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노동권 연구활동가

지난 9일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의 파업이 종료되자, 정부는 “안전운임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며 사실상 안전운임제 폐기 방침을 밝혔다. “‘안전운임제 3년 연장’은 11월22일 정부·여당이 집단운송거부로 인한 국가적 피해를 막기 위해 제안한 것인데, 화물연대가 이를 거부하고 11월24일 집단운송거부에 돌입해 엄청난 국가적 피해를 초래했기 때문에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정부의 말바꾸기에 불과하다. 지난 6월 화물연대의 1차 파업 중단 후 정부는 “현재 운영 중인 안전운임제를 연장 등 지속 추진하고, 안전운임제의 품목확대 등과 관련해서 논의할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국토부 6월14일자 보도참고자료).

이미 안전운임제 연장에 합의하고도 화물연대의 파업을 이유로 이를 파기하겠다는 것은, 화물연대를 비롯한 노조운동에 대한 탄압 여세를 몰아 대자본의 눈엣가시를 없애겠다는 의도를 보여준다. 현행 안전운임제는 수출입 컨테이너와 벌크 시멘트를 운송하는 화물차 노동자에게만 적용된다. 이는 전체 영업용 화물차 41만대 중 약 2만6천대에 불과하지만, 운임을 결정하는 화주가 대자본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다. 즉, 수출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재벌대기업 및 그의 물류자회사, 건설 원청사가 안전운임제 적용을 받는 화주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수출입 컨테이너 트레일러와 벌크 시멘트 트레일러(BCT)는 화물차의 특성상 아무 화물이나 실을 수 없고, 특정 화주와 장기적 계약관계를 맺어 그로부터 다양한 통제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동안 안전운임제에 가장 강하게 반대했던 집단도 이들 대기업 화주들이었다. 국토부의 용역으로 교통연구원이 지난해 수행한 안전운임제 성과분석 연구에서도, BCT 화주의 80%가 안전운임제 폐지 의견인 데 비해 운수업체의 80%와 화물차 기사의 98%는 안전운임제 지속 의견을 밝혀 극과 극의 입장차를 보여줬다. 이번 화물연대 파업에 대한 업무개시명령 역시 1차로 벌크 시멘트, 2차로 철강·석유화학 분야 화물운송기사에게 발동됐는데 여기서도 화주가 재벌대기업이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화물연대 파업에 대해 “귀족노동자들의 불법적 투쟁으로 열악한 처지의 노동자들에게 피해를 입혔다”고 매도했다. 하지만 화물연대가 요구한 안전운임제의 성과는 안전운임제가 적용되는 화물차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것이고, 안전운임제 폐기의 성과는 소수의 재벌대기업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게다가 안전운임제 폐기로 인한 생명·안전상의 피해는 화물차 노동자를 비롯한 도로 위의 모든 국민에게 떠넘겨지게 된다.

우리 사회 전체의 건강·안전을 담보로 재벌대기업의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정부 정책은 안전운임제 이외의 영역에서도 가시화하고 있다. 시행 1년도 되지 않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을 약화시켜 대기업 경영책임자의 책임회피 통로를 열어 주려는 정책이나, 전체 법인의 0.01%에 불과한 103개 대기업에 혜택이 집중될 법인세 인하 정책이 대표적 사례다. 정부가 ‘노동개혁’의 기치를 치켜든 미래노동시장연구회의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근로시간 상한제 폐지 정책도 마찬가지다. 전체 사업장의 20%를 넘는 5명 사업장은 어차피 법정 가산수당을 적용받지 못한다. 그렇기에 주 52시간 상한제 폐지를 통해 장시간노동과 연장근로수당 절약의 혜택이 집중되는 것은 그동안 노조의 조직력으로 그나마 보호를 받았던 대기업 및 유노조 사업장일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역대급 탄압으로 화물연대 파업은 중단됐지만 안전운임제를 지키기 위한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화물연대본부는 국회 앞에서 단식농성을 이어 가고 있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는 현행 안전운임제를 3년 더 연장하는 법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설령 정부·여당의 발목잡기로 법안 처리가 올해 말을 넘겨 안전운임제가 일시 효력을 잃는다 해도 내년 법개정을 통해 안전운임제를 지속시킬 수 있다.

10% 재벌대기업의 이윤 극대화인가, 90% 국민의 안전인가. 안전운임제를 지키기 위한 투쟁은 지금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우리 모두의 건강·안전을 지키기 위한 투쟁의 최전선에 놓여 있다.

노동권 연구활동가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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