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노동뉴스>는 ‘노동포럼 나무’가 정기적으로 발간하는 이슈페이퍼에 실리는 글을 함께 게재한다. 이 글은 한국사회정책 29권 3호에 게재된 ‘코로나19 재난 시기 버스 운전노동자가 경험하는 다층적 불안정 노동’을 요약 정리한 것이다.<편집자>
코로나19 재난 시기 비대면 형태의 노동이 증가했으나, 사회필수적 노동이면서도 대면의 특성을 가진 ‘필수노동’ 종사자들은 위험에 그대로 노출됐다. 버스 운전노동자의 노동도 다수의 유동인구와 대면 접촉해 감염 위험이 높고, 대중교통으로서 공영성을 가진 필수노동의 특성을 가지고 있다. 본 연구는 코로나19 재난 시기뿐만 아니라 일상적 시기에 필수노동자인 버스 운전노동자가 불안정노동을 어떻게 경험하는지 분석했다.
분석 결과 버스노동자는 구조적 차원, 일터에서의 차원, 그리고 마지막으로 개인적 차원으로 구성된 ‘다층적 불안정노동’을 경험하고 있었다. 민영중심의 운영체제와 공공성이 있는 필수노동 간의 구조적 모순은 일터 차원에서 임금 및 고용불안정, 노동통제, 과로 등 구체적인 불안정노동으로 나타났다. 이는 개인적 차원에서 건강문제와 심리적 불안, 그리고 사회적 관계의 결핍에 영향을 줬다. 버스 운전노동자를 둘러싼 다층적 불안정성 노동의 특징들은 각 층위 간 서로 영향을 주며 개인의 삶의 영역에까지 불안정성이 강화되는 연쇄적 전이가 나타났다.
구조적 차원 : 민영중심의 운영체제와 공공성 있는 필수노동 간의 모순
한국의 버스운수업은 민영제를 기반으로 발전했다. 업체가 적자노선이나 벽지노선을 유지하고, 버스비용 인상을 최소화하는 대신 지방자치단체가 업체에 재정지원을 해 왔다. 그러나 재정지원에 대한 적절한 관리·감독이 없어 재정지원 효과성이나 운수업체에 대한 신뢰성도 낮게 나타나고 있다. 버스 운전노동자들은 현재와 같은 민영제 중심 공공자원 투여 방식이 기업의 운영책임 회피나 방만경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이와 달리 일부 지자체 시내버스를 중심으로 시도되는 준공영제는 체계적인 관리·감독이 실시되고 있다. 준공영제로 운영되는 버스업계는 버스협회·노동조합·지자체 3자 간 교섭 결과를 공통으로 적용함으로써 지자체 내 일자리가 긍정적으로 균질화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러나 준공영제는 대부분의 버스노동자에게 여전히 ‘꿈’ 같은 이야기일 뿐, 대부분의 버스 운전노동자들은 민영제 버스운수업체에서 일하고 있다.
일터 차원: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불안정노동의 속성들
원문에서는 준공영제 노동자와 민영제 노동자의 경험 차이도 상세히 다루고 있으나 지면의 한계로 보다 일반적인 운영체계인 민영제를 중심으로 아래 내용을 서술했다.
임금불안정과 고용불안정 간 시소타기
버스 운전노동자는 일상적으로 임금불안정을 경험한다. 낮은 임금과 잦은 임금체불은 노동자의 신용이나 안정적 생활에 영향을 주고 있었다. 대부분의 민영제 일터는 일정한 근로일수를 채워야 수당을 받을 수 있는 만근제 형태로 운영한다. 이 경우 코로나19 재난 상황에서 노선과 운영 횟수가 줄어들면서, 버스 운전노동자들의 고용과 임금은 시소놀이를 시작했다. 노동자들은 유급휴직을 강제받거나, 줄어든 노선과 운영 횟수에 맞춰 일하게 되면서 저임금 현상이 심화했다.
