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료사진 정기훈 기자

안전운임제 일몰조항 폐지와 품목 확대를 요구하며 화물노동자가 파업을 한 지 28일로 닷새째를 맞았다. 이날 정부와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는 파업을 시작한 뒤 처음으로 교섭을 했지만 2시간가량 만에 결렬됐다. 화물연대본부에 따르면 교섭 자리에서 어명소 국토교통부 2차관은 “화물연대 입장에 대해 국토부의 권한과 재량은 없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업무개시명령’ 강행 예고한 정부, 교섭의지 있었나

정부는 교섭이 예고된 이날도 업무개시명령을 위한 절차를 하나둘 밟았다. 정부의 교섭 제안이 ‘대화를 위한 대화’로 명분 쌓기에 그쳤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국토부는 이날 오전 9시를 기점으로 ‘육상화물운송 분야 위기대응 실무매뉴얼’에 따라 육상화물운송 분야 위기 경보 단계를 최고 단계인 ‘심각’ 단계로 격상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로 대응체계를 강화했다. 이날 오전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화물연대본부 파업과 관련한 중대본 회의를 주재했다. 파업 대응을 위해 중대본 회의를 연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업무개시명령을 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다.

현재 위헌 논란이 제기되고 있는 업무개시명령은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화물자동차법)상 “국가경제에 매우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으면” 국토부 장관이 내릴 수 있다. 화물연대본부 파업을 국가적 위기로 규정해 업무개시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중대본 회의를 꾸렸다고 풀이된다.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는 정부의 말과 달리 윤석열 대통령도 업무개시명령에 대한 뜻을 분명히 했다. 이날 오전 열린 대통령실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29일 국무회의를 열고 파업 참가자들에 대한 업무개시명령을 심의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이재명 대통령실 부대변인은 “노측 불법행위든 사측 불법행위든 법과 원칙을 제대로 세워야 한다는 것이 대통령의 입장”이라며 “국민경제를 볼모로 한 노조의 불법과 폭력은 우리 경제를 망가뜨린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이후 열린 노정교섭에는 김태영 화물연대본부 수석부위원장, 어명소 국토부 차관 등이 참여했지만 성과 없이 끝났다. 30일 두 번째 만남이 예정돼 있다. 화물연대본부는 이날 업무개시명령 철회와 올해 말 끝나는 안전운임제 일몰조항 폐지와 품목 확대를 요구하는 입장을 전달했다. 정부와 화물연대본부가 지난 6월 합의한 “안전운임제 지속 추진, 품목 확대 논의” 내용에 대한 입장을 확인한 것이다. 하지만 국토부는 “국토부가 답변할 수 있는 것은 없다”거나 “노조의 입장을 대통령실에 보고하지만 이에 대한 국토부의 권한과 재량은 없다”는 말만 남긴 것으로 전해졌다.

‘업무개시명령’이 법치주의?
법률단체 “위헌적, ILO 협약 반하는 조치”

29일 열릴 국무회의에서 업무개시명령은 심의·의결될 가능성이 높다. 국무회의에서 업무개시명령이 확정되면 국토부가 현장조사를 거친 뒤 국토부 장관이 운송사업자·운수종사자에게 우편을 송달하는 방식 등으로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한다. 청와대 관계자에 따르면 업종별로 피해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국무회의에서 우선적으로 업무개시명령이 발동되는 업종이 선정될 가능성도 있다. 국토부는 이날 오전 철강의 경우 주말 일평균 출하량의 47.8%만 출하됐고, 항만 컨테이너 반출입량도 평시대비 21%로 크게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29일부터 레미콘 생산이 중단됨에 따라 건설현장 시멘트 공급이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측된다.

정부와 윤석열 대통령이 ‘법치주의’로 꺼내 든 카드가 업무개시명령이지만 법률가 단체는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노노모)와 민변, 민주주의 법학연구회,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법률위원회와 민주노총·금속노조·공공운수노조·서비스연맹 법률원은 이날 오전 성명을 통해 “정부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업무개시명령 발동 논의를 즉각 중단하고 화물연대본부와 대화·교섭에 성실히 임하라”고 밝혔다.

이들 단체는 “업무개시명령의 요건은 불확정적이고 추상적인 개념들로 점철돼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반한다”며 “화물운수종사자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법체계의 명확한 정신은 강제노역과 강제근로를 금지하고 있고, 업무개시명령은 국제노동기구(ILO) 기본협약에도 반한다”고 비판했다.

한편 민주노총과 공공운수노조, 국제운수노련은 정부의 업무개시명령과 관련해 ILO에 긴급 개입을 요청하는 서한을 발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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