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윤석열 정부와 집권 국민의힘은 지난 18일 ‘주 52시간제’를 월·분기·반기·연간 단위로 다양하게 개편하는 근로시간제도 개편을 골자로 하는 노동개혁 관련 입법안을 신속하게 마련하기로 했다.
15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국민패널’ 100명을 참석시킨 상태에서 열린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미래세대에게 자기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양질의 일자리를 지속 공공하기 위해서 노동개혁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와 같이 윤석열 정권의 노동개혁 추진 방향에 관해서는 12일 전문가들로 구성된 연구회에서 권고문 형식으로 발표한 바 있었는데, 이는 ‘국민패널’들에게도 배포됐다.
이렇게 본다면, 전문가들이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이를 가지고 권력이 추진하는 순서로 이 나라에서는 이른바 노동개혁이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민주와 보수를 막론하고 과거부터 해오던 것이다. 전혀 낯설지 않다. 노무현 정권 출범 직후 노사관계제도선진화연구위원회를 조직해서 2003년 8월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 방안을 발표하고, 이를 노동개혁 방향을 추진했던 것이 대표적이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번에도 고용노동부 장관이 조직한 연구단체에서 정권의 개혁 방향에 맞춰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이를 가지고 정부와 집권여당이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하게 될 것은 뻔했다. 정권에 따라 관변 연구단체의 이름이 다르고, 거기에 참여하는 전문가가 다르지만, 대통령의 공약 사항에 맞춰 노동개혁 방안을 연구결과로 내놓으리라는 건, 뻔하게 보였다.
2. 이번 연구회는 노동부가 6월 발표한 노동시장 개혁 추진방향에 따라 노동부 장관이 7월18일 전문가로 구성해 발족시켰던 미래노동시장연구회를 말한다. 이 연구회에 참여하고 있다는 전문가들을 보니 노동법 교수 등을 비롯해 여러 노동 관련 분야에서 내가 아는 이들도 보였다. 이런 연구회가 4개월여 동안 연구해서 “공정한 노동시장, 자유롭고 건강한 노동을 위하여”라는 제목의 권고문을 발표했고, 이제 이 나라에서 권력은 이를 자신의 노동개혁 방안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러니 그 권고문 내용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앞으로 이 나라에서 4년여 동안은 그것을 권력이 노동개혁으로 추진할 것이니 말이다. 그래서 오늘은 권고문을 통해서 연구회가 첫 번째 노동개혁 대상으로 제시한 근로시간, 즉 노동제에 관해서 보자.
연구회에서 권고한 근로시간에 관한 세부 개혁과제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연장근로시간의 관리단위를 주·월·분기·반기·연 단위로 개편하고,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기간 등을 확대하며, 근로일간 11시간 연속휴식을 부여하고,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도입한다는 것이다(권고문 9면 이하).
연구회는 권고문의 “서문: 지체된 제도, 지연된 개혁”에서 “우리 노동시장을 규율하는 법과 제도가 1953년 만들어진 근로기준법은 큰 골격 변화 없이 70년간 유지되고 있고, 노사관계는 대립과 갈등의 ‘87년 체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현재의 제도로 근로자의 삶의 질을 높이고 기업의 성장과 혁신을 뒷받침할 수 있을지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에 따라 연구회는 우리 노동시장은 첫째 기업규모, 고용형태, 성, 노조 유무 등에 따른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둘째 인구구조 변화와 저성장이 초래하는 노동시장의 활력 감소, 셋째 디지털과 탈탄소 친환경 경제 등 기술혁명과 경제구조 변화라는 세 가지 변화에 직면해 있다며, “낡은 제도의 철창에 갇혀 있”는 우리 노동시장을 개혁하기 위해 근로시간에 관해서는 “자율과 선택을 통한 근로시간단축”을 해야 한다며 위와 같은 세부 개혁과제를 제시하였다.
연구회는 이러한 세부 개혁과제는 우리 노동현장의 요구에 따른 것이라고 권고문에서 자세히 밝혔다. 즉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시대가 대량생산에 기반한 표준화의 시대였”지만, “이제는 개인 취향과 선택이 다양화되고 삶의 패턴이 개별화되는” 시대라서 “근무시간과 장소가 유연해지고 일의 성과가 근로시간에 비례하지 않는 영역이 증가하면서 근로시간을 확일적으로 통제하고 규율하는 방식이 더는 지속가능하지 않다”며 연구회가 만난 노동현장에서도 이러한 요구를 했다고 아래와 같이 현장의 목소리로 밝혀 놓았다.
