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대통령실

대통령 관저 100미터 이내의 집회·시위를 금지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조항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이 나왔다. 대통령의 안전과 무관한 모든 집회를 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했다는 취지다. 이번 결정에 따라 대통령 집무실과 전직 대통령 사저 반경 100미터 이내 집회와 시위를 금지하는 내용의 집시법 개정안 추진에 제동이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대통령 관저 인근, 의견 전달에 효과적”

헌재는 22일 오후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집시법 11조의 ‘100미터 집회 금지구역’ 중 ‘대통령 관저’ 부분에 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헌법불합치’는 법률의 위헌성을 인정하면서도 즉각 무효가 됐을 경우 초래할 혼선을 막고 대체 입법을 할 수 있게 시한을 정하는 결정이다. 국회에서 집시법 개정안이 입법되지 않으면 2024년 5월31일 이후 현행법은 효력을 잃는다.

이번 사건은 2명이 각각 낸 청구가 함께 선고됐다. 20대 청년 A씨는 2016년 10월 집회를 신고했지만, 경찰은 대통령 관저 100미터 이내라는 이유로 집회금지를 통고했다. 법원이 위헌법률심판제청 신청을 기각하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B씨는 한 노조 투쟁사업장의 공동투쟁위원회 회원과 함께 청와대 앞 분수대 근처에서 집회를 주최했다는 혐의로 기소돼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해 받아들여졌다.

헌재는 구체적인 위험상황이 존재하지 않는 집회도 예외 없이 금지하는 것은 집회의 자유를 침해해 부당하다고 판단했다. 헌재는 “국민이 집회를 통해 대통령에게 의견을 표명하고자 할 때 대통령 관저 인근이 가장 효과적으로 의견을 전달할 수 있는 장소”라며 “집회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한 것은 집회의 자유에 대한 핵심적인 부분을 제한한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불법집회 대응 방법은 대통령 등의 경호에 관한 법률(대통령경호법)로도 가능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집시법에 주최 금지 등 다양한 규제 수단이 존재하고, 대통령경호법으로 경호구역 지정 등이 가능하다”며 “대통령 관저 인근의 일부 집회를 예외적으로 허용하더라도 이러한 수단을 이용해 대통령의 헌법적 기능은 충분히 보호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용산 대통령실·양산 사저’ 방어
집시법 개정안 제동 걸릴 듯

돌발상황을 가정해 대통령 관저 인근의 집회를 전면 금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막연히 폭력·불법적이거나 돌발 상황 발생 위험이 있다는 가정만으로 대통령 관저 인근의 모든 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며 “집시법은 공공의 안녕과 질서에 직접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금지 등 다양한 규제수단을 두고 있고 집회 과정상 폭력행위는 형사 범죄행위로서 처벌된다”고 설명했다.

이선애·이종석 재판관은 헌법불합치 결정에는 동의하면서도 판단 이유는 별개 의견으로 제시했다. 관저를 대통령과 가족의 생활공간만으로 좁게 해석하지 말고 대통령 ‘집무실’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두 재판관은 “심판 대상 조항의 ‘대통령 관저’는 좁은 의미의 대통령 관저(숙소)와 집무실 등 대통령 등의 직무수행장소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광의)의 대통령 관저를 의미한다”고 해석했다.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라 서울 용산 대통령실과 전직 대통령 사저 100미터 이내의 집회·시위를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된 집시법 개정안이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관측이 나온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 합의한 개정안은 지난 1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를 통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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