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병길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지난 15일, SPC그룹 계열 SPL 평택 제빵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소스 교반기에 몸이 끼여 숨졌다. 비단 그뿐만이 아니다.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고용노동부로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올해 1월27일부터 지난달까지 중대재해 443건이 발생했고 446명의 노동자가 안타까운 목숨을 잃었다. 살고자 일하는 일터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고 있다. 우리는 이 참담한 모순을 가만둬선 안 된다.

이번 사고는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기본적인 안전관리만 했더라면 말이다. 사고 당시 2인1조 작업은 지켜지지 않았다. 피해자가 교반기 앞 작업을 할 동안 동료는 빈 상자 정리 등 다른 일을 했다. 위험 작업시 2인1조는 상식이다. 사고가 발생하면 1분, 1초 차이로 목숨이 오간다. 곧바로 대처할 사람이 필요하다. 이 밖에도 사고 발생 공장의 다수 교반기에 자동방호장치(인터록)가 없었으며, 평소 안전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피해자의 사망 원인이 질식사로 추정된다는 구두 소견을 경찰에 전달했다. 사고 발생 후 재빨리 구조 작업을 벌였다면 피해자가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SPL의 모회사인 SPC는 거대 식품기업이다. 수많은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그런데 허술한 안전관리 체계는 SPL뿐만 아니라 SPC그룹 전체의 문제다. 이은주 정의당 의원이 안전보건공단에서 자료에 따르면, SPC 계열사 4곳(파리크라상·피비파트너즈·비알코리아·SPL)의 산재 피해자는 2017년 4명에서 지난해 147명으로 35배가량 늘었다. 올해의 경우 9월 기준으로 115명이다. 거칠게 말해서 2.5일에 한 명 꼴로 산재 피해자가 나오는 셈이다. SPL 사망사고로 분노하고 있는 와중에 SPC 계열 샤니 제빵공장에서 손가락 절단 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는가.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대국민 사과를 하며, 안전경영에 1천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그 진정성에 의심이 간다. 사고 바로 다음 날 공장을 재가동하고 장례식장에 파리바게뜨 빵을 보낸 것만 봐도, SPC가 이번 사고에 얼마나 무심했는지 알 수 있다. 사실 SPC는 오래전부터 반노동·반사회적 기업으로 유명했다. 2017년에 제빵사 5천300여명에 대한 불법파견으로 노동부 시정 요구를 받았고, 이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했으나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게다가 조직적으로 부당노동행위를 자행했으며, 노동자에게 적절한 휴식권·건강권을 보장하지 않는 등 인권침해를 일삼았다. 산재를 뿌리 뽑고자 한다면, SPC는 노동을 경시하는 문화를 바꿔야 한다. 노동을 단지 비용의 관점에서 바라보니 이윤을 위해 안전을 희생하는 것이다. 개당 30만원에 불과한 인터록을 설치하지 않아 노동자가 죽었다.

정부의 책임도 무겁다. 기본적인 안전관리조차 없어 산재가 발생했다. 감독행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고용노동부는 SPC그룹을 대상으로 산업안전보건 기 감독을 시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매번 이런 식이다. 사후약방문이 아니라 산재예방이 필요하다. 중대재해처벌법을 완화하려는 시도도 문제다. 정부는 자본의 논리를 그대로 따라서는 안 된다. 앞서 언급한 중대재해 443건 중 현재 중대재해처벌법이 적용되는 사업장(상시 근로자 50명 이상, 건설업의 경우 공사금액이 50억원 이상)에서 발생한 사고는 156건(35.2%)이다. 나머지 65%는 법의 사각지대에서 일어났다. ‘완화’가 아니라 ‘사각지대 해소’를 이야기할 때다.

정부를 견제해야 할 국회는 어떤가? 지난 2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노동부 대상 국정감사에 강동석 SPL 대표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이번 사고는 SPL만의 문제가 아니다. SPC그룹 차원에서 안전관리 체계를 점검해야 한다. 국회는 그룹 경영을 총괄하는 허 회장을 증인으로 불러야 했다. 안전 문제 외에도 부당노동행위, 사회적 합의 불이행 등 따져야 할 게 수두룩하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2018년 사회적 합의의 주체 중 하나다. SPC그룹의 반노동·반사회적 행보를 고치는 데 끝까지 책임을 다해야 한다. 국정을 책임지는 여당이야 말할 것도 없다.

정부도, 국회도 제 역할을 못 할 때 노동자 곁에는 시민들이 있었다. 지난 5월18일,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파리바게뜨 노동자 힘내라 공동행동’을 결성하고 파리바게뜨 문제해결을 위해 연대하고 있다. 또 이번 사고 이후 수많은 시민이 불매 운동에 동참했다. 파리바게뜨 가맹점주협의회는 “내부의 감시자로서 역할을 충실히 하겠다”면서 “안전한 일자리와 먹거리를 만들기 위한 약속을 충실하게 지켜가도록 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직접적으로 경제적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데도 말이다. SPC는 하루라도 더 빨리 시민들의 분노에 성실히 답해야 할 것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상임활동가 (ilecdw@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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