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에서 화물트럭 기사의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작업복 차림의 부스스한 머리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운전석 뒤 조그마한 공간에 이불이 있고 라면을 끓여 먹을 수 있게 몇 가지 살림 도구도 인상적이었다. 트럭을 집인 양 생활하는 모습이 극한직업처럼 느껴졌다.
지난달 24일 트럭에서 생활할 정도로 한 푼이 아쉬운 노동자들이 생계를 팽개치고 파업을 했다. 순박한 아저씨들이 잔뜩 화가 난 모양이다. 무더웠던 지난 6월 이들은 안전운임제를 놓고 한 차례 파업한 적이 있다. 그때 정부와 여당은 안전운임제 3년 연장(영구 운영 논의 포함) 및 품목 확대를 약속했다. 그 약속을 믿고 파업을 종료하고 일터로 복귀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정부는 품목 확대는 고사하고 안전운임제를 없애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바꿨고 5개월 넘게 형식적으로 노조와 협의했다. 성과 없이 끝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위기감을 느낀 트럭 기사들은 정부가 약속을 이행하라고 요구했고 다시 파업에 돌입했다. 트럭 기사들의 요구는 간단하다. 지난 6월 합의대로 첫째 안전운임제 영구 시행, 둘째 적용 품목을 기존 컨테이너·시멘트 2개 품목에서 철강재, 자동차, 위험물, 사료·곡물, 택배지·간선차 5개 품목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화물트럭 노동자들은 자기 차로 화물을 운송하는 개인 자영업자이면서 특수고용 노동자들이다. 소위 화물차를 가진 사장이면서 직원이 된다. 화물에 따라 건당 비용을 받고 물품을 운송하는 것이 주요 업무이며 생계를 위한 돈벌이 수단이다. 운송 장소와 시간은 중요치 않다. 더 많은 화물을 싣고 더 많이 운전할수록 더 많이 번다. 전국을 누비며 수천킬로미터 운전해서 먹고사는 고된 직업이다. 피곤하다고 적당히 일한다면 손가락을 빨아야 한다. 노동자들은 수천만원에서 억단위의 화물차를 대부분 할부로 구입한다. 매달 갚아야 할 할부금이 몇백 만원이다. 거기에 자동차 보험료·기름값·수리비 등 화물차 유지에 매달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노조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9년 시멘트와 컨테이너 기사의 월평균 노동시간은 각각 375시간과 292시간이며, 순수입은 각각 201만원과 300만원 정도였다. 생활에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해 더 많은 화물을 싣고, 더 많은 건수의 화물을 배달하고, 더 빠르게 운전해야 한다. 과로·과적·과속은 당연하고 장거리 운전을 위해 트럭에서 자고 먹을 수밖에 없다. 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고속도로 화물차 사고의 주요 원인은 1위 졸음(42%), 2위 주시태만(34%), 3위 과속(8%)이다.
이처럼 위험에 노출돼 있고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없었던 화물기사들은 화물연대를 결성하고 처우개선 목소리를 냈다. 대표적인 것이 최소 운임을 보장하는 안전운임제다. 이에 정부와 국회는 화물 운전자들의 과로·과속·과적 등을 방지하고자 2018년 안전운임제를 포함한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화물자동차법)을 개정했고, 컨테이너와 시멘트 품목을 대상으로 2020년 시행을 결정했다. 그러나 3년 일몰제가 문제였다. 일몰제는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시간이 되면 법률·제도·정책 효력이 자동적으로 없어지는 것을 말하는데 올해가 안전운임제의 마지막 해다. 안전운임제는 세 살만 살 수 있는 태생적으로 시한부 삶을 달고 나온 것이다.
만약 안전운임제가 효과적이라면 계속 시행하면 더 좋지 않을까? 다행히 안전운임제의 효과가 있다는 결과가 여럿 나왔다. 한국교통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안전운임제 시행 이후 컨테이너·시멘트 화물트럭의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2.3%, 부상자수는 8.2% 감소했다. 노조도 비슷한 결과를 보였는데 시멘트 과적 적재 경험 비율이 30%에서 10%로 줄었고, 컨테이너 12시간 이상 운행 비율이 29%에서 1.4%로 감소했다. 3년 시행으로 안전운임제의 효과가 매우 좋다고 평가하기 힘들지 않을까? 그렇다면 좀 더 시행하고 괜찮다면 영구적으로 추진을 고민하면 된다. 예컨대 매년 1개 품목씩 확대해 안전운임제를 5년 동안 더 추진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전혀 그럴 마음이 조금도 없다.
정부는 화물차 기사는 노동자가 아니라 자영업자라고 줄기차게 말하면서 노동자에게 내릴 수 있는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화물자동차법은 업무개시명령을 위반한 자는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물론 법적인 쟁점은 여전히 남아 있다. 첫째 정당한 사유에 대한 기준, 둘째 국가 경제에 심각한 위기에 대한 기준, 셋째 국가의 자영업자에 대한 업무개시 가능 여부, 넷째 업무개시명령의 당사자 전달 문제, 마지막으로 헌법에서 보장된 노동 3권 침해 여부 등이다.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에도 화물연대가 파업을 풀지 않자 지난 6월에 합의한 안전운임제 3년 연장안을 아예 없애겠다고 협박했다. 정부와 여당과 보조를 맞춰 보수언론은 억대 연봉의 귀족노조가 파업해 물류 대란이 발생해 경제가 어렵게 되고 기업들의 손실이 조 단위를 넘고 있다며 화물연대 파업의 불법성에 대해 연일 맹공을 퍼부었다.
결국 정부 압박과 여론 악화에 화물연대는 조합원 찬반투표를 통해 파업 종료를 결정했다. 파업 시작 16일 만의 현장 복귀다. 이번 파업에 정부의 4무(無)가 그대로 나타났다. 노사관계를 모르니 무지(無知)하고, 타협과 대화를 모르니 무능(無能)하며, 이미 합의된 약속도 맘대로 깨니 무책임(無責任)하고, 법치주의를 외치지만 헌법이 보장한 노동 3권을 무시하니 무법(無法)하다.
우리 속담에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말이 있다. 약속을 먼저 깬 정부가 오히려 화물연대를 윽박지른다. 여기에 노조를 깨니 지지율이 높아지는 열매까지 맛봤다. 파업 이후 정부를 등에 업고 사용자들은 파업에 동참했던 조합원에게 물량을 주지 않거나 노조를 탈퇴하면 더 많은 물량을 준다고 회유와 협박을 일삼는다. 또한 화물연대를 굴복시킨 정부는 눈엣가시 같은 또 다른 먹잇감을 찾고 있다. 화물연대 파업을 지지했던 건설노조가 정부 레이다망에 걸렸다. 벌써 징후가 보인다. 국토교통부 장관은 각 부처와 협력해 건설노조 대책을 논의 중이고, 경찰청은 내년 6월까지 200일간 건설현장을 특별단속할 예정이며, 공정거래위원회는 불공정한 기업 대신 건설노조 불공정을 조사하고 있다.
화물연대에 대한 정부의 협박은 서막에 불과하다. 개혁이라는 미명 아래 노조와 노동자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은 이미 시작됐다. 노조는 지금보다 더 강력한 태풍 앞에 서 있다. 이에 맞서 노동자와 노조가 단결과 연대로 준비할 때다.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 (wadrgon@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