촉탁근로와 좁은 지대의 고용안정성
흔히 마을버스는 시내버스 운전을 위해 경력을 쌓는 터미널이자, 정년 이후 촉탁근로를 하는 종착역으로 묘사됐다. 촉탁근로란 본래 고령노동자가 전문성을 살려 비교적 안정적인 일자리로 연계되도록 유도하는 제도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촉탁근로를 선택하면 계약직으로 전환되면서 퇴직금을 제대로 수령할 수 없고, 매년 재계약 상황에 놓여 회사에 협상력을 가지기 어려운 상태로 노동자가 고립됐다.
지속적으로 버스 이용객이 줄고, 코로나19로 인해 기존 노선이 중단 혹은 폐지돼 다수의 노동자가 적은 노선과 운영 횟수 감소에 몰린 상황은 버스노동자에게 고용불안으로 다가왔다. 특히 작은 규모의 마을버스 노동자는 부도가 우려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기도 했다. 일부 업장에서는 코로나19 재난 시기 ‘고용유지지원금’을 활용한 유급휴직이 노동자의 고용불안을 줄여 코로나 상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됐다. ‘유급휴가지원금’은 자가격리 기간 임금을 정부 차원에서 보전해 연차 사용을 강제하게 하거나 해고 위협 없이 일자리가 유지되는 데 도움이 됐다.
‘배차표’와 노동통제
버스 운전노동자 통제의 중심에는 ‘비현실적’ 배차표가 있다. 승객이 적은 시간을 기준으로 최단 운행시간을 기준으로 짜인 배차표는 노동자가 신호위반·과속을 하며 위험을 감내하거나 휴게시간을 포기하게 만든다. 또한 배차표는 자신을 포함한 동료들의 노동조건을 유기적으로 연동시키고 서로를 통제하도록 강제한다. 앞 차가 전착돼 일찍 도착하면, 뒷차는 필연적으로 태울 승객이 늘어 연착되고 휴게시간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 한 예다. 고정적인 노선, 업무시간, 휴일이 있는 ‘고정’ 배차 노동자와 달리 ‘스페어’ 배차는 더욱 불규칙한 노동을 한다. 신규 수습노동자의 경우 고정·스페어 배차된 노동자들의 근로시간 변경에 따라 노동시간이 결정되기 때문에 다른 노동자들의 근무에 영향을 많이 받고, 노동강도가 높다. 코로나19 이후 일부 노선이 폐지되고, 줄어들면서 배차표를 통한 노동자들의 고통분담이 강화됐다. 전반적인 근무일수가 줄어들 때 ‘고정’ 배차 노동자들이 배려하지 않는다면 수습이나 스페어 노동자의 임금이 확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로 작동하고 있다.
인정받지 못한 노동시간과
빼앗긴 휴식이 낳은 장시간 노동
버스 운전노동자들은 대체로 대기시간과 휴게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교대제의 경우 하루 6~7시간, 격일제는 하루 10시간 내외 운행을 기준으로 하지만 실제로 일터에 머무는 시간은 훨씬 길다. 이외에도 업무 준비시간이라고 볼 수 있는 주유나 공영지에서 차고지로의 이동시간은 노동시간으로 간주되지 못했다.
버스 운전노동자의 과로 문제는 대형교통사고로 이어진다. 주 52시간(연장근로 12시간 포함) 상한제 도입이나 노동자의 요구로 휴게조건이 개선돼 왔지만, 실제로 노동현장에서는 여전한 시간통제가 나타나고 있다. 만근제는 저임금을 벗어나려는 노동자들을 장시간 노동으로 유인한다. 업체는 추가고용보다 기존 노동자가 장시간 노동하는 것이 효율적이라 판단해 위와 같이 노동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시간들을 은폐하는 교섭을 한다. 시외버스의 경우 주 52시간 상제 도입 유예기간이 주어져 다른 노동현장보다도 장시간 노동 문제가 심각했다. 결국 코로나19로 노선과 운영 횟수가 줄었음에도 버스운수업계 내 장시간 노동은 여전했다.
위험이 도사리는 도로와 보호받지 못하는 노동자
도로에서 발생하는 통제되지 않는 조건들은 휴게시간 부족, 촉박한 배차 간격 등의 노동조건과 연동해 노동자를 더욱 위험에 빠뜨린다. 이 또한 버스 운전노동자는 운전 외에도 도로안전을 위해서나 승객 간 마찰로 인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역할까지 수행한다. 또한 운전노동자에게 높은 스트레스 요인이 된다. 그러나 일터에서의 높은 위험에서 노동자가 보호받을 방법은 마땅치 않다. 민원이 지자체에 접수될 때 업체는 노동자를 보호하기보다 직접 소명토록 하거나, 이중적 징계를 내린다. 운전 중에 발생한 교통사고에 있어서도 형사상 책임뿐만 아니라 민사상 보상과 징계까지 노동자의 몫이 되면서 부담이 크다.
이처럼 기존에 위험이 도사리는 일터에서 노동자가 보호받기보다 통제받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일상적 노동의 맥락에서 코로나19 감염 위기는 그간 경험해 온 일터에서의 위험 범위를 감염과 방역 의무로까지 확장했다. 그나마 지자체가 방역 책임을 수행한 준공영제 사업장도 버스 내부 소독 같은 ‘시민안전’ 차원에서 접근될 뿐, 일터 내 노동자 안전에 초점이 맞춰진 대응은 부실했다. 대부분의 감염병 예방수칙이 노동자 개인 책임이 강조되는 수준에 그쳤다. 코로나19 재난 시기에 승객과의 마찰이 증가했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버스 운전노동자에 대한 보호조치도 충분하지 않았다. 대체인력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 감염예방 차원의 격리 인원을 제외한 노동자들의 업무 강도가 높아졌다.
힘이 돼 준 노동조합
버스운수업계는 노동자에 대한 통제가 강하게 나타나는 특성이 있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이 협상력을 행사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노동조합이 없는 곳에 노동조합을 세우거나, 복수노조제도 시행 이후 기존 노동조합을 견제하고 일터를 변화시키기 위한 소수노조 활동으로 협상력을 강화하는 활동이 이어졌다. 노동조합은 주로 노동법에 근거한 진정 및 소송절차를 활용했는데, 고용·휴가 사용·징계 등에서 부당한 일이 현저히 줄었다. 이러한 대응은 동료 노동자들에게 권리를 환기시켜 타노조 조합원이라고 하더라도 업체의 통제에 저항하는 일터 분위기를 체감할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여전히 복수노조 상태는 업체에 대응하는 노동자의 힘이 분산돼 협상력을 가지기 어렵게 했다. 그럼에도 일터의 변화에 소수노조 활동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결론: 버스 운전노동자의 불안정노동 경험
우리에게 어떤 과제를 요구하고 있을까
우리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필수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버스 운전노동자의 코로나19 재난 시기 불안정은, 일상적 시기의 불안정성을 낮추기 위한 근본적인 노력 없이 해소되기 어렵다. 기존 공공 버스운수업의 효율화와 공공성 확보를 위한 노력에 더해 임금수준과 고용안정성 보장, 야간근로 규제, 휴가권 보장 등 다층적인 개입과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 또한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노동환경을 변화시킨 사례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노동조합이 소송을 제기하거나 지자체를 압박해 관리·감독 등의 다른 공적 자원을 연계해 낼 수 있을 때 버스 운전노동자의 통제력이 보다 강화하는 모습이 나타났다. 촉탁근로 도입은 고령노동자의 재취업을 유도하는 제도로 버스노동자들이 선호했지만, 퇴직금 손실 및 재계약 구조, 연령제한 등이 있어 그 한계도 나타났다. 버스운전업계의 노동자 고령화가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촉탁고용의 긍정적인 기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소득보장 및 연령제한 조정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민영제 공공서비스’로서의 모순을 해소하기 위해 버스운수업 전반을 단계적으로 공영화하기 위한 논의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