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와 기아 비정규노동자들이 27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 앞에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상고심 결과에 대해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대법원은 이날 현대차·기아의 사내하청노동자 400여명의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이들을 회사가 정규직으로 고용해야한다고 판결했다. <정기훈 기자>

“제가 2010년 소송을 시작했어요. 대법원 판결까지 12년이 걸렸네요."

오랜 기다림 끝에 불법파견을 인정받은 기아 사내하청 노동자 신성원씨의 얼굴에는 기쁨과 아쉬움이 교차했다. 금속노조 기아자동차비정규직지회장인 그는 2010년 당시 지회 정책국장으로 1차 소송 제기를 주도했다. 신 지회장은 “대법원의 판결을 환영한다”면서도 “오랜 시간이 걸려 열심히 싸웠던 사람들이 정년퇴직을 했다”고 씁쓸해 했다. 그는 “기다림이 길다 보니 동료들이 자신의 권리를 3분의1, 혹은 절반만 찾고 떠나가는 아픔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대법원이 27일 오전 현대차·기아의 불법파견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원청을 상대로 법원에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한 하청노동자 중 재직 중인 노동자 대부분은 승소했다. 단 정년 도과자의 소는 기각했고, 현대글로비스와 도급계약을 체결한 2차 하청업체 노동자 2명에 대해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금속노조와 승소한 노동자들은 판결 직후 대법원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소감을 밝혔다.

양경수 위원장도 최종 승소 “너무 고통스런 세월”

기아 화성공장에서 일하다 해고된 지 5천813일째 된 해고자 이동우씨는 “기쁜 판결이기는 하지만 너무 늦었다”며 “100명이 넘는 해고자는 (투쟁하면서) 교도소 가고, 벌금 받고, 손해배상 청구를 받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인간답게 살기 위해 민주노조를 만들었다”며 “오늘 하루 함께 기뻐하고 내일부터 다시 처음 마음으로 지내면 좋겠다”고 전했다.

기아 사내하청 노동자로 이번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법정 투쟁에서 승소하고도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는 지난 12년간의 세월이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라며 “그 시간 동안 생을 달리한 사람들이 눈에 아른거린다”고 말했다.

일부 패소에 대한 아쉬움도 나왔다. 유홍선 현대자동차비정규직지회장은 “똑같이 서열모니터를 보고, 똑같이 물건을 갖다 줬지만 일부 노동자는 오늘 패소했다”며 “이제는 법원에 와서 더 가열차게 투쟁해 조합원 한 분도 빠짐없이 정규직 전환할 수 있게 싸우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현대차 1·2심 계류자 대부분 ‘2차 하청’
금속노조 “전체 하청노동자 직접고용해야”

이번 대법원 판결은 하급심에서 일부 인정했던 간접공정 노동자의 불법파견을 최초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하지만 2차 업체 소속 생산관리 노동자가 패소하면서 1·2심에 계류 중인 현대차 비정규 노동자 사건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된다.

노조 현대차비정규직지회에 따르면 1·2심에 각각 388명과 65명이 계류돼 있다.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순차적으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한 이들은 대부분 현대차가 아닌 현대글로비스와 도급계약을 맺은 2차 업체 소속 노동자다.

지회는 현대차가 2014년 “(지회가 제기한) 집단소송 최종 확정 판결시, 소송참여 여부 등과 관계없이 전체 인원에 대해 차별 없이 결과를 준용할 것”이라고 밝힌 점을 들어 모든 사내하청 노동자를 이번 판결에 따라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현대차가 수용할 가능성은 낮다.

▲ 정기훈 기자
▲ 정기훈 기자

현대차 “판결 존중, 각 사업장에 맞게 조치”

현대차는 대법원 판결 직후 “판결을 존중한다”며 “판결 내용에 따라 각 해당 사업장에 맞게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현대차가 대법원 승소 노동자들만 직접고용하면, 1·2심 계류 노동자들은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아차의 경우 1·2심에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이 계류 중인 노동자는 330여명이다. 이 중 2차 하청업체 소속은 1명이다. 현대차와 달리 이날 대법원 사건 소 제기자들과 공정·업체에 큰 차이가 없다.

불법파견 사건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는 “현대차나 기아뿐만 아니라 전기·전자, 제철소, 조선소까지도 원청이 사내하청을 이용하는 것을 보면 현대차와 거의 다르지 않다”며 “이 판결을 계기로 현대차와 유사한 방식으로 사용하는 모든 사내하청 근로가 근절될 수 있기를, 수사기관이 법을 엄격하게 집행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노조는 “현대자동차그룹은 전체 공정을 대상으로 정규직 전환에 대한 종합대책을 내놓아야 한다”며 “불법행위를 사과하고 노사교섭에 나오라”고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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