 노사 법치주의가 노사관계를 지배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오늘 이 나라에서 대통령의 신년사를 통해서 이러한 사실을 다시 한 번 우리 노동자들에게 확인시켜 주고 있다.
이 나라에서는 나는 언제야 노동자의 권리와 자유를 위한 개혁을 노동개혁으로 말하는 대통령의 신년사를 볼 수 있을 것인가.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