“근로자의 의지대로 일하는 시간을 조정할 수 있는 길은 열어둬야 하지 않겠냐”(제조업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 “(선택근로제가) 막상 도입된 이후에는 다들 만족도가 높았던 기억이 있다. 근로시간 선택의 자율성을 높여 나가는 방향은 시대적 흐름”(IT업종 근로자), “기업 규모, 형태 및 특성 등이 다양한데, 근로시간 제도를 일률적으로 적용하다 보니 어려움이 많음”(뿌리산업 인사담당자), “여가활동, 자기계발, 출산 등을 위한 근무시간 조정과 그에 따른 임금 변동은 대단히 찬성”(건설업 종사 20대 근로자), “사무직을 위한 (유연근무) 제도가 많으므로 생산직이나 공장직 사람들을 위한 제도를 만들어주면 좋겠음”(생산직 30대 근로자).
이상과 같은 권고문 내용을 읽어 보면, 연구회는 우리 노동현장의 목소리를 듣고서 노동자의 요구를 받아서 위와 같이 근로시간에 관한 세부 개혁과제를 제시한 것이라는 착각이 든다. 이에 반대하는 것은 시대의 변화에 뒤처지고, 낡은 과거의 기득권에 사로잡힌 자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1일 8시간, 1주간 40시간의 근로시간제도, 1주간 12시간의 연장근로시간제도 획일적으로 최장 근로시간을 규제하는 것이라서 더는 지속가능하지 않으니 개혁 대상이라는 것이다. 개인의 취향과 선택에 따라 유연하게 더 일할 수 있도록 근로시간에 관한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는 것이 변화된 시대의, 우리 노동현장 노동자의 요구라는 것이다. 그래서 연구회는 연장근로시간의 관리단위를 주·월·분기·반기·연 단위로 개편하고, 선택적 근로시간제의 정산기간 등을 확대하고, 근로시간 저축계좌제를 도입해서 일정기간 더 많은 연장근로를 할 수 있도록 현행 근로시간제를 개혁하겠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 것일까. 우리 노동현장에서 노동자의 목소리는 그런 것일까.
3. 이 세상에서 노동자의 목소리는 분명하다. 연구회의 전문가처럼 노동현장을 방문해서 일일이 듣지 않아도 나는 분명히 알고 있다. 자유와 권리, 이 세상에서 누구나 그렇듯이 우리 노동자가 원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자유로 태어난 사람은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고서 사용자에 복종하는 근로자가 된다. 근로계약관계는 노동자는 노무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임금을 지급받는다. 생존에 필요한 임금을 지급받기 위해서 노동자는 자유를 빼앗기는 관계인 것이다. 여기서 더 많은 자유를 빼앗기더라도 임금을 더 받겠노라고 할 노동자가 얼마든지 있을 수가 있고, 더 많은 임금을 줄 테니 더 많은 자유를 달라고 할 사용자가 있다. 그런데 이런 근로관계에 있어서 노동자가 진정으로 자신의 자유와 권리에 입각해서 목소리를 낼 수가 있다면, 더 적은 시간을 일하는 자유와 더 많은 임금을 받는 권리를 원한다고 말할 것이다. 위에서 연구회가 밝힌 현장의 목소리는 이와 같은 노동자의 진정한 목소리를 제외한 말만 옮긴 것이 명백하다. 내가 우리 노동현장에 가서 듣지 않았어도 진정으로 원하는 것 말고 하는 말이란 것은 명명백백히 알고 있다. 연구회는 권고문에서 근로시간에 관하여 “자율과 선택을 통한 근로시간단축”을 개혁 방향으로 하는 양 제목을 달고 있다. 하지만, 위와 같이 구체적인 세부 개혁과제는 근로시간단축 없이 자율과 선택을 강조해서 사용자가 필요에 따라 일정 기간 노동자를 더 많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데 맞춰져 있을 뿐이다. 근로시간단축 없는 근로시간 개혁은 노동자를 위한 노동개혁일 수가 없다. 개인 취향과 선택이 다양화되고 삶의 패턴이 개별화되고 근무시간과 장소가 유연돼 더는 사용자의 복종해서 노동자가 일하지 않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세상은 아직은 오지 않았다. 그럼에도 연구회는 권고문에서 마치 그런 세상이라도 된 것처럼 시대 변화를 운운하고 있다. 이것은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를 빼앗기 위한 수사임을 이 나라 노동자들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양질의 일자리는 취향과 선택만 강조한 장시간 노동으로 결코 오지 않는다. 미래 세대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는 노동자에게 더 많은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것으로만 올 수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장 근로시간의 일자리를 두고서, 독일 노동자보다 연간 3~4개월 더 많이 일해야 하는 일자리를 두고서 취향과 선택에 따라 한 것이니 미래 세대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 근로시간에 관한 제도, 즉 노동제는 1일 8시간, 1주간 48시간으로 근로기준법에서 규정된 이후 오늘까지 노동자의 최장 근로시간에 관한 규제로서 작동하지 않았다. 그러니 필요한 것은 노동제로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고, 이를 위해서 이제라도 지체됐지만 고민해야 하고, 이를 통해서 근로시간에 관한 노동자권리가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