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지금 물량제를 바꾸지 않으면, 앞으로 문제는 더 커질 겁니다. 당장 생계보다는 물량제 폐지가 우선이라 기한을 두지 않고 모두 투쟁에 동참하고 있어요.”

17년째 조선소 안에서 블라스팅 업무를 수행했다는 장현진(42)씨의 말이다. 장씨를 포함해 현대삼호중공업 블라스팅 노동자 40여명이 4대 보험 보장을 요구하며 작업거부에 나선 지 21일로 10일째다. 선체 블록 표면에 도장 작업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녹·이물질·용접선 등을 매끄럽게 다듬는 작업을 하는 노동자다.

사내하청업체 대표는 노동자와 대화는커녕 12월31일로 계약해지를 예고한 상태다. 세밑 한파 속 블라스팅 노동자가 일손을 놓을 수밖에 없던 이유는 무엇일까. 장씨는 이렇게 설명했다.

“10여년 전 조선업이 호황이었을 때 블라스팅 노동자는 본공제였어요. 본공제로 운영하면 사업주에 부담이 되니, 물량제로 바꿔 놓은 거죠.”

조선소 안에서 본공이란 사내하청업체에 고용된 정규직을 뜻한다. 본공제 블라스팅 노동자나 물량제 블라스팅 노동자나 하는 일과 사업주 지시를 받는 것은 같지만 물량제는 노동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취급한다. 수행하는 업무량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니 업무량이 많을 때는 과로에 시달리고, 업무량이 적으면 저임금에 시달린다. 물론 4대 보험은 보장되지 않는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라는 의미는 노동자라면 당연히 보장받아야 할 쉴 권리, 안전하게 일할 권리 사각지대에 놓인다는 의미기도 하다.

장씨는 “쉬는 시간도 안 따지고, 빨간날(공휴일)이어도 나와서 돈 벌고, 이런 구조가 십수년 유지되니 사람들이 몸이 아파도 일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그날그날 물량도 노동자가 정하는 것이 아니라 원청이 하청에, 하청이 노동자에게 내려주고 수단 가리지 말고 끝내라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원청에 정원이 17명이라고 보고한 한 하청업체에는 11명의 물량제 블라스팅 노동자가 일하는데 오전 6시50분께 일을 시작해 저녁 9~10시까지 일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점심·저녁 시간 2시간을 빼도 하루 13시간 넘는 장시간 노동인 셈이다.

장씨는 “조선소 안에서 발생할 수 있는 질병을 다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며 “일할 때 위험한 작업도 많은데, 협소한 작업구간에서 일하다 보면 보호장비를 해도 분진이 다 몸속으로 들어온다”고 덧붙였다.

조선업 수주 호황으로 당분간 조선소에는 일감이 끊이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한 번 떠나간 노동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장씨는 “불황을 버틴 사람들이 지금 남아 있는 인원”이라며 “떠나간 동료들에게 같이 일해 보자고 하는데 돌아오는 답변은 나중에 조선소 불황 오면 다시 내쳐질 게 뻔한데 왜 굳이 들어가느냐고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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