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은성 공인노무사(권리찾기유니온 정책실장)

이야기 하나, 내가 디딘 마룻바닥

주 40시간을 넘어 대통령선거 공약으로 주 35시간이 나오고 있지만, 우리가 딛고 있는 마룻바닥을 시공하는 노동자들은 하루 13시간과 주 70~80시간의 중노동에 노출돼 있다. 당연히 건설현장에도 주 최대 52시간 상한선이 존재하지만, 마루노동자들은 3.3% 사업소득세를 공제하는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있다.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기 때문에 근로시간 제한과는 무관하게, 새벽별 보며 출근해서 해가 진 다음에야 퇴근한다. 마루노동자들이 이렇게 장시간 노동을 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단가가 낮기 때문이다. 마루노동자들은 작업량(작업 평수)에 따라 급여를 받는데, 이 마루 단가가 10년 전에도 만원, 20년 전에도 만원이었는데 지금도 만원이다.

그러나 마루노동자의 삶의 문제는 긴 노동시간과 적은 임금만이 아니다. 대부분의 건설현장은 화장실이 제대로 설치되지 않아 항상 화장실이 부족하다. 후반 마무리 작업인 마루노동자들이 투입될 때는 그나마 있던 간이화장실도 치워 버린다. 그러다 보니 화장실이 없어 작업현장에서 용변을 보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다른 사람의 용변을 치우면서 일을 하기도 한다. 마루노동자들은 “똥밭에서 일하는 게 익숙해져 괜찮다”며 애써 덤덤하게 이야기하지만, 높은 아파트 가격에 가려진 마루노동자들의 삶은 전혀 괜찮지 않다.

새벽 5시에 일어나 하루 종일 일하는 마루노동자들은 임금체불에도 일상적으로 노출된다. 회사는 마루시공이 마감된 후에 노동자들이 실제 작업한 평수를 알려 주고 단가를 곱해 급여를 지급하는데, 이 과정에서 칼질(작업 평수를 의도적으로 낮춰 임금을 떼먹는 것)이라는 것이 또 발생한다. 칼질은 기준이 없어 32평이 30평이 되기도 하고, 29평이 되기도 한다. 이렇게 칼질당해 빼앗기는 임금이 한 사람당 몇십만원에 달한다. 노동자가 항의하면 이렇게 하는 것이 관행이라고 한다. 관행은 참 마법 같은 단어로, 위법을 합법으로 위장해 준다.

이야기 둘, 내가 보는 드라마

아무리 유튜브가 대세를 이루고 TV를 보는 사람이 줄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평일과 주말 저녁을 함께하는 전통적인 강자는 드라마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만드는 제작현장의 법 위반이 만만치 않다.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고 용역계약서를 작성하게끔 해서 근로시간 제한을 회피하고, 법정 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연속촬영과 철야로 노동자의 건강을 심하게 해치면서 드라마를 찍어 낸다. 그러다 보니 법을 준수하며 드라마를 촬영하는 곳이 몇 안 돼 법만 지켜도 미덕이고 귀감이 된다.

더 큰 문제는 이런 법 위반을 지적하고 고발하더라도, 드라마 현장은 이렇게 운영되는 것이 관행이라며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법 위반을 눈감아 준다는 것이다.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은 것만 조사하더라도 1년 이상이 걸리고, 각종 수당이라도 청구하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가늠할 수가 없다. 어렵게 용기를 낸 사람들의 권리는 권위적인 고용노동부와 검찰에게 다시 외면받는다. 방송국은 제작비 절감과 시청률, 시청자 댓글에는 관심이 많지만 스태프들의 노동권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사실 드라마 제작 스태프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라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여러 번 인정돼 왔다. 법원 판결도, 노동청 조사 결과도, 이를 다룬 기사도 십수 개가 있어 드라마 제작사들이 모르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제작사들은 ‘고의로 근로계약서를 미작성한 것은 아니다’라는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며 위법을 인정하지 않는다.

권리를 뺏긴 사람에게 필요한 것

다른 사람의 노동력을 사용해 이윤을 얻는 사람은 당연히 그에 따르는 책임도 부담해야 한다. 책임 없는 권리는 권리가 아닌 착취일 뿐이다. 그러나 타인의 노동력을 이용해 이익을 얻으면서도 사용자성을 회피하는 방식으로 근로자에 대한 법적 책임은 지지 않는 것이 산업과 직종을 가리지 않고 만연해 노동기본권이 행방불명 되고 있다.

권리를 빼앗긴 사람은 취약한 환경에 노출되기 때문에 더 치열하게 살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치열함을 ‘당연함’으로, 최소한의 조건으로 요구하는 기업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어려움을 치열함으로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치열하지 않아도 괜찮을 수 있도록 ‘기준’을 보장하는 것이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