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수술 직후 업무에 복귀해 장거리를 출퇴근하다가 숨진 증권사 직원이 법원에서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았다. 법원은 조기 업무 복귀에 직무 스트레스가 겹쳐 심장질환이 악화했다고 판단했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유환우 부장판사)는 증권사 책임매니저 A씨(사망 당시 44세)의 아내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불승인처분취소 소송에서 최근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조기 업무 복귀에도 장거리 출퇴근
유족 “수술 직후 스트레스로 악화”
2002년 증권사에 입사한 A씨는 2019년부터 이 증권사 전주지점의 책임매니저로 영업 업무를 담당했다. 그런데 그해 10월 건강검진 결과 ‘대동맥판막 폐쇄부전 및 심부전’을 진단받아 이듬해 1월 대동맥판막 치환술을 받고 열흘 뒤 퇴원했다.
A씨는 수술한 지 3주 만에 업무에 복귀했다. 원거리 통근도 반복했다. 매일 대전의 자택에서 전주지점까지 편도 약 70킬로미터를 운전했다. 회사 근처 숙박업소에서 자야 하는 날도 있었다.
그러던 중 2020년 2월21일 오전 연차를 내고 서울의 대학병원에서 치료받기 위해 KTX를 타고 대전에서 서울로 가다가 쓰러졌다. A씨는 즉시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1시간30분 만에 숨졌다. ‘심장판막질환’이 직접적인 사인이었다.
A씨 아내는 업무상 재해라며 공단에 유족급여와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그러나 공단은 “업무상 단기적 과로와 만성적 과로가 확인되지 않고, 업무환경의 변화로 인한 스트레스가 객관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며 부지급 처분을 했다. 유족은 지난해 6월 소송을 냈다.
유족측은 “퇴원 이후 12일 만에 업무에 복귀해 제대로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장거리 운전 등 신체적으로 무리를 하게 됐다”며 “수술 직후 과로와 스트레스로 인해 심장질환이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악화했다”고 주장했다. 빠른 업무 정상화를 위한 심적 스트레스가 가중됐다는 것이다.
법원 감정의 “스트레스 취약 상태”
“대동맥판막 수술, 한 달 이내 사망률 낮아”
법원은 업무상 재해를 인정했다. 심장병 수술 이후 조기에 업무로 복귀해 스트레스에 취약한 상태였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고인은 수술 3주 만에 업무에 복귀했다. 대동맥판막 치환술을 받은 환자는 평균 3~5주가 경과해야 정신적으로 회복되고 4~6주가 지나야 신체적으로 회복한다”며 “고인과 같이 앉아서 근무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은 수술 후 4주가 경과한 뒤 직장에 복귀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업무 스트레스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했다. 재판부는 “고인이 업무에 복귀한 무렵은 코로나19 확산 초기로 주가가 폭락하는 등 금융시장 전반에 불안감이 고조되는 시기였다”며 “고인이 고객 응대 과정에서 더 많은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았을 것”이라고 봤다. 장거리 출퇴근도 육체적인 부담이 됐다고 설명했다.
법원 감정의가 업무와 상병 사이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하는 소견을 낸 부분도 근거가 됐다. 감정의는 “수술 후 완벽히 회복되지 않아 스트레스에 취약한 상태에서 직무 스트레스에 노출돼 사망에 이르렀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일반적으로 대동맥판막 치환술은 한 달 이내 사망률이 3~5%로 낮은 편에 속한다”며 “업무 복귀 후 받은 스트레스가 심장 수술 후 회복 경과에 영향을 미쳐 사망에 이르렀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판시했다.
유족을 대리한 김용준·김위정 변호사(법무법인 마중)는 “재해자의 업무상 과로나 특별한 스트레스가 인정되지 않더라도 심장과 같은 스트레스에 직결되는 신체 기관에 관한 큰 수술 후 조기 복귀와 일상적인 스트레스만으로도 업무와 사망 사이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됐다는 데에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