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한 지역 지상파 방송사가 쌍용차 인수 소문을 낸 에디슨모터스 강영권 회장을 인터뷰했다. 황금 같은 낮 시간대 방송뉴스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힘겨운 쌍용차 경영을 고려하면 일면 이해가 가지만 많이 뜬금없었다. 앵커는 강 회장과 에디슨모터스를 소개하면서 미래 자동차시장을 선도할 전기차 부문을 이끌 기업이라고 치켜세웠다. 앵커와 강 회장은 공공재인 지상파에서 대놓고 ‘기업 홍보’를 무려 10분가량 지속했다.
당시 쌍용차와 에디슨모터스 매출을 비교하면 쌍용차가 1천배가량 많았다. 자기보다 몸집이 천 배나 큰 기업을 먹는다는 게 도무지 가능하지 않는데도 앵커는 강 회장에게 그런 질문조차 던지지 않았다. 덕담만 했다.
그로부터 1년반이 지났다. 서울남부지검은 지난 24일 강 회장을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과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외부감사법) 위반,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정경제범죄법)상 배임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검찰은 강 회장이 쌍용차를 인수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자사 주가를 띄운 뒤 부당 이득을 취한 혐의라고 했다. 검찰은 강 회장이 사기성 부정거래로 약 1천621억원의 부당 이득을 챙겼다고 봤다. 강 회장 때문에 12만5천명의 소액투자자들은 큰 손해를 입었다.
강 회장을 불러낸 그 방송사는 아직도 어떤 사과나 해명도 없다. 하다못해 우리도 강 회장에게 속았다고 항변이라도 하라. 언론의 어설픈 취재는 때로는 국민에게 흉기가 된다.
지난 24일 삼성물산이 서울 한강에 시공 중인 다리 건설현장에서 50대 하청노동자가 강물에 빠져 숨졌다. 이날 오전 9시10분께 서울 영등포구 월드컵대교 남단 나들목 근처 안양천 횡단 가설 교량 건설현장에서 추락방호망을 설치하던 노동자 2명이 물에 빠졌다. 이 가운데 1명은 스스로 물에서 나왔지만 하청업체 50대 노동자는 심정지 상태로 구조돼 병원에 옮겼지만 숨졌다.
지난 1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삼성그룹에서 일어난 첫 중대재해인데도 대부분 언론은 ‘월드컵대교 사망사고’나 ‘월드컵대교 익사’라고 보도했다. 한겨레 정도만 지난 25일 10면에 ‘삼성물산 하청노동자, 공사현장서 익사’라는 제목으로 ‘삼성’이란 회사 이름을 제대로 박아 보도했다.
국회가 법안 심의하면서 차 떼고, 포 떼고 누더기로 만든 중대재해처벌법 때문에 법 시행 이후에도 사망사고가 잇따른다. 그런데도 조선일보는 지난 24일자 12면에 ‘중대재해법 9개월… 하루 1.8명꼴 사망, 줄지가 않는다’며 법 무용론을 들먹인다. 일터에서 중대재해가 근절되지 않는 책임, 이런 언론에도 있다.
캄보디아 출신 노동자 속헹씨가 2020년 12월 난방조차 없는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숨진 채 발견된 지 2년 만에 이주노동자와 함께하는 시민단체가 1년여 전국 농장을 돌며 캄보디아 출신 농업 이주노동자들을 상담한 결과를 발표했다. 경향신문은 이를 지난달 28일자 1면과 8면에 ‘화장실도 없는 비닐하우스 살며 농장주에 매달 25만원 떼여’라는 제목으로 상세히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같은날 8면에 ‘고창군(에)서만 올해 들어온 계절 근로자 60% 잠적’이란 제목으로 도망가는 이주노동자 때문에 농장주들이 골머리를 앓는다고 했다. 이들은 한 달에 190만원 남짓 최저임금을 받는데 숙소 같지도 않은 숙식비를 떼고 나면 150만원 정도다. 그런데 중간에 브로커가 그 돈의 절반을 가져가는 바람에 80만원만 손에 쥔다. 이러니 도망갈 수밖에 없다. 언론이란 게 이런 구조는 외면한 채 도망간 이주노동자만 탓한다.
전 민주노총 미조직비정규직실장 (leejh67@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