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현 공인노무사(노무법인시선)

산업재해보상제도는 무과실 책임에 입각한다. 사용자에게 과실이 없어도 재해가 발생했으면 보상한다. 질병의 업무관련성은 재해근로자의 주관적 건강상태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이는 확립된 법리로, 기초 질환이 있었더라도 업무로 악화됐다면 업무상 재해라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다.

이러한 법리에 의한다면 정신질환의 경우 원래 예민한 사람일수록 더 쉽게 산업재해가 승인돼야 할 것이다. 원래 예민하거나 관련 상병이 있었던 사람이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고 있었는데 업무상 스트레스가 발생해 상병이 발병하거나 악화됐다면, 그 스트레스가 보통 사람들에게는 심각하지 않더라도 업무관련성이 인정되는 것이 법리에 부합한다. 하지만 실무는 그렇지 않다.

다른 병, 예컨대 근골격계 상병에서 해당 부위의 상병 치료 기록이 존재하지 않음에도 ‘치료받지 않았지만 아팠을 거다’고 추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어떠한 신규요인으로 발병했을 거라 추정하는 것이 보통이고, 우리는 그 신규요인이 업무라고 주장한다.

반면 정신질환은 그 태생이 유년기의 잘못 생성된 자아 내지 유전적 요인에서 비롯된 상병이라는 관념이 굉장히 강해 종전 진료기록이 없더라도 ‘과거 상병이 있었으나 발견되지 못해 치료를 시도한 적이 없다’고 취급되곤 한다. 그러하니 진료기록이라도 몇 개 발견되면 사실상 산업재해 승인을 받는 데 어느 정도 장애가 발생한 것이라 봐야 한다.

이러한 기조는 비교적 특정 단기 이벤트에 의해 발생했다는 이른바 ‘적응장애’ 상병에서도 비슷하게 다뤄진다. 적응장애는 상병의 개념이 “스트레스성 사건을 겪은 후 지나치게 강하게 나타나는 감정적·행동적 반응”이다. 스트레스성 사건을 전제로 하며, 스트레스 사건 없이는 발병하지 않는다. 즉 “적응장애 상병은 확인되는데 스트레스는 없었다”고 한다면 모순이다.

근로복지공단도 적응장애 상병특성을 알기에 적응장애 진단을 인정한 순간 직무스트레스가 없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렇기 때문에 적응장애 상병의 업무관련성을 부정하는 대부분의 판정 문서에서 “스트레스 강도가 약하다”는 내용이 확인된다.

이러한 판정 방침은 산재 법리와 맞지 않는다. 스트레스 수준이 객관적으로 높지 않고 일반적으로 버틸 만한 스트레스라 하더라도, 재해자 개인이 이를 견디지 못해 상병이 발생했다면, 업무상 스트레스 외 다른 요인이 발견되지 않는다면, 재해자가 스트레스에 다소 취약하더라도 스트레스를 원인으로 하는 적응장애 상병만큼은 인정되는 게 법리상 맞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필자의 의견이고, 업무상 질병 여부를 판정하는 기관은 스트레스 강도를 본다. 그러니 자신에게 발생한 정신질환의 업무관련성을 인정받으려는 재해자는 내가 얼마나 힘들었느냐를 설명하기보다는 내가 겪은 일이 얼마나 강한 스트레스 요인인지를 설명해야 하고, 필자와 같은 실무가는 “내가 많이 힘들었다”고 설명하는 재해자에게서 “왜 힘들었는지”를 찾아내야 한다.

호소하는 스트레스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필자는 내담자들에게 두 가지를 공통적으로 권한다. 첫째, 사건 발생 경위를 구체적으로 특정하라. ‘언젠가 그런 사건이 있었다’와 ‘언제 어디서 그런 사건이 있었고 목격자는 누가 있다’는 완전히 다르다. 증거자료가 있으면 물론 좋지만 증거자료가 없는 상황에서는 진술의 구체성에라도 의존해야 한다. 내가 피해자이니 내 말을 무조건 믿으라는 태도는 곤란하다.

둘째, 열 중 아홉이 갸우뚱할 이야기라면 쓰지 않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원래 예민한 사람이라거나 피해의식이 있는 사람으로 비칠 수 있기 때문이다. 산재 법리에 의하면 원래 예민한 사람이라면 그러한 재해자의 건강상태를 기준으로 업무관련성이 판단돼야 하겠지만, 앞서 말했듯 현실은 그렇지 않다. 법리와는 맞지 않지만 “나는 원래 예민해 그 정도 사건은 나한테 매우 심각한 스트레스예요”라는 주장은 통하지 않는다.

현재 정신질환 산재는 상병 구분 없이 개인적 취약성(종전 의무기록, 가족력, 기타 예민함이 확인되는 자료)은 부정적인 요인이고, 업무량, ‘부당하다고 인정된’ 해고 등 불이익 처분, ‘괴롭힘이라고 인정된’ 동료와의 갈등 등은 긍정적 요인이다. 하지만 산업재해 고유의 법리가 논리정연하려면 적어도 적응장애 상병만큼은 “업무상 스트레스가 있지만 약하다”는 이유로 불승인돼서는 안 될 것이고, 다른 기관에서 주장이 불인정됐다고 해서 “업무상 스트레스가 약하다(당신이 이상한 사람)”고 취급돼